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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랭퍼드 서문
제1장 종말의 시작 제2장 트리피드의 출현 제3장 시력을 상실한 도시 제4장 다가오는 그림자 제5장 한밤중의 불빛 제6장 생존자들과의 만남 제7장 생존자들의 회의 제8장 노예 신세가 되다 제9장 전염병과 피난 제10장 틴셤 장원 제11장 계속 나아가다 제12장 막다른 곳 제13장 희망을 품고서 제14장 셔닝 농장 제15장 줄어드는 세계 제16장 외부와의 접촉 제17장 전략적 후퇴 해설 | ‘아늑한 파국’으로 묘파한 현대인의 불안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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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수요일로 알고 있는 날이 마치 일요일과 같은 소리로 시작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봐야 맞는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렇다고 느꼈다. 하지만 좀 더 정신이 명료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도리어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거나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치면, 남보다는 오히려 내 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래도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곧이어 또 다른 시계가 크고도 뚜렷한 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시계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8시를 느긋한 태도로 알렸다. 곧이어 나는 상황이 섬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p.31~32 이 식물이 육식성이라는 것, 즉 그놈의 꽃받침에 붙잡힌 파리라든지 기타 곤충들이 결국 그 안의 끈적끈적한 물질에 의해 소화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약간은 혐오감을 느꼈다. 온대에 사는 우리도 식충 식물에 관해 아주 모르지는 않았지만, 특수 온실 밖에서 그놈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익숙하지가 않았기에, 우리로선 그놈들을 뭔가 약간은 거북스럽다고, 또는 최소한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경악할 만한 발견은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트리피드가 줄기 끝에 달린 나선형 가지를 뻗으면 무려 길이 3미터의 가늘고 독침 달린 무기가 된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분출되는 독으로 말하자면 맨살에 정통으로 맞을 경우에는 사람도 너끈히 죽일 만하다는 사실이었다. --- p.92 내가 이전까지 한 번도 떠올려 보지 못한, 그러나 이제야 떠올린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인간 두뇌의 존재가 인간의 우월함을 곧바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거였다(물론 대부분의 책에서는 마치 그렇게 보장해 주는 것처럼 오해를 부추기고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인간의 우월함이란, 소폭의 가시광선을 통해 두뇌에 전달되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이었다. 인간의 문명, 즉 인간이 달성한 것과 장차 달성할 것들의 총체 역시, 빨간색에서 보라색에 이르는 진동의 폭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런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 pp.222~223 이처럼 무너져 내리는 풍경보다는, 오히려 조용한 시간에 때때로 나를 엄습한 향수가 더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시골에 혼자 있을 때면 예전 삶의 즐거움을 회고할 수 있었다. 반면 황량하고 천천히 무너져 가는 건물들 사이에 서 있을 때면 오로지 혼란만을, 좌절만을, 목적 없는 충동만을, 그리고 사방에 퍼져 있는 텅 빈 차량의 땡그랑 소리만을 떠올리게 마련이었으며, 우리가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으니……. --- pp.444~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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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야기.”_ 아서 C. 클라크
풍부한 지성,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의식, 진화론적 상상력으로 냉전 시대의 불안을 형상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걸작 국내 최초 완역본 출간! 존 윈덤은 1930년대의 스페이스 오페라와 1960년대의 진지한 SF의 특징을 절충하여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는 우주 모험, 외계인의 침공 등 스페이스 오페라 계열의 전형적인 소재와 구성이 주를 이루던 1930~1940년대 SF 문학의 풍조에서 벗어나, 일상에 좀 더 밀착된 현실적인 소재와 진지한 주제를 담은 ‘논리적 환상소설’이라는 작풍을 개척했다. 영화 「A.I.」의 원작자로 유명한 영국의 SF 작가이자 비평가인 브라이언 올디스는 그의 업적과 위상에 대해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쟁 이후 영국 SF의 부흥에서 존 윈덤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윈덤은 존 베이넌, 윈덤 파크스 등 여러 필명으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정보부 산하 검열과와 육군 통신대에서 근무하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했다. 전쟁의 체험은 기존의 윤리나 도덕적 가치관에 회의감을 갖게 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자기 세대가 실현하기 위해 싸웠던 세계에 대한 환멸과 반성을 기록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존 윈덤’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발표한 장편이자,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출세작인『트리피드의 날』이다. 『트리피드의 날』은 1950년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기이한 천문 현상으로 인해 인구 대다수가 시력을 상실하고, 치명적인 독침을 휘두르는 식물 트리피드가 인간을 습격한다는 재난 상황을 그리고 있다. 트리피드는 원래 소련이 전 세계의 식량난을 타개할 목적으로 개발한 육식성의 보행 식물로, 질 좋은 식용유의 원료로서 엄격한 관리하에 재배되었다. 그런데 그 씨앗이 비행기로 수송되던 중에 폭파 사고로 유출되면서 전 세계 각지에 자생하게 되었고, 인간 대다수가 시력을 상실하여 이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자연재해나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인해 문명이 붕괴되는 모습을 그린 일반적인 종말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재앙의 상황 자체가 아닌, 이에 함축된 현대 문명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는 것으로 무게를 더한다. 특히 유성우로 인해 인구 대다수가 시력을 잃는다는 설정과, 파괴된 세계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식물 트리피드에 대한 묘사는 강렬하기 이를 데 없다. 윈덤은 인간의 주된 강점인 “시력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자연스레 생물 종의 우위에 놓이게 된 괴기 식물을 창조해 냈다. SF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괴물 중 하나로 꼽히는 트리피드는 지능과 언어를 가졌지만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 더욱 섬뜩한 공포를 자아낸다. 이러한 진화론적 상상력은 참신한 발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지탱하는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인공위성 무기와 생화학 전쟁의 등장에 대한 선견지명과 당시 주요한 정치적 화두였던 냉전 체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왜 이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올랐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풍부한 지성,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어우러진『트리피드의 날』은 영화와 드라마로 수차례 각색되었으며, 후대의 많은 작품에도 영감을 제공했다. 이 작품은 “무시무시하고도 강력한 윈덤의 상상은 여전히 중요한 알레고리이자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가디언」)는 평가를 받은 만큼, 핵 위협과 무분별한 생물학적 실험 및 대재앙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를 던지며 SF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