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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김일영 저
실천문학사 200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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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의 시집(실천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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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벙어리별
안개 속의 풍경
얼굴 없는 기억
성탄절
바다로 간 개구리
깃털이 죽지 않고
소리의 방 1
소리의 방 2
소리의 방 3
사철나무 그늘 안에서
젖이 큰 할머니
황도
웃음소리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수평선
곰팡이
무덤 위로 별이 뜰 때

제2부
함께 우는 섬
숨비 소리 1
숨비 소리 2
숨비 소리 3
달과 어미 개
장화를 갖고 싶어
가을 숲 속에서
옹이는 썩지 않는다
먼저 와 있는 날
건전지
지팡이
모자(母子)와 가지
남아 있는 불빛들
십이월
화단은 내게
국립의료원 영안실
오후 공원
가지는 놓친 무게만큼 더 흔들리고
오후의 아스팔트
김치찌개를 기다리며
아우라지 물줄기처럼

제3부
명자꽃-트로트를 위해
난파하는 오디오
소리의 방 4
소리의 방 5
소리의 방 6
소리의 방 7
소리의 방 8
닫힌 방
조약돌
습
왜 알 것만 같은가
남겨진 양은 세숫대야의 습관
풀들의 오솔길
직박구리의 선물
우물 밖에는 지금
얌전히 뜬 달도 깨끗이 씻어 걸고

해설 이명원
시인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김일영
1970년 전남 완도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동화 『별에서 온 바위』(2007년)를 펴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5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212g | 126*207*20mm
ISBN13
9788939221819

출판사 리뷰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일영 시인이 첫 시집을 묶었다. 그의 등단작인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조용히 애송되어왔다. “햇빛들이 깨어져 모래알이 되고”와 같은 시구처럼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단숨에 풍경을 노래하는, 굽이치는 삶의 바다를 물방울 하나에 끌어안는 서정의 힘을 보여주는 그는, 시집을 내기 전에 등단작으로 이미 큰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다.

다시, 진화하는 서정

2000년대, 미래파 논쟁이 휩쓸고 간 시단은 삶의 말을 잃어버린 채 헐벗은 황무지처럼 보인다.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김수영, 「序詩」)는 뼈아픈 각성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언어적 패러다임에 갇혀버린 시에 의해 삶이 소외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의 자기 소외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김일영의 출현은 가뭄에 단비와 같다.

간절히 손을 내밀지만
저 주검을 끌어당겨줄 바람은
오지 않는다

타이어는 짓밟힌 새를 거듭 짓밟고 가지만
솜털 깊숙이 기억된 항로가
바람을 붙잡는다

아스팔트를 뽑아 일으키며 날아갈
바람의 씨앗,
깃털이 죽지 않고 손을 든다

-「깃털이 죽지 않고」 전문


정제된 언어의 응축 속에 신산한 당대의 풍경을 절제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이다. 타이어에 짓밟힌 새는 주검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보잘 것 없는 솜털 하나 속에서 자유롭게 비상하던 새의 항로를 더듬는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는 파시즘적 속도에 대한 저항과 항의를 내포한다. 여기서 깃털이 “아스팔트를 뽑아 일으키며” 날아간다는 역동적 상상력이 작동하는데, 그것은 죽음 속에서 죽음 너머를 꿈꾸는 ‘씨앗’의 역설을 낳는다. 이런 시를 재래적 서정시의 범주에 묶어서 버려야 할 유산으로 취급해온 게 2000년대 젊은시 담론의 고갱이이다. 하지만 이 시는 삶과 결별한 초월의 포즈를 취하고 있지도 않고, 타자에 대한 동일화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연에 대한 반성 없는 지향을 찾아볼 수도 없다. 오히려 이 시는 서정시에 대한 비판의 날을 모두 끌어안으면서도 ‘새로움’의 이름으로 방치해버린 당대의 삶을 아프게 투시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서정은, 다시, 더디지만 묵묵한 진화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귀의 시학, 성장시의 면모

