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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낳은 딸아기씨
버들잎 띄워 물바가지 건네니 허벅에 붓대를 걸쳐 두고 삼 년 쌓인 것이 글공부뿐이랴 게으른 정수남아 정 없는 정수남아 문도령 놀던 곳이 어디더냐 비단 같은 상전님 손이나 잡아 보자 서러운 정수남아 봄잠에서 깨어나라 넓은 세상천지에 내 갈곳은 어디인가 박씨 같은 맨발로 칼선다리 올라서니 그 술에는 독이 들었습니다 나는 씨를 고를 테니 너는 밭을 갈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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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처음 연 신과 인간들의 이야기, 신화편
한겨레 옛이야기 신화편 다섯 권은 1999년 초판 발간 당시 바리공주, 자청비 등 우리 구비신화의 캐릭터들을 어린이들에게 처음 소개함으로써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신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추천의 뜻을 밝혔다. 다섯 권의 책은 어린이들에게 우리에게도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않은 창세 신화가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후 10년 동안 우리 신화에 대한 관심은 폭넓게 확산되어 왔다. 신화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연구자들뿐 아니라 어린이책 작가들도 창작을 뒷받침할 무한한 원천으로 우리 신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겨레 옛이야기 신화편도 그러한 성과에 발맞추어 글과 그림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2009년 새롭게 선보이는 신화편 5권은 지난 10년간 어린이책 분야에서 구비신화에 기울여온 다양한 노력을 집약시킨 성과물이라 할 만하다. 이번에 펴내는 5권에는 지난 10년간 독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재조정해 총 8개의 신화를 5권에 담았다. ‘바리공주’와 ‘자청비’ 등 호흡이 긴 이야기는 한 권에 하나씩 담아 서사의 깊이를 오롯이 느끼도록 했다. 이 밖에 ‘소별왕 대별왕’ ‘당금애기’ ‘오늘이’ ‘한락궁이’ ‘강림도령’ ‘궤네깃또’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각 권에 담겼다. 이번 개정판 작업에는 구비문학 연구자 신동흔 교수를 비롯해 각 캐릭터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길 만큼 이 분야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온 동화작가들이 필자로 합류했다. 작가들은 특히 신화를 재화하는 데 있어 옛이야기의 특성을 충실히 따랐다. 구비신화가 대부분 무가(巫歌)로 전승돼 온 특성을 반영해, 「창조의 신 소별왕 대별왕」과 「영혼의 수호신 바리공주」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노래하는 듯 리듬감을 최대한 살렸다. 나머지 이야기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전의 맛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일러스트는 신화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어린이들이 친숙해할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책 앞부분에 ‘이야기지도’를 삽입해 아이들이 이승, 저승, 하늘나라 등 우리 신화의 공간을 이해한 뒤 서사를 따라갈 수 있게 배려했다. 어찌 보면 신화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의 얘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차근히 살펴보면 신화에 담긴 뜻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아주 가깝게 닿아 있다. 특히 우리 신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모진 고난에 맞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마침내 신의 자리로 올라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우리 신화의 특징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 아이들에게 신화 속 캐릭터들을 친근한 벗으로, 정신적인 버팀목으로 제시할 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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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세상을 가슴에 품은 사랑의 여신
봄 여름 가을 고을마다, 벌판마다 물결치는 저 오곡 오곡은 어디에서 왔을까? 땅, 사람 생겨날 때 오곡도 생겨났나? 하늘옥황 오곡 씨앗, 누가 언제 가져왔나? 자청비가 자청해서 가져왔네. 하늘옥황 오곡 씨앗 가져왔네. 그리하여 농경 신이 되었다네. 자청비는 어찌하여 농경 신 되었나? 그 내력이 궁금하다. 지금부터 들어 보자. 『농사와 사랑의 여신 자청비』는 제주도에서 구전돼 온 민간신화 ‘세경본풀이’를 새롭게 엮은 것이다. ‘세경본풀이’는 제주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수많은 신화 가운데도 특히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어 대표적인 신화로 손꼽힌다. 예상을 깨며 신비롭게 펼쳐지는 사연도 사연이지만 ‘자청비’를 비롯한 주인공이 전해 주는 매력 또한 대단하다. 이 책에서는 여러 편의 ‘세경본풀이’ 자료 가운데 이달춘본을 바탕으로 내용을 엮었다. ‘세경본풀이’의 ‘세경’은 농사의 신을 뜻하는 말이다. 이 신화는 이 땅에 농사의 신이 자리잡은 내력을 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신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농사를 도와주는 세경 신은 모두 세 명이다. 기후신인 문도령, 농사와 곡물의 신 자청비, 가축의 신 정수남 이렇게 세 명의 세경신이 어울려 농사를 돕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자청비이다. 아주 아름답고 또 씩씩한, 무척이나 매력적인 여인이다. 자청비는 뒤에 농사의 신이 되지만, 그 걸어온 길은 ‘사랑의 행로’였다고 할 수 있다. 자청비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은 때로는 씩씩하고 때로는 기발하며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엄숙하기도 해서 사람을 푹 빠지게 만든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자청비라고 할 수 있다. 자청비가 걸어간 길은 무척이나 파란만장하다. 거무선생 서당, 굴미굴산, 서천꽃밭, 마고할미 집, 하늘옥황……. 여인의 몸으로 그 넓은 세상을 두루 누비면서 사랑을 찾고 인생을 찾아 결국에는 신이 된 것이다. 문도령과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자청비가 내내 앞장서서 사랑을 이끌어 나갔으니 당장 요즘 세상에 데려온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야말로 21세기형 인물인 셈이다. 어찌 보면 자청비가 펼쳐 보이는 사랑의 행로와 농사 신이라는 직책이 서로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청비는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한테 하늘 곡식을 베풀고 풍년이 되도록 도와줌으로써 제 마음에 품은 깊은 사랑의 힘을 세상에 널리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큰 사랑을 널리 퍼뜨린 덕에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여신 자청비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고도 뿌듯한 일이 아닐까. 누구의 사랑이라도 편안히 받아 줄 크나큰 사랑의 여신 자청비, 이 시대 아이들의 동반자가 될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