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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있는 골목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엄마의 무릎 보일러실 쟁탈전 잔치 결승선에서 우리들의 화장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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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떠 있는 우리들의 화장실이여!”
삶의 애환을 신명 나는 축제로 승화한 이명랑의 대표작 비루한 진창 한복판에서 활기차게 그려낸 영등포 시장 사람들의 진짜배기 삶 이야기 ▣ 시장의 언어를 생생하게 전하는 작가 이명랑의 『삼오식당』 영등포 시장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 이명랑의 『삼오식당』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대표작인 『삼오식당』은 영등포 시장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해 생활 언어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면서, 진짜배기 삶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삼오식당』에는 「어머니가 있는 골목」,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엄마의 무릎」, 「보일러실 쟁탈전」, 「잔치」, 「결승선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화장실」까지 총 일곱 편의 연작을 실었다. 우리 문학은 이제까지 어느 특정 시장을 이처럼 성실하게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더구나 재래시장에 대한 대응책도 분명하지 않은 뉴타운 개발의 허황된 복음이 횡행하는 이 시절에 『삼오식당』이 지닌 의미와 보존 가치는 한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임헌영(문학평론가) 『삼오식당』의 화자인 ‘나(이지선)’를 통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영등포 시장 속 다양한 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은 영등포 시장 안, 삼오식당 둘째 딸인 ‘나(이지선)’의 혼수를 들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가 ‘나랏밥 먹는 나리들’의 집안으로 시집가게 되자, 삼오식당 여주인인 엄마는 부족한 것 없이 보내려는 마음에 천만 원짜리 대리석 장롱을 준비한다. 그것을 보기 위해 시장 사람들은 저녁 무렵까지 시끌벅적하게 모여든다.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노름꾼 남편을 둔 0번 아줌마가 남편 대신 종업원 황 씨에게 가게를 맡기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한편 식당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돌보는 엄마의 빠듯한 하루와 한평생 밥장사를 하면서 생긴 퉁퉁 부은 무릎을 「엄마의 무릎」에서 만날 수 있다. 「보일러실 쟁탈전」에서는 다가구 주택에 사는 ‘나’와 ‘은지 엄마’가 보일러실 사수를 위해 구둣방 사장에 맞서 합동 작전이 펼쳐진다. 「잔치」에서는 자기네 가겟방 아랫목에 붙어 앉아 있던 봉투 아줌마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당진상회 할머니가 굿을 하고 난 음식으로 시장 사람들을 모아 뒤풀이를 벌이는 장면을 ‘잔치’로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굿을 한 다음 날, 봉투 아줌마는 당진상회 할머니에게 봉투 장사를 하던 평상을 넘겨준다. 「결승선에서」는 난치병이 있는 영선이 장터 안, 무료 치료기 체험을 하는 장면을 담았다. 영선은 병이 나으려면 치료기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주변에 떠밀려 치료기 위에 눕는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화장실」에서는 시장에 하나 있는 똥할매의 화장실을 둘러싼 소동을 담아놓았다. ▣ 시장의 숨은 애환, 끝없는 삶의 의지로 펼치는 신명 한마당 시장에 구경거리가 생겼다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에서는 ‘나’의 혼수가 들어오는 날, 동네 아줌마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바람에 장롱 구경 행렬은 저녁 늦게까지 끊이지 않는다. 시장 사람들에게는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웃 간의 정리(情理)가 생동한다. “워매, 워매! 그랑께 시방 요거시 대리석 문짝이구만잉? 시상에 좋네, 시상에 좋아!” 안방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커피장수 차씨 아줌마다.(p.7) “백이 아녀? 그라믄 천? 워매! 워매! 시상에 놀라 자빠지겄네!”(p.8) 봉투 아줌마가 봉투 장사를 그만두고 당진상회 할머니에게 평상을 넘겼을 때에도 초지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 시장 사람들을 보여 주는 「잔치」. 폐업한 봉투 아줌마의 쓰린 속은 연거푸 술잔을 채우는 그녀의 분주한 손놀림만이 말해 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목소리만 높이며 왁자지껄하다. 이렇듯 작가는 영등포 시장을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닌, 슬픔마저도 한잔 술과 함께 씻어버리는 곳이자, 노랫가락에 흘려보낼 수 있는 마력의 장소로 바꿔놓는다. 