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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phine de V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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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출간되고 몇 달 후, 나는 글 쓰는 일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삼 년 남짓, 나는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한 줄도. 공문서에 대한 회답, 감사카드, 휴가지에서 보내는 엽서, 하다못해 쇼핑 목록 몇 줄조차 쓰지 않았다. 어떤 모양새든 형식을 갖춰 써야 하는 글이라면 한 줄, 한 마디도. 노트와 수첩과 메모지만 봐도 통증을 느꼈다. 점차 글을 쓰는 동작 자체가 겁이 나고 자신 없어졌다. 볼펜을 쥐는 일조차 갈수록 어려웠다. 시간이 더 흐르자 컴퓨터의 워드 파일을 열기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 나는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쓰기, 그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었다. --- p.7~8
오늘도 여전히, 우리 관계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진전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단 몇 달 만에 L이 내 삶에서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L은 나를 진정으로 사로잡았다. L은 나를 놀라게 하고, 유쾌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주눅 들게 했다. L은 독특하게 웃고, 독특하게 말하고, 독특하게 걸었다. L이 내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간단해 보였다. 그토록 자연스럽고 완벽하고 조화롭기 위해서는 손뼉 한번 치면 충분한 것처럼. 때때로 그녀와 함께 있다가 헤어지거나 긴 통화를 한 뒷면 그녀와 나눈 대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 p.68 그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는 순간, 필요한 공간이 확보되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연하게 분류되어 깨끗하게 옮겨 적히는 순간이 있다. 침묵이 되돌아오고, 쿠션이 의자 위 딱 좋은 위치에 놓여 있고, 컴퓨터 자판은 손가락이 두들겨주기만을 기다리는 순간이. 몰입해야 하는 순간, 리듬과 충동과 단호함을 되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지 않았다. (…)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다고, 설령 고통스러웠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기쁨은 배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건 그냥 실패일 뿐이었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컴퓨터를 마주 보고 있었다. --- p.134 “그게 진짜 이야기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거나 ‘매우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네가 믿게끔 공들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 나는 현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진 않아. 현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해. 네 말대로 현실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변화되고, 해석될 필요가 있어. 소설가의 시선과 관점 없이는 아무리 잘 풀려봐야 죽도록 지루하고, 잘 안 풀리는 경우엔 엄청난 불안을 야기하지. 그리고 어떤 재료에서 출발했든 그 작업은 언제나 픽션이라는 형태야.” ---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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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 문단의 ‘젊은 거장’ ‘그늘의 작가’, 델핀 드 비강
평단과 독자를 사로잡은, 진짜 소설의 힘! 삼십대 중반이라는 조금 늦은 등단을 스스로 보상하듯 데뷔 이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작가 델핀 드 비강. 그녀는 프랑스 서점대상, 로터리상, 솔리다리테상, 코르시카 독자상, 프낙상, 고교생이 뽑은 르노도상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굵직한 상을 휩쓸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문단에서도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첫손에 꼽히고 있다. 어느덧 데뷔 15년. 델핀 드 비강은 자신의 문학성이 절정에 달한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를 통해,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과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을 동시 수상하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프랑스의 독자와 비평가가 왜 그토록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는지, 이제 독자들이 직접 확인할 차례이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누가 나를 일부러 닮아갈 수 있다는 걸. 나를 완전히 부숴버릴 수 있다는 걸…….” 소설은, 작가와 이름이 동일한 주인공 ‘델핀’이 몇 년 동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전작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한 부담 때문일까. 그녀는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때, 괴로워하던 그녀 앞에 나타난, 자신과 너무나 닮은 여자 L. 직업도, 영화에 관한 취향도, 심지어 소녀 시절 열광하던 스포츠 스타까지도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델핀은 L에게 급격하게 끌린다. 자기 일에 여념 없는 애인, 성장하는 만큼 멀어지는 아들딸. 갈수록 고독해지던 델핀은 L에게서 운명 같은 우정을 기대하지만, L이 델핀에게서 원한 것은 전혀 달랐는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강렬한 문학적 도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낯설지 않다. 브라운관, 스크린, 서점… 도처에 실화가 제재라는 작품이 넘친다. 대중은 상상력으로 빚어낸 ‘100% 창작물’보다는 언제 어디선가 실제로 벌어진 일이 뿌리인 작품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픽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실화를 바탕으로》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의문을 품게 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소설의 화자인 ‘델핀’은 현실 속 델핀 드 비강과 너무나 닮아 있고, 작품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신작’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그래서 지금껏 델핀 드 비강이 누구보다 뛰어난 필력을 자랑해온 ‘자전소설’인가 여기려는 순간, 이야기는 도저히 현실로 여기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아 독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아주 지능적으로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작품을 완성했다. 주인공 이름을 ‘델핀’이라고 지었다는 데서 이미 작가와의 두뇌싸움은 시작된다. 마치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진실과 허구를 구분해보시라’라고 독자를 도발하는 듯하다. 델핀 드 비강은 출간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소설은 우리가 사로잡힌 ‘사실 추구’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화는 따라올 수 없는 ‘지어낸 이야기’의 우월성을 일갈하는 것도 같고, 상상력의 산물은 “훨씬 더 멀리 갈 배짱”이 있는 드라마틱한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도 같다. 동시에, 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며 그 모호성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토록 문학적이고, 이토록 품격 있고, 이토록 묵직한 재미라니…”_홍은주(옮긴이) “소설은 이제 죽었다, 픽션은 끝났다”라는 주장과 “독자는 여전히 가공된 이야기를 현실로 상상하며 꿈을 꾼다”라는 주장. 소설 속 화자 델핀과 L의 대화를 통해, 불꽃 튀는 이론적 공방을 벌이는 이 소설은 분명 가볍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그러면서도 400쪽 남짓한 소설은 잠깐의 지루함도 허용하지 않고 독자를 밀어붙인다. 고독과 슬럼프로 고통받는 작가, 작가에게 집착하는 여자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한 편의 스릴러로 읽어도 만족스러운,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은 ‘읽는 재미’가 보장되는 페이지터너의 매력까지 지니고 있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에는 다양한 현대소설 작품이 소재로 사용됐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각 작품을 찾아 읽는다면, 이 소설의 감동과 충격은 한층 배가될 것이다. 이 모든 장점을 아우르듯, 번역자 홍은주는 “세상의 흔한 ‘재미있는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독자의 가슴속에 숱한 물음이 남는다는 점에서 여느 재미있는 책들과는 좀 다르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엄청난 뒤끝을 남긴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 초, 델핀 드 비강은 《실화를 바탕으로》의 출간을 기념해 프랑스문화원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중앙대와 서강대 강연, 독자와의 만남 등 다채로운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추천사 교묘하다! 치밀하다! 집요하다! -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 심사평 이것이 바로 진짜 소설의 힘이다! - 라크루아 델핀 드 비강은, 이 혼란을 즐기고 있다. - 르피가로 잠시 허리를 펴려고 책을 내려놓는 시간마저 아쉽다. - 오주르뒤엉프랑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