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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몽의 그늘 아래서 - 인쇄 혁명과 미신과 주술과 마술
2. 철학자의 돌과 페스트 - 중세와 근대 초, 은총과 치유 3. 파괴된 실험실 - 18세기 초, 악마가 펼치는 비극의 무대 4. 구제 불능의 얼간이들 - 18세기 후반, 비이성과 계몽의 난장판 5. 벽에 드리운 기호 - 정령(精靈), 근대를 사취하다 6. 전쟁 그리고 희망 - 세기의 전환과 1차 세계대전 사이, 점술과 신비사상 7. 태초와 우주 - 20세기와 민족 신비주의, 그리고 전체론 8. 요정의 왕국, 크롭써클의 비밀 - 1970년대, 한여름 밤의 꿈 9. 또 다른 피안의 세계 - 인터넷과 신비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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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과 같은 암흑세계야말로 상상의 낙원이다.” 임마누엘 칸트가 1766년에 이렇게 말했을 때, 유럽 사람들은 마침 “저승”에 등을 돌리려 하고 있었다. 자연과학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 곧 검증된 지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몽철학자들은 믿음을 앞세운 소박하고도 어리석은 세계관에 맞서 지성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스스로 자초한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라고나 할까. 계몽철학자들의 관심은 합리적인 지식과 과학적 발명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데 쏠려 있었다.
18세기에 그 합리적인 방향이란 이성을 기치로 내건 세계의 완성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세계는 더 이상 속내를 모를 불합리한 것이 아닌,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는 합리적인 것이어야 했다. 고위 관리나 성직자 혹은 교육자들과 같은 계몽 운동가들은 이성이라는 환한 빛 아래 드러나는 민중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기 일쑤였다. 교육을 통한 교양의 전파가 신속하게 이뤄지기만 한다면 그런 어리석음쯤은 쉽게 청소할 수 있으리라! 계몽 운동가들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시의 교양이란 무엇보다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야무진 운동가들은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도시든 시골이든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독자들은 칸트의 저서나 성경만 읽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과학과 신학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절박한 관심사일 수 없었다. 오히려 독자들은 구텐베르크 이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삼류 문학에 열광했다. 아무리 강력한 비판으로 무장한 운동가라 할지라도 동네 골목길 모퉁이의 작은 인쇄소에서 쉬지 않고 찍어내는 잡다한 읽을거리들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읽을거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온갖 기적으로 하늘이 물들었으며, 마법과 점술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어깨를 다독였고, 점차 대중들은 악마의 호령에 넋을 잃었다. --- pp.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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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학문, 오컬티즘의 문이 열렸다
이성과 계몽의 이름으로 무지와 암흑과 이별하려 했던 1700년대 유럽의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저승과 같은 암흑세계야말로 상상의 낙원이지. 여기서 상상은 그야말로 내키는 대로야. 거침없이 아무것이나 지어낼 수 있거든. 우울증 환자가 지어내는 헛소리든, 옛날이야기이든, 혹은 수도원의 기적이든, 아무튼 재료는 넘쳐나니까.” ‘감추어진 것’, ‘비밀’ 등을 뜻하는 라틴어 ‘occultus’를 어원으로 하는 오컬티즘(Occultism)은 자연 속에 숨어 있는 힘이나, 혹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규명이 힘든 현상을 연구하는 비학(秘學)을 총칭한다. 여기에는 마술과 마법뿐 아니라, 연금술과 점성학, 카발라(Kabbalah,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 사상)와 그노시스(gnosis, 영적 깨달음) 등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을 탐구하는 광대한 정신 영역이 포함되는데, 현재는 뉴에이지 등의 학문적·문화적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성과 신비의 이중주, 인간 정신의 뿌리를 추적하다 이러한 특성상 오컬티즘은 ‘이성과 계몽을 기치로 내건 세계의 완성’이라는 근대정신과 맞선다. 18세기 이래 계몽주의자들과 합리적 경험론에 근거한 자연과학자들에게 있어, 세계란 더 이상 불합리한 것이 아니어야 했으며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이렇듯 지식을 표준화하고, 교양을 제도화하여 전파하려는 시대적 흐름은 오컬티즘과 양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은 흥미롭게도 이성과 계몽의 시대, 이 이단(異端)의 문화가 역사상 단 한 번도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질긴 생명력이야말로, 오컬티즘이 인간의 본질과 문화의 원형과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웅변한다. 또한 책은 오컬티즘이야말로 일상에서 명백히 사람들을 사로잡은 인류 정신사의 근간이라는 사실도 밝혀낸다. 강렬한 유혹과 은밀한 두려움의 세계로 떠나는 역사 여행 이성과 계몽이 이 세계에 빛을 선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부터 오늘날 월드와이드웹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이 빛이 비추지 않는 그늘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구텐베르크의 세례를 입은 독자들의 세계는 온갖 기적으로 물들었으며, 마법과 점술은 실의에 빠진 이들의 어깨를 다독였고, 허약한 영혼들은 악마의 호령에 넋을 잃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책은 서슴없이 악마를 불러낸다. 꼭꼭 감추어 두었던 유혹과 비밀스러운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계의 빗장을 풀어헤친다. 그리고 엄청난 폭과 깊이로 시대와 시대를 가로지르며, 문학과 예술, 자연과 철학의 드넓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