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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원시림 속 의사 슈바이처의 치열한 휴머니즘 기록
배명자
21세기북스 200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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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나는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사가 되었는가: 오고우에 강과 지역 사람들

1장 여행: 1913년 7월 초, 랑바레네
콩고행 증기선에 오르다 / 비스케이 만을 지나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 랑바레네에 도착하다

2장 첫 인상과 체험: 1913년 7월 말, 랑바레네
의사 개업 준비 / 닭장 속의 진료실

3장 1913년 7월에서 1914년 1월까지: 1914년 2월, 랑바레네
물과 원시림 사이 / 체체파리는 흰옷을 피한다 / 정신병자는 유럽에 비해 훨씬 적다 / 어떤 물건이 주물이 되는가 / 변비 환자와 골초 / 첫 수술, 감금탈장 / 말라리아 환자에게 치명적인 햇빛 / 흑인을 집에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 “나는 그때 죽었습니다” / 군소리

4장 1914년 1월에서 6월까지: 1914년 6월 30일, 랑바레네
탈라구가 여행 / 흑인의 법 관념 / 요제프 이야기 / 수면병 / 농양 치료 / 나병과 이질 / 너희는 다 형제니라

5장 원시림의 벌목꾼과 뗏목꾼: 1914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로페스 곶
강가에 선 나무들의 운명 / 원시림만큼 굵어죽기 딱 좋은 곳도 없다 / 뗏목꾼 이야기 / 천만다행으로 바다에 도착하다 / 목재광

6장 원시림의 사회문제: 1914년 7월 30일부터 8월 9일까지, 배에서
흑인은 게으른 게 아니라 자유인인 것이다 / 노동강제 정책 / “장가를 가려면 마다가스카르의 귀족 여성을 수입해......” / 모든 여성이 결혼할 수 있으려면 일부다처제라야 / 백인과 흑인의 관계

7장 1914년 크리스마스: 1914년 12월, 랑바레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다 / 코끼리와 전봇대

8장 1915년 크리스마스: 1915년 12월, 랑바레네
개미 전쟁 / 요제프가 병원을 그만두다 / 원시림과 치통 / 죽은 자에 대한 배상

9장 선교 활동: 1916년 7월, 랑바레네
원주민에게 기독교란 무엇인가 / 흑인 기독교도 / 높아진 자존감 / 선교 본부는 어떤 일을 하는가 / 선교 학교의 일상 /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의 차이 /

에필로그 가망 없는 비참: 1920년 8월, 스트라스부르

저자 소개 1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8년간 편집자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독일에 거주하며 2008년부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아비투스》, 《이토록 위대한 몸》,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과학이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불확실성의 시대》, 《초판본 독일인의 사랑》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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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1875-1965)
스트라스부르 대학 신학과의 젊은 교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05년 30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벌써 세 권의 저술을 가진 작가였으며, 음악(『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905), 종교(『예수 생애 연구사』 1906), 철학 방면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거둔 학자였다. 또한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자로 명망이 높았고, 교회 부목사(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 1910)로, 신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1913년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당시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현재는 가봉 공화국인 된 그곳 랑바레네에 병원을 열기에 이른다. 1920년에 그는 이곳에서 활동한 사연을 모아 이 유명한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집필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거의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들과 오고우에 강 유역에 병원을 지은 이야기, 그리고 원주민을 더욱 존중하게 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슈바이처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 국적을 가진 두 사람은 의료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급기야 아프리카를 떠나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구금당한다. 1924년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설과 모금 활동을 위해 유럽을 다녀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1928년에 괴테상을, 195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65년 90세에 병원 일을 돌보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랑바레네의 병원 주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63쪽 | 423g | 148*210*20mm
ISBN13
9788950918989

책 속으로

“혹시 누가 안에 있는지 보기 위해 오두막으로 갔다. 밖에서 먼저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을 일일이 다 열어보았다. 맨 끝 오두막에서 바닥에 누운 한 사내를 발견했는데, 그의 머리는 거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고 개미들이 그 위로 기어다녔다. 수면병 환자였다. 사람들이 더는 운반해 갈 수 없어서 아마도 며칠 전에 이곳에 버려두고 갔을 것이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이 가련한 사내를 분주하게 살피는데, 문득 오두막 문으로 푸른 숲에 둘러싸인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그 위로 빛을 뿌리는 저녁노을이 보였다. 낙원의 풍경과 가망 없는 비참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내 마음에 충격을 주었다.” --- p.254

