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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호 / 고무줄 / 레몬즙 짜개 / 담배 / 조그만 백 / 애칭 / 닭 꼬치구이
/ 멘소래담과 오로나인 / 칵테일의 이름 / 트라이앵글 / 그릇장 / 지도 / 식전에 마시는 술과 식후에 마시는 술 / 욕실 / 룰라 매 / 역 / 노란색 / 무당연유 / 나이프 / 케이크 / 책받침 / 클렌저 / 스프링클러 / 상처 / 요구르트 / 여행 가방 / 운동화 / 완두콩밥 / 준비 / 말린 잎 말린 꽃 / 결혼식 / ‘도다’라는 말 / 소금 / 핑크색 / 문라이트 세레나데 / 장화 / 프렌치토스트 / 연필과 샤프펜슬 / 비누 / 자장가 / 삶은 계란 / 건포도 맛 / 아주머니의 스카프 / 배스 타월과 배스로브 / 경정 / 좌우명 또는 좋아하는 말 / 서재의 냄새 / 빗자루와 총채 / 오버 / 설탕 / 전화 / 쥐치 껍질 / 양화극장 / 해가 길어진다는 것 / 리본 / 추리소설 / 설거지용 스펀지 / 폭소 / 면세점 / 괜찮다는 것 / 옮긴이의 글 |
Kaori Ekuni,えくに かおり,江國 香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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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생각하지만, 나는 이름에 꼼짝 못하는 성격이다. 책이든 CD든 제목만 보고도 갖고 싶어 안달하는 일이 종종 있다. 가끔 마권을 사는데, 그것도 말의 이름만 보고 산다.
(중략) 말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말에 휘둘리다니, 하고 가끔은 나 자신을 비웃지만, 한편으로는 말에 휘둘리지 않으면 소설가로선 끝장이란 생각도 든다. --- 「칵테일의 이름」 중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생각의 결과인 ‘결심’은 모두 욕조에서 이루어졌다. 소설의 제목과 결말, 나 자신의 행동까지-여행을 떠날까, 결혼을 해야겠어, 이혼할까 봐, 아니 역시 이혼은 하지 말자-모두 욕조에서 결정했다. ---「욕실」 중에서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빠 서재의 중심된 냄새는 정신의 그것이다. 집필에 몰두할 때, 쫓기고 있는 정신의 냄새, 또는 고뇌의 냄새. (중략) 내가 일하는 방은 아빠의 서재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지난 몇 년 동안 그 방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아빠 서재의 냄새가 났다. 똑같은 냄새가. 며칠을 계속해서 원고를 썼을 때, 예정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밖에 나가는 것조차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나는 사방을 돌아본다. 방의 모습은 전혀 다른데, 냄새만 똑같다. 순간적으로 우뚝 섰다가, 마침내 피식 웃고 만다. “아빠, 나 쫓기고 있어.” 하고,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서재의 냄새」 중에서 복잡한 전철을 탔을 때면 간혹 생각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 어린애였다. 거짓말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목욕을 싫어하고 잠자다 오줌을 싸고 이를 닦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 --- 「괜찮다는 것」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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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를 ‘이루고 있는’ 것
꼬질꼬질 손때 묻은 곰 인형, 서랍 속 한 귀퉁이가 구겨진 편지, 첫사랑을 이루어준다는 벚꽃 잎…… 누군가의 눈에는 당장 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하찮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보물이 되기도 한다. 에쿠니 가오리에게도 그녀만의 ‘편애 리스트’가 있다.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편애하는 것은 심의 일정한 굵기가 유지되어 원고를 쓸 때 편리한 ‘샤프펜슬’, 어린 에쿠니 가오리가 편애했던 것은 밤 9시만 되면 엄마와 여동생을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했던 ‘양화극장’, 연애에 푹 빠졌던 에쿠니 가오리가 편애했던 것은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프렌치토스트’.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 담긴 60개의 에세이는 소녀에서 여자가 되기까지 에쿠니 가오리가 쌓아온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누구와 무엇을 함께했는지, 그래서 어땠는지, 오랜 친구와 주제 없는 대화를 나누듯 이야기한다. 엉뚱한 듯 우아하고, 덤덤한 듯 애틋한 그녀의 작품들과 꼭 닮은 에쿠니 가오리를 만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글은 짧지만 그 행간에 담긴 에쿠니 가오리의 마음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에쿠니 가오리가 ‘이루어가는’ 것 목욕을 좋아하는 『반짝반짝 빛나는』의 쇼코는 소설의 제목과 결말, 자신의 행동까지 모두 욕조에서 결정했다는(「욕실」 중) 에쿠니 가오리를 닮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악 발표회에서 탬버린을 맡은 이후로 탬버린을 좋아하게 된 『홀리 가든』의 가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음악 발표회에서 트라이앵글을 맡은 이후로 트라이앵글을 친근하게 생각하는(「트라이앵글」 중) 에쿠니 가오리와 닮았다. 에쿠니 가오리는 그렇게 조금씩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적을 넘어 다양한 세대가 각자의 이야기라고 느낄 만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에쿠니 가오리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삶’ 그 자체이기 때문 아닐까. 사랑이라는 테마든 고독이라는 감정이든, 결국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 삶의 한 시기에서의 일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는 그러한 이해의 바탕이 되는, 에쿠니 가오리가 사물과 사람, 그리고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오롯이 드러나 있다. 자신의 하루를 통해 타인의 하루를 위로하는 에쿠니 가오리. 그녀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제목처럼 취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