삼오식당 여주인이 맥주병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기저기서 다들 맥주로 먹는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고, 별안간 등장한 맥주에 당진상회 할머니는 사색이 되고, 영석이 엄마랑 독산동 아줌마랑 나는 이왕 먹을 거면 아예 당진상회 기둥뿌리를 뽑아버리자고 돼지머리, 홍어회무침, 새우젓 등등 닥치는 대로 쑤셔 넣기 시작했고, 막걸리만 먹다가 생전 못 먹어본 맥주를 마시더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는지 봉투 아줌마는 난데없이 일어나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pp.162~163) ▣ 같은 곳을 향해 옮기는 ‘우리들’의 발걸음 한편 종업원 황 씨의 아이를 임신한 0번 아줌마는 배가 불러오자 어디선가 몰래 애를 낳아 온다. 이를 지켜본 시장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와 다르게, 노름꾼인 남편과의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아주 잠깐 자연이었을” 거라는 ‘나’의 연민 어린 시선은 자칫 팍팍하기 쉬운 장터에서의 삶에 훈훈함과 위안을 불어넣는다. 시장 안에서 제일 많이 배웠다는 ‘지선’이지만, 그녀 역시 “별수 없이 나도 여기, 까라마조프가의 딸”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0번 아줌마도 어느 날 이렇게, 느닷없이 황 씨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면서 눈물 흘려야 되는 날이야 얼마나 수두룩한가! 거북이처럼 생활을 등에 지고 있는 여자가 하나 그 고달픔을 토로하고, 사내는 여자의 생활에 불어터진 투박한 손을 어루만져주었는지도. 그 순간에 사내와 여자는 그저, 아주 잠깐 자연이었을 게다. 사랑도, 배반도, 불륜도 아니고, 슬픈 사람들끼리 서로의 쓰린 곳을 그저 한번 핥아주었을 뿐인 거라고. 살려 달라고,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허공에다 대고 팔을 휘젓는 사람의 손을 꽉 붙들어 주는 거야, 가슴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이 아닌가. 0번 아줌마와 황 씨의 처음은 분명 그러했으리라고, 나는 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p.74) 또한 영등포 시장에서 수십 년째 밥장사를 하는 삼오식당 여주인의 무릎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손자를 들쳐 업은 채 장사를 하면서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다. 시장통에서 억척같이 벌어 자식들을 다 키우고도, 끝내 자신의 아픈 곳은 한사코 보이지 않으려는 어머니. 애먼 소리는 할지언정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모정(母情)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뻐근하게 한다. “애는 놔두고 가라니까! 그럼 삼십만 원 받고 새벽부터 와서 애 봐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려? 내 몸땡이 성할 때 니들 돈 벌라니까 왜 그려? 애는 놔두고 가! 큰애야! 최 서방! 내 몸땡이 성할 때, 내가 이거 식당이라도 할 때 니들은 돈 벌라니까 왜들 지랄이여, 지랄이! 내가 시방도 시퍼렇게 멀쩡한디.”(p.104)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화장실」에서 똥할매는 화장실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돈을 받아 시장 사람들의 원성을 산다. 돈이 아까우면서도 시장 사람들은 시장에 화장실 하나 변변하지 않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똥할매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똥할매가 화장실에 사람들을 가둬놓기까지 하자 엄마는 한 가지 대안을 내놓는다. 저녁 운동에 데리고 나선 동네 여자들과 함께 만들어낸 비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우리들의 화장실’이다. 장터 공원 안쪽에 새로 생긴,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 앞에는 한 떼의 아줌마들이 몰려서서 그네들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화장실 건설의 계획을 세우고 있고, 아줌마들의 등 너머, 등나무넝쿨 밑의 벤치 위에는 얇은 겉옷을 걸친 거지들 몇이 신문지를 덮고 누워서, 자정의 추위가 몰고 올 불면에 대비해 벌써부터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 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떠 있는 우리들의 화장실이여!(p.219) 작가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살며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장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우리 소설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 사람들을 다시 소설이라는 무대 위로 불러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삼오식당』에서 개인사적 이야기를 뛰어넘은 ‘우리들’의 행보를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