“식민지를 점령함으로써 그 지역의 재량권뿐만 아니라 그곳 주민에 대한 막대한 인도적 책임도 같이 인수했음을 식민지 개척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p.258

“세계의 인도주의 과제는 특정 국가나 종파의 분자로서가 아닌, 동류인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나의 확신이었고 또 지금도 마찬가지다.” --- p.16

“병에는 자연과학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내 환자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악한 기운, 인간이 부리는 마법, 그리고 ‘벌레’를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이들에게 통증의 구체적 원인은 벌레였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면 이들은 벌레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벌레가 다리에 있었는데 머리로 가더니 다시 심장을 거쳐 폐를 지나 끝으로 배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벌레를 잡는 약이었다. 아편팅크를 써서 복통을 잠재우면, 환자는 다음날 환한 표정으로 내게 와서, 벌레가 배에서 나갔다고 말한다.” --- p.63

“체체파리는 아무리 두꺼운 천도 뚫고 피를 빤다. 매우 신중하고 영리하여 내리치는 손바닥을 노련하게 잘도 피한다. 사람 몸에 앉았다가도 조금이라도 몸이 움직인다 싶으면 바로 날아올라 카누의 양옆으로 숨어버린다.
날 때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파리 쫓는 작은 채로 자주 몸을 털면 겨우 조금 막을 수 있을 정도이다. 워낙 주의 깊기 때문에 자기가 눈에 잘 띄는 밝은 바탕에 잘 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체파리를 피하기에는 흰옷을 입는 것이 가장 좋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이 법칙을 통렬하게 확인했다. 우리 백인 중 둘은 흰옷을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란 옷을 입었다. 흰옷을 입은 둘에게는 체체파리가 거의 접근하지 않은 반면, 노란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노상 성가시게 굴었다. 흑인들이 제일 곤욕을 치렀다.” --- p.74

“주물(呪物)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따로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두개골 조각이 특별한 주물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주물을 얻으려면 누군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 --- p.85

“내가 본 니코틴 중독자 중엔 여자가 많았다. 요제프의 설명에 따르면, 원주민은 대개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이 안 올 때면 감각을 무디게 하기 위해 밤새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갈 때도 보면, 뱃사공들이 서로 담배 파이피를 돌려가며 피운다. 편안한 여행을 원한다면 뱃사공 일인당 담뱃잎 두 장씩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그러면 틀림없이 한두 시간 정도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 p.89

“영업소 직원이 식사 후 잠깐 쉬는 사이, 지붕에 난 동전만한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에 노출되었는데, 그는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배가 급회전하는 하는 바람에 열대 모자를 잃어버렸다. 잠깐 갑판에 쪼그려 앉았다가 맨머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문득 생각이 난 그는 얼른 옷을 벗어 머리에 뒤집어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심각한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어느 조그마한 상선의 기관사는 용골 부분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하기 위해 배를 뭍에 댔다. 수리를 하면서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었던 터라 햇빛이 열대 모자 아래 목덜미에 와 닿았다. 그 역시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인보다 햇빛의 영향을 덜 받는다. 크리스톨 부인의 어린 딸은 혼자 집 밖에 나와 십 분 넘도록 뛰놀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 p.95

“이런 가련한 환자가 실려 왔을 때의 내 감정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나는 사방 수백 킬로미터 안에서 그를 도울 수 유일한 사람이다. 내버려두면 괴로워하다가 죽을 이 환자는 내가 이곳에 있고, 또 친구들이 필수품을 보내주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병으로 나중에 나를 찾아올 환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생명을 구해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고통의 나날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언제나 새로이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다. 고통은 죽음보다 훨씬 무서운, 인류의 지배자이다.” --- p.140

