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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Wal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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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색깔이 바뀌는 자두 씨 모양의 두 눈. 그 눈은 언제나 반짝거렸다. 그는 그녀의 눈을 작년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광채가 흐려지는 법도 없는, 언제나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빛나는 눈이었다. 그러나 대개 그 눈은 푸른색이나 녹색이 아니라 청록색을 띠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입이 떠올랐다. 동산처럼 지나치게 부풀지 않고, 적당하고 도톰하고 균형 있게 뻗은 윗입술, 그것을 겸손하게 받들고 있는 아랫입술. 입은 얼굴의 아래쪽 절반에서 약간 외로워 보였다. 코도 홀로 고고했다. (……) 코는 외롭고 아름다운 입 위에서 끝나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입을 동경하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려한 은은함이 묻어났다. 울리케라는 인간 전체에서 그런 인상이 풍겼다. --- 본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들의 입술이 서로 끌리듯 다가가 맞닿았을 때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이다. 그는 이 감은 눈보다 더 내적인 친밀함의 표현을 경험한 바 없었다. (……) 키스를 했어. 거부당하지 않은 키스를. 한 여인의 입술을. 한 소녀의 입술을 강탈한 것이 아냐. 억지로 밀어붙이지도 않았고, 그녀의 입 속에 입을 넣은 것도 아냐. 처음의 머뭇거림, 집중, 떨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그런 것이 있었어. 입과 입이 저절로 서로에게 향했어. 의지의 개입도, 일말의 연출도 없었어. --- 본문 중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 것이다. 안 그러면 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쥐꼬리밖에 없는 한 소녀 때문에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은 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부끄러웠다. 세상이나 도덕, 풍습, 예의범절 따위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 그렇게 매달리고 비틀거리고 더듬거리고, 남뿐 아니라 적들도 그렇게 속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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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이제야 만났을까?”
독일 문학의 거장 마르틴 발저가 그려낸 73세 괴테와 19세 소녀 울리케의 기이한 사랑 출간 즉시 독일 베스트셀러, 사랑에 빠진 괴테의 부활 대문호 괴테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저작물들의 면면을 보자면, 언뜻 고리타분하고 필요 이상으로 진지할 것만 같다. 하지만 괴테는 죽는 날까지 사교계와 지성의 중심에서,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청년’이었다. 1823년 초여름, 73세의 괴테는 휴양지 마리엔바트를 스캔들 소식으로 뜨겁게 달군다. 울리케는 처음처럼 여전히 차분하면서도 집요하게 괴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괴테의 시선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 울리케는 오로지 자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이미 다 겪었다고 자만하던 괴테는,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하던 울리케 폰 레베초브가 19세 아가씨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새로운 아름다움에 깜짝 놀란다. 홀린 듯이 울리케를 바라보는 괴테와 다소 도발적인 태도로 눈빛을 맞부딪는 울리케, 그들은 하나의 눈빛에서 시작되었다. 괴테는 이 소녀의 마법에 푹 빠져버렸다. 상스럽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의 풍경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찬란하게 해가 떠올랐고 풍경은 생기가 넘쳤다. (……) 넌 붙잡혔어. 그녀의 포로가 되어버렸어! 신비한 초록색 눈동자의 아름다운 얼굴, 장신구를 전혀 하지 않은 목과 팔에서 흐르는 자연스러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울리케에게 괴테는 완전히 매혹당한다. 이 소식은 독일 전역을 들썩거리게 했다. 시대를 앞서간 연인들, 편견의 한가운데서 연애하기 괴테와 울리케의 이야기를 접한 괴테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괴테를 향한 이상한 소유욕을 가진 며느리 오틸리에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위대한 국민작가가 매춘부의 꼬임에 넘어갔다며 분개한다. 일흔넷의 괴테가 열아홉 레베초 처자에게 푹 빠졌다느니, 그 처자의 어머니는 두 번이나 남편을 잃고 지금은 빈의 부유한 정치적 출세주의자에게 꼬리를 치고 있다느니, (……) 한편으론 괴테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럽다고. 