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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유역 고대문명의 변천과 주민집단 - 송호정
Ⅰ. 머리말 Ⅱ. 요하문명과 요하문명론 Ⅲ. 요서지역에서 고대문명의 변천과 주민집단 Ⅳ. 요동지역의 청동기문화 변천과 주민집단 Ⅴ. 맺음말 홍산문화의 연구현황과 문제점 - 이해련 Ⅰ. 머리말 Ⅱ. 홍산문화 연구사 Ⅲ. 홍산문화의 중요 유적 및 유물 Ⅳ. 홍산문화 토기 · 옥기 연구현황과 문제점 Ⅴ. 맺음말 요서지역의 문명 및 초기국가 형성에 관한 연구현황과 문제점 - 이재현 Ⅰ. 머리말 Ⅱ. 중화문명 기원지로서의 홍산문화 연구 Ⅲ. 방국으로서의 하가점하층문화 연구 Ⅳ. 맺음말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청동기문화 연구의 성과 - 이청규 Ⅰ. 머리말 Ⅱ. 청동기의 종류와 형식 Ⅲ. 청동기문화의 유형 분류와 그 변천 Ⅳ. 청동기문화의 상호교류와 그 중심 Ⅴ.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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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론 주장이나 요령성박물관 전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요하문명에 대한 초기의 논의들은 아직 동북지역의 구체적인 민족 역사와 거의 연결되지 않고, 주로 고고학적인 발굴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는 정도이다.
요하문명론 주장에는 한국 고대사인 고구려 · 발해 역사의 해석은 물론이고 부여사와 고조선사 해석 문제도 포함된다. 게다가 요하문명론이나 중화문명탐원공정 같은 작업이 중국 정부의 일관된 계획하에 추진되기 때문에 한국학계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하문명 전시를 통해 중국학계가 의도한 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후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학계에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중국학계의 의도를 읽어 내려고 시도하기보다 먼저 우리의 시각에서 요하지역 고대문명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역사연구가 민족사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하겠다. --- 송호정 「요하유역 고대문명의 변천과 주민집단」 중에서 기원전 2천년대 전반에 북방 혹은 중원지역으로부터 청동기가 소량 유입된 고고학적 증거는 보이지만, 일정한 중심지가 형성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2천년대 후반 은말 - 주초에 대정 광산유적에서 보듯이 요하 상류의 구리광산을 중심으로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 구리광산의 개발과 청동기의 생산이 자체 개발된 기술을 토대로 한 것인지 인근지역으로부터 노하우가 전달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둘 다 가능성이 있지만, 청동기 제작에 고도로 전문화된 야금술이 동원되어야 하고, 이 지역이 보다 이른 북방계 청동기에 대한 정보나 인력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음을 고려할 때, 인구이동에 따른 다른 문화와의 교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천년대 후반이 되면 요서지역에서는 위영자문화 권역에 중원계 청동기의 보급이 이루어진다. 앞서 보듯이 이는 예기 갖춤세로서 당시 은말 - 주초의 중원 혹은 하북지역과의 정치적인 교류의 산물로 설명된다. 요서지역에서는 물론 순산둔문화에서 보이는 북방 청동기 갖춤새는 북방 · 몽골지역과의 교류 산물로서 무기와 공구 위주이므로 중원계의 경우처럼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정치 · 군사적인 교섭으로 보기 어렵다. 두 경우 다 재지화된 형식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동기 자체가 공반하는 상호 융합현상도 보이지 않는다. --- 이청규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청동기문화 연구의 성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