“통나무를 실어갈 배가 어서 도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배가 도착하는 것이 보이면 정박하기도 전에 통나무들을 배 쪽으로 끌어내기 시작한다. 선적을 기다리던 통나무들의 끝에는 고리가 달린 철 쐐기가 박혔고, 고리들은 굵은 철사로 서로 묶여 있다. 배에 실릴 통나무들을 뗏목에서 낱개로 분리하기 위해, 원주민 몇이 뒤뚱거리는 뗏목 위를 춤추듯 오가며 쐐기를 뺀다. 그런 다음 배에 실릴 순서대로 통나무들을 한 줄로 모은다. 이 일은 대단한 기술이 요한다. 통나무들은 물에 젖어 미끄러운 데다 물에 뜬 채 자꾸 구르기 때문에 그 위를 돌아다니는 원주민은 자칫하면 발이 미끄러져 통나무 사이에 발이 낄 수 있다. 통나무는 2톤에서 3톤까지 무게가 나가는 데다 서로 부딪치며 앞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낀 발은 영락없이 으스러지고 만다.” --- p.163

“아프리카 항구를 통해 매년 수입되는 브랜디의 양을 확인한 후에야, 그리고 어른 옆에서 아이들까지 술을 마시는 광경을 본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브랜디가 초래한 심각한 위험의 심각성을 가늠한다. 오고우에 강 유역에서는 관리, 상인, 선교사 그리고 원주민 추장까지, 모두 브랜디를 금지해야 한가는 데에 공감한다. 그런데 왜 금지시키지 않을까? 브랜디로 벌어들이는 세금 수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매년 브랜디를 들여올 때마다 세관에 내는 세금은 식민지의 최대 수입원이다. 브랜디를 금지하면, 예산은 곧 적자다.” --- p.188

원시림만큼 굶어죽기 딱 좋은 곳도 없다
“이곳 원시림에서 사냥은 불가능하다. 물론 원시림에는 야생동물이 아주 많다. 하지만 나무가 워낙 빽빽하게 들어차서 야생동물을 발견하기도 어렵거니와 발견한들 뒤를 쫓을 수도 없다. 숲이 우거지지 않은 늪지대, 혹은 원시림 속에서 이따금 만나는 초원에서나 사냥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 이런 곳에는 목재로 쓸 만한 나무가 없다. 적도아프리카의 원시림에는 들짐승도 많고 식물도 무성한데, 이곳만큼 굶어죽기 딱 좋은 곳도 없다. 참 아이러니하다.”

--- p.151

출판사 리뷰

1. 슈바이처는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사가 되었는가-이 책의 집필 동기

슈바이처가 알자스 지방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현재 가봉공화국)로 향한 것은 1913년 7월이었다. 의사학위를 받은 것이 그해 봄이었다. 1905년 서른 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7년간을 매진한 결과였다. 1904년 우연히 프랑스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콩고 강 유역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참상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신학교 교수였고, 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의 부목사였고, 신학교의 책임자였으며,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의 권위자였다.
슈바이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사가 없는 곳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원시림 속 흑인을 돕는 일이 인도주의적 과제로 여겨졌다. 원시림 속 흑인이 성경 속의 거지 라자로라면, 이를 방관하고 도외시하는 유럽인은 배부른 부자로 보였다. 육체의 고통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실존이라는 깨달음이었다.

2. 치열한 휴머니즘과 그 기록-이 책의 특징

1913년 독일의 고향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를 거쳐 보르도로, 다시 기차를 타고 포이약 항구에 도착하여 콩고행 증기선을 타는 여정이 책의 서두에 등장한다. 파리 복음 선교회가 랑바레네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병원 건물을 짓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경비와 의료 활동에 필요한 물자는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의 성금 모금이 있었지만, 자신의 저서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세와 오르간 연주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당시 슈바이처는 유명 파이프오르가니스트, 특히 바흐의 오르간 곡에 능통했다.
배 이름은 ‘유럽’이었다. 혼잡한 소음과 짐꾼들의 외침 속을 지나 배에 올라타면서, 슈바이처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여기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시기에 행하는 것을 기록한다면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어느 한 부분도 그냥 대충 읽어 넘기지 못하리라!”
‘과연 어떤 책이 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집필 기간
1913년 7월에 랑바레네에 도착하여 1917년 9월에 그곳을 떠나기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했다. 6개월마다 유럽의 친구와 기부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보고서와 자발적으로 적어둔 수기에 의거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은 물론 의료 활동이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저자는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다.

의학적 탐구
먼저 의학적 방면에서 그는 원주민에게 맞는 약과 치료를 개발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쓴다. 당시 랑바레네 지방은 수면병이 크게 창궐하던 지역이라, 수면병에 대한 치료는 의료 활동의 관건이었다. 또한 피부병, 말라리아, 나병, 코끼리피부병, 열대성 이질 등 각종 질환이 유행했다. 열대 지방의 풍토적 특수성과 부족한 의료 물자를 감안할 때 치료약을 찾으려는 슈바이처의 열정은 인간에 대한 커다란 긍정 그 자체이다.