그리고 괴테한테는 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환상에 돛을 달아줄 사람을 찾는다. 그 사이 괴테는 울리케가 자신과 같은 특별한 영혼의 사람이라는 환상을 품으며 그녀에게 더욱 빠져든다. 가장 무도회에서 서로 어떤 모의도 없이 베르테르와 로테의 분을 하고 들어서자, 괴테의 확신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울리케와 결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청혼 준비를 시작한다. 자신은 이 일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은 실천력이 강한 인간이라 이 혼사를 성사시킬 현실적인 계획을 짜두었다. 결혼이 성사되면 울리케의 어머니에게 바이마르에 있는 집을 한 채 하사하고, 울리케를 궁정 제1여관(女官)으로 임명하겠다. 혹시 흉사로 울리케가 미망인이 되면 연금으로 1년에 1만 탈러를 지급하겠다. 괴테는 울리케 가족에게는 헌신적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울리케에게는 문학을 이용해 사랑을 유지하고 관계에 확신을 갖고자 노력한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시를 울리케에게 속사이고, 훗날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질 시의 심상을 가다듬는다. 첫 키스의 그날 창가에 서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그는 책상에 앉았다. 오로지 글쓰기만이 북받치는 감정의 홍수를 다스려준다. 우선 그는 시의 운(韻)을 떠올렸다. 종이에 하나의 시가 태어났다. 오래전부터 날 매혹시킨 당신, 난 이제 새로운 인생을 느끼네. 달콤한 입이 우리를 다정하게 바라보네. 우리에게 입맞춤을 선사한 그 입이. 문학으로 승화된 지성인의 실패한 사랑 괴테의 청혼은 울리케의 어머니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울리케는 소녀와 아가씨의 경계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어머니 입장에서는 젊고 건강한 남자와 짝을 이루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테의 육체는 나날이 늙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빼어난 용모의 라이벌까지 등장하자 괴테는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던 찰나, 울리케와의 산책길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미끄러져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공포는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바이마르에서 겨울을 보낼 때면 넘어져서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누구는 넓적다리가 부러졌고, 누구는 허리를 삐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절대 넘어지면 안 돼.’ 그런 그가 넘어졌다. 울리케와 함께 어두운 숲 속을 걷다가 깜박 정신을 놓았던 탓이다. 그는 등을 돌려 반듯이 누웠다. 울리케의 눈에 자신이 뭍에 내동댕이쳐진 가련한 물고기처럼 보일 것 같았다. 마리엔바트에서의 휴가도 잠시, 울리케와 괴테는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둘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며 헤어진다. 괴테는 울리케를 그리며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완성한다. 꽃이 모두 져버린 이날 다시 만나기를 희망할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이 네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더 이상 절망하지 말라! 그녀가 천국의 문으로 들어와 두 팔로 너를 안아주리라. (……)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고, 맑으면서도 부드럽게 엮어놓은 것처럼, 근엄한 구름으로 만들어진 합장단이 천사처럼 하늘에 떠 있다. 파란 하늘 저편에 마치 그녀를 닮은 듯한, 가벼운 향기로 만든 날씬한 형체가 떠오른다. 너는 즐겁게 춤을 추는 그녀를 본다. 너무나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모습. 하지만 울리케 가족은 괴테가 사는 곳의 근처까지 왔으면서도 괴테를 만나지 않고 돌아간다. 심지어 괴테에게 방문 사실조차 알리지 않는다. 우연히 마차 안에서 울리케 가족의 모습을 본 괴테는 현실의 벽을 깨닫고, 사랑의 고통으로 찢어질 듯한 마음을 경험한다. 결국 둘은 헤어지지만 죽는 날까지 서로를 그리워한다. 16년 동안 울리케 폰 레베초를 모셨던 몸종 마리 새퍼는 1900년 11월 12일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보고했다. 울리케 폰 레베초는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들 때 얼굴에 식은땀을 흘렸다.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편지 꾸러미를 은쟁반 위에 올려놓고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타고 남은 재는 작은 은상자에 넣어 봉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더없이 소중한 이 물건을 관 속에 함께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뜻대로 했다. 그녀는 새벽 네시경에 기침을 하면서 깨어났다가 새벽 여섯시경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증손녀가 남긴 글에 의하면 그것은 괴테의 편지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