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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서울 옛이야기
600년 도읍지 역사와 지명유래에 관한 최고의 지식책! 그림과 만화·사진으로 익히고 다지는 5,000년 우리 역사·문화 이야기! 혀잰 서울시의 인구는 1000만 명에 달한다. 조선 초에 서울에는 가구 수가 1만 8천 호였고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다니, 600여 년 만에 100배 이상 늘어난 셈. 서울이 백제의 도읍이 된 것은 2천 년 전이고, 조선의 도읍이 된 것은 1395년의 일,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정식으로 선포한 이래 만 515년 동안 그 오랜 역사를 이어 왔다. 세계에는 서울보다 오래된 도시들이 많이 있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 515년을 채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조선시대 와서 한양으로 불리기 전 고려시대는 남경이라 불리었다. 남경은 고려의 도읍인 개경에 대응하는 말로 서울은 고려시대에도 주요 도시였던 것.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으로 불리었고 해방과 더불어 ‘서울’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다. 이처럼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서울에 살거나, 서울을 대한민국의 수도로 두고 있으면서도 서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이고, 서울 곳곳에 있는 동네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책은 서울 지명의 유래과 역사를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 서울이나 왕십리, 뚝섬 등의 유래와 을지로, 종로, 남산, 돈의동, 갈현동, 염리동, 소공동, 망우동 등 서울의 여러 동네 이름과 그에 얽힌 갖가지 사연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놓았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 몰입 교육이 대두되고 있지만, 세계인과 소통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과 콘텐츠라 할 수 있다. 한나라의 도읍이 될만한 땅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큰 강을 끼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식수를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산에 둘러싸여 있어 외적이 침입할 수 잆어야 하고, 평야에 자리잡아 생활이 편리해야 한다. 이러한 최적의 조건을 구비한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까지 무학대사와 ‘왕십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학대사는 태조의 명에 의해 새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한양(서울) 동쪽에 이르러 동야(지금의 왕십리) 근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학대사 곁을 지나가다가 채찍으로 소 엉덩이를 때리며 야단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놈이 참 무학만큼 미련하구나. 좋은 데를 두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니니” 무학대사는 깜짝 놀라 노인에게 물었다. “방금 말씀하신 미련한 무학이 바로 저입니다. 제가 지금 새 도읍지를 찾고 있는데,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는지요?” 노인은 북서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십리를 더 가서 찾으시오” 무학대사는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북서쪽으로 십 리를 더 가보았다. 그러자 사면이 높고 빼어난데다 주위가 아늑한 아주 좋은 터가 있었다. 그리하여 북악산 밑 경복궁 터를 중심으로 지금의 서울을 도읍지로 정하게 되었다. 무학대사가 노인을 만나 곳은 그때부터 ‘왕십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