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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1885 회화적 형성기
■ 1848-1871: 유년기와 청소년기 ■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 ■ 1872-1878: 그림의 비약적인 발전 ■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 ■ 카미유 피사로 ■ 1879-1881: 초기의 전시회 ■ 인상주의 ■ 카르셀 가의 화가의 집 실내 ■ 1882-1885: 코펜하겐과 루앙 ■ 프랑스: 제3공화정 ■ 물 마시는 소 1886-1890 브르타뉴와 기타 지역 ■ 1885-1886: 파리에서 퐁타방까지 ■ 춤추는 네 명의 브르타뉴 여인들 ■ 1887년: 첫 번째 마르티니크 섬 여행 ■ 오고가는 길 ■ 1888년: 퐁타방 ■ 에밀 베르나르 ■ 설교 후의 환영 ■ 퐁타방 화파 ■ 1888년: 반 고흐와 아를에서 ■ 레미제라블 ■ 빈센트 반 고흐 ■ 1889-1890: 르풀뒤 ■ 순결의 상실 ■ 상징주의 회화 ■ 도자기와 목공예 ■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1891-1893 이아 오라나 타히티 ■ 파페에테 ■ 프랑스의 꽃 ■ 태평양의 식민지화 ■ 마타이에아 ■ 뭐? 너 질투하니? ■ 자연과 마법 사이의 오세아니아 예술 ■ 옛날 옛적에 ■ 나비파의 초기 전시회 ■ 테하마나 ■ 어디로 가니? ■ 고갱 이후의 태평양 1893-1895 파리로 돌아오다 ■ 1893년: 첫 번째 대규모 전시회 ■ 모자를 쓴 자화상 ■ 19세기 말 프랑스 ■ 1894년: 몽파르나스의 작업실 ■ 자바 여인 안나 ■ 뷔야르와 발로통 ■ 1894-1895: 유럽이여, 안녕 ■ 퐁타방의 다비드 물방앗간 ■ 드니, 보나르, 마이욜 1895-1897 타히티와 마르케사스 제도 ■ 1895-1897: 타히티 ■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1898-1900: 파페에테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원시인을 찾아서 ■ 1901년: 마르케사스 제도 ■ 개울 ■ 1902-1903: 쾌락의 집 ■ 고갱의 유산 ■ 히바 오아의 주술사 ■ 영화 속 고갱 찾아보기 ■ 소장처 색인 ■ 인명 색인 |
Gabriele Crepal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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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 고갱
증권 중개소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예술가로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을 그린 직후에도 고갱에게 그림은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점차 예술에 깊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업화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여러 화가와의 만남은 고갱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에밀 베르나르,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의 우정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림에 대한 견해 때문에 종종 충돌이 있었지만 그는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고갱은 인공미 보다는 원시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프랑스에서 고갱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파리의 화려한 도시 여인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브르타뉴 여인의 모습이었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빨리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고갱은 타보가 섬, 타히티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원주민 여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고갱의 작품 속에는 아름다운 타히티 여인과의 사랑, 문명이 훼손하지 않은 자연 풍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자연주의와 달리 고갱은 사물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실제 사물의 형태를 닮으려 애쓰지 않고 개인적인 감상에서 비롯된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에 비롯된 그림 속 대담한 색채와 평면적 구성은 앙리 마티스, 에드바르트 뭉크, 파블로 피카소 등 후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Art Book’ 시리즈 『고갱』은 고갱의 삶과 예술을 300여 점의 화려한 원색 도판과 알기 쉬운 해설로 풀어냈다. 원시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표현한 화가, 고갱의 작품세계를 탐구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