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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중 폐허의 바르샤바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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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의 수기
1. 아이들과 미친 사람들의 시간 2. 전쟁 3. 처음 본 독일군들 4. 아버지, 독일군들에게 인사하다 5. 당신들 유태인들이지? 6. 클로드나 가에서의 춤 7. K 부인의 멋진 제스처 8. 위험에 처한 개미집 9. 움쉴라크플라츠 10. 살아남을 기회를 얻다 11. 저격병들이여, 총을 들고 일어서라 12. 마요렉 13. 옆집 부부의 말다툼 14. 살라스의 배신 15. 불타는 건물 속에서 16. 한 도시의 죽음 17. 목숨과 바꾼 술 18. 야상곡 C샵 단조 - 빌름 호젠펠트의 일기 초 -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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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간 동안 나는 바르샤바 게토(유태인 강제 거주 지구 - 옮긴이)의 중심부에 위치한 노볼리스키 가의 카페 노보체스나에서 처음 피아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1940년 11월, 게토의 대문들이 폐쇄될 즈음 우리 가족은 이미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치운 지 오래였다. 우리 집의 가장 귀한 재산이 피아노까지도. 내게 삶이란 그리 대단치 않게 비쳤지만 그래도 살기는 해야겠기에 부득불 무관심한 태도를 떨쳐버리고 생계비를 벌 방도를 찾아 나섰으며, 다행히 일자리를 얻었다. 그 일을 하느라 나는 시름에 잠길 시간이 거의 없었으며 온 가족이 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차차 과거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내 하루 일과는 오후에 시작되었다. 그 카페에 가려면 게토 깊숙이 이어지는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들을 요리조리 빠져나가야 했다. 사람들이 게토 안에 물건을 몰래 들여오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구경하고 싶을 때면 그 골목길들 대신 장벽을 따라 갈 수도 있었다. 물건을 밀반입하기에는 오후 시간이 그중 좋았다. 오전 내내 제 주머니를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 뛰어다니던 경찰들도 그 무렵이 되면 벌어들인 돈을 세기 바빠 경계가 좀 느슨해 졌으니까. 담을 따라 늘어선 공동 주택들의 현관문과 창문에서는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가 재빨리 숙이곤 하면서 마차나 전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조바심치며 기다렸다. 이따금 한번씩 장벽 너머에서 그런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곤 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이 따각거리고 지나가면서 미리 정해진 신호인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물건들인 든 자루나 짐 보따리들이 담 너머로 날아 들어왔고, 그러면 건물 안에서 포복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문 밖으로 튀어나와 재빨리 그 전리품들을 낚아채 집 안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나서 거리에는 기대감과 조바심과 은밀한 속삭임으로 가득한 팽팽한 침묵이 몇 분간 지속된다. --- pp.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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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작업 조건은 악화되었다. 이제 우리를 감시하는 일을 맡은 리투아니아 인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일절 사지 못하게 했고 게토로 들어가는 주요 검문소를 통과할 때면 점점 더 검문 검색이 심해졌다. 어느 날 오후, 우리 작업 팀이 검문소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그 인원들 중에서 반을 걸러 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양소매를 걷어올린 젊은 독일 경찰 하나가 검문소 밖에 서서 본인의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가려내 살릴 사람들은 오른편에 죽일 사람들은 왼편에 세워 놨다. 그는 내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왼쪽에 선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그런 뒤 그는 자신의 연발 권총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사살해 버렸다.
일주일쯤 지난 뒤 게토의 장벽에는 바르샤바에 남아 있는 모든 유태인들을 새로 가려 뽑은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고가 나붙었다. 이미 30만 명이 다른 데로 이전해갔고 이제 10만 명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독일인들에게 꼭 필요한 전문 직업인들과 그 밖의 일꾼들 2만 5천 명만 시내에 남겨둘 것이라 했다. --- pp.161-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