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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본 한국불교전서를 펴내며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해제 일러두기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서序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사운四韻 백 수 주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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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본 한국불교전서'는 한문으로 된 '한국불교전서'에 실린 총323편의 불교문헌 전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완역하여 출판한다.
'한국불교전서'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집성한 '속장경續藏經' 간행 이후 우리나라의 불교전적을 집대성한 것으로 동국대학교출판부가 1989년에 전 10책을 간행하였고, 이후에 4책의 보유편이 나왔다. 현재 사기私記, 사지寺誌 등을 정리하는 후속작업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는 2007년부터 불교학자들과 함께 문·사·철을 망라한 번역·연구자들을 다양하게 참여시켜 증의, 교감, 주석, 해제 등 학술적 완성도를 높인 번역 작업을 통해 출간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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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찬술된 정토관련 저술로는 17세기 전반-'권념요록勸念要錄', 17세기 중반-'정토보서淨土寶書',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 18세기-'보권염불문普勸念佛文', '신편보권문新編普勸文',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 19세기-「권왕가勸往歌」, 「자책가自責歌」, 20세기-「정토찬백영淨土讚百詠」 등이 대표적이다.
나암보우懶庵普雨의 '권념요록'은 원나라 사람인 왕자성王子成의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에서 왕생전 10편을 가려내고 여기에 「왕랑반혼전」을 추가하여 펴낸 한글현토본 염불권장서이다.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백암성총의 저술활동이 두드러지는데, 1686년에 개간한 '정토보서'와 1693년에 간행한 '백암정토찬'이 있다. 백암성총은 1681년 폭풍을 만나 전라도 신안의 임자도에 우연히 떠내려 온 정토서적을 간추려 '정토보서'를 펴내었는데, 이는 아미타불의 인지에서 염불법문, 왕생전에 이르는 복합적인 염불권장서로서 나름대로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이다. 이어 7년 후 그의 나이 63세 때인 1693년에 성총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적 체험 속에 이를 융합시켜 '백암정토찬' 100수를 완성하였다. 18세기에는 거의 1세기에 걸쳐 한글로 된 염불권장서가 광범위하게 판각되었다. 1704년 용문사에서 개간된 '보권염불문'은 국한문 대역의 염불서로서 최초의 판본은 1741년 수도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1764년 동화사, 1765년 흥률사, 1765년 묘향산 용문사, 1776년 해인사, 1787년 선운사 본의 간행으로 성황을 이루게 된다. 1776년의 '신편보권문' 역시 이러한 움직임의 후반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 문헌은 18세기 염불신앙의 흥성을 반증하면서 동시에 그 흥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1764년에 동화사에서 '보권염불문'을 판각한 기성쾌선箕城快善은 「회심가」를 지어 '보권염불문'에 편입시켰으며,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이라는 논설에서 당대의 민중들의 근기에 맞는 일단의 법어를 완성할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이를 「염불환향곡」이라는 장편의 한문가요로 재창조하였다. 18세기 이후 19세기에 걸쳐 여러 편의 불교가사(「회심곡」, 「회심가」, 「권왕가」, 「자책가」)가 창작되거나 구연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1850년대에 건봉사의 만일염불회와 관련이 있는 동화축전東化竺典의 「권왕가」는 1200구의 장편 한글 가요로서 지금까지 나온 염불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하나로 포괄하는 총체적인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장편의 염불가요가 나오게 된 문학사적인 배경에는 물론 '정토보서'와 '백암정토찬'에 그 연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금명보정이 「염불요문과해念佛要門科解」라는 논설과 「淨土讚 百詠」이라는 100수의 장편 염불가요를 저술하였다. 특히 「정토찬백영」은 저자가 적은 후발(1914)에 따르면 이 책은 미타경과 백암성총의 정토찬을 읽고 정토찬의 100수의 운자를 그대로 따르면서 새로 창작한 게송인 것이다. 이처럼 '백암정토찬'은 조선 후기 삼문수학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백암성총이 지은 정토가요로서 당대의 불교사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정토삼부경 이외에 다른 저작이 없었던 정토신앙의 개설서를 최초로 펴낸 것이 '정토보서'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을 부기하여 펴낸 대중적 염불권장서가 '보권염불문'이었다고 볼 때 조선후기의 염불신앙의 흥성에 이론적 뒷받침이 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문 가요로서 '백암정토찬'은 염불신앙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여기에 자신의 삶과 수도인으로서의 지향을 서정적으로 담음으로써 한 편의 시로서 문학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장편의 한문가요의 전통은 18세기 중엽에 箕城快善의 「念佛還鄕曲」으로 이어지게 되며, 다시 1914년에 「백암정토찬」의 시적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정토찬백영」의 찬술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백암정토찬'의 창작과 판각에는 조선후기의 불교사상사의 전환, 출판문화사의 일대 장관, 염불신앙을 바탕으로 한 장편 가요의 전통을 창출한 문학사적인 의의 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