평론가 이명원에 따르면 이 시집은 “‘귀’로 만져야 할 작품들로 가득하다”. 근대를 ‘눈’이 지배하는 시각중심주의 문화로 이해할 때, 김일영 시의 특이성이 잘 드러난다. 가히 소리의 현상학이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청각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상상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연작시 ‘소리의 방’이나 또 다른 연작시 ‘숨비 소리’를 보면,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실존적인 리듬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시인이 유년시절 듣고 자란 저 완도 바다의 파도 소리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등단작에서 이미 “그대가 파도 소리에 안겨 젖을 빨던/그 작은 섬으로”(「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라고 속삭인 바 있다.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섬 소년의 외로움이 보이기도 하고, 섬 밖으로 나선 소년의 서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 시집을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 1969」와 같은 성장시(Bildungspoem)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에 달군 쇠처럼 번쩍이는 바다 위에 녹아 흐르는 배들이
민들레 홀씨들을 싣고 사라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먼 섬 자락에 잘려진 길로 한 남자가 사라지고
남자를 따라간 길은 돌아오지 않았다
길 옆 무덤가에는 가을 한 조각이 몸을 말리며
체온을 잃기 전의 언덕을 추억한다

우리 집 문틀은 너무 낮고 약해 대들보가 있었으면 좋겠어

누이는 사이다 한 병을 바가지에 부어 소년을 씻긴다
그래도 소년의 마음에선 고름이 흘러나오고
불빛은 오색(五色) 유리가시가 되어 방 안에 어지럽다

누이는
밤이 와도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서 네가 오길 기다릴 거라고
언제나 너와 함께 가는 풍경들, 함께 기다리고 함께 넘어지고
너의 눈물도 함께 흘릴 거라고

그것들의 울음을 함께 울어준다면

-「함께 우는 섬」 전문

소년에게 섬 자락의 길은 ‘잘려진 길’이다. 수평선은 오갈 수 없는 세계의 경계이고, 말 없이 떠난 배와 사람들을 끝내 돌려보내주지 않는 닫힌 문이다. 건널 수 없는 경계 앞에서의 좌절감 혹은 상실감을 체험할 때, 누이가 소년에게 들려주는 것은 “함께 우는” 울음이다. 이마를 맞댄 울음을 통해 삶은 어쩌면 겨우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장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자아 탐색과 고백의 서사가 전경화된 이 같은 시편들을 통해 우리는 성장의 시학이 한국시사의 한 줄기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자신이 선 자리를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김수영,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현재적 삶을 가장 진하게 드러낸 백석의 시 정신을 닮고 싶다고 말했던 김일영 시인. 당신이 듣고 있음을 알고 조심스레 말을 거는 그의 첫 시집은 한 소년의 성장과정에서 터져나온 자전적 소리들을 채록하고 있다.


섬과 꽃을 닮은 시집― 안상수 선생의 디자인 이야기, 그 두 번째

가이아의 향기를 채집하는 실천시선의 두 번째 표지 디자인은 전남 완도군 생일도에서 탄생되었다. 하루에 배편이 하나뿐인 섬에 도착한 시인과 디자이너의 발치에 동백꽃이 한 송이 떨어졌다. 말을 걸듯 투욱-. 안상수 선생이 손에 담아갈 수도, 사진기에도 담아갈 수도 없는 그 동백의 빛을 보고 어찌할까 할 때, 시인이 말했다. “그냥 마음에 담아가세요.” 두 번째로 채집된 색은, 대지에 떨어진 동백의 색, 노을에 물든 섬을 연상케 하는 빛이다.

추천평

물에 결이 있듯이 김일영의 언어에도 결이 있다. 거센 바람 지나간 완도 앞바다의 몸부림 끝에 잠든 물결처럼, 맑아서 속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어머니의 숨비 소리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름답게 혹은 눈물겹게 물무늬를 이루고 있는 그의 시는 섬세하여 읽는 이들의 마음에도 어룽어룽 그림자를 드리울 터이다. 나는 처녀작이라 할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가 좋아서 그를 시인으로 아주 인정해버린 터이지만, 문단에 나온 몇 년 사이에 「무덤 위로 별이 뜰 때」나 「가을 숲 속에서」 같은 소란 떨지 않고 차분하게 이룬 진경에 흡족하여 이에 찬한다.
정희성(시인)
리뷰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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