__체체파리는 흰옷을 피한다!
__아무 데서나 조는 사람은 수면병 초기증상일 수 있다!
__배를 젓다가 하마가 보이면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__변비 환자는 우선 니코틴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__일사병은 잠복한 말라리아가 재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말라리아와 똑같이 처방해야 한다.

인류학적 통찰
인류학적 통찰 또한 빛을 발한다. 유럽의 소송광(狂)은 아프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한낱 순진한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소송이 걸리면 만사를 제치고 여기에 몰두한다. 닭 한 마리를 두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오후 내내 논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가 보기에, 이들이 소송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소송 중독이 걸려서가 아니라 정의감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보기에 마취 상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사선생님은 일단 환자를 죽이신 다음, 병을 고치셔.” 놀랍게도 원시림 속에는 아직도 식인 부족이 상존한다. 이곳에서 ‘실종’이란 말은 곧 ‘잡아먹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칭 ‘랑바레네 병원의 수석 간호조무사’ 흑인 요제프 이야기. 병원에서 번 돈의 반을 양복과 구두, 넥타이와 설탕을 사는 데 써버린다. 그리고 백인 의사보다 훨씬 신사답게 차려 입고 다닌다.

선교활동과 연계
슈바이처의 의료 활동은 구미 여러 선교회의 선교 활동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기독교 선교 본부는 아프리카 원시림 속에서 그야말로 막대한 임무를 떠맡은 형편이다. 교회일 뿐만 아니라 학교이자 시장이며 농업 기지이다. 이런 선교 본부의 일원인 서양의사는 원주민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고통의 나날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언제나 새로이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다.” 백인과 흑인이 마주 앉은 병상에서 슈바이처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장)”라는 말의 참뜻을 깨닫는다.

3. 슈바이처의 휴머니즘은 어디서 유래하는가-이 책의 출간 의미

‘슈바이처는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카이저스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기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알자스 지방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여서 예부터 두 나라의 경제적, 군사적 쟁탈장이었다. 프랑스 쪽에서는 알자스, 독일 쪽에서는 귄스바흐라고 불렀다. 양쪽 문화가 혼재한 곳이었다. 즉 다른 타자에 대한 인정, 상대편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 관용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근간이 되는 곳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패배하면서 이곳은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종교와 정신적 측면에서도 이곳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독일과 프랑스의 정서가 공존했다. 당시 두 종파는 한 교회 안에서 다른 시간에 다른 자리에 모여 예배를 보았다. 이렇게 예외적일 정도로 종교적 관용이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자라났다. 문화적/인식적 상대성이 지성의 계기가 되고, 보편적 신념 체계에 대한 열의가 자연스레 발생하는 곳이었다.

이런 사정이 생래적인 환경이었다면, 아프리카 활동 이후 슈바이처 삶의 궤적은 이것을 뛰어넘은 신념의 산물이다. 1917년 9월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나 브레슬라우는 국적이 독일인 까닭에 프랑스령 랑바레네에서 추방당한다. 급기야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감금당한다. 이 전쟁 중에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군의 군마에 치여 죽는다. 이후 풀려난 슈바이처는 랑바레네 병원으로 돌아가 계속 활동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한 열린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계기를 통해 단련되는가를 이 책은
구체적인 단서를 통해 증명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슈바이처가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투시할 줄 아는 인간임이 드러난다.’

의료 활동이 급선무였던 까닭에 한 의사의 휴머니즘 열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다. 그러나 책의 곳곳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만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슈바이처에게 형이상학적 열정은 선험적으로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 대륙의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떠돌던 신대륙 원주민에 대한 동경,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시성과 자연 친화에 대한 신비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샤토브리앙과 루소에 시작하여 바이런, 스트린드베리 등 많은 지식인들이 상찬하고 수식했던 ‘고귀한 원주민’(noble savage), 즉 오리엔탈리즘의 기원이 된 그런 개념적 지식이 보이지 않는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찍이 결심했다.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고, 이후부터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렇게 학문적 탐구와 실천 사이의 극명한 대립을 스스로 자각한 상태에서 아프리카로 출발한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프레이저의 1890년 작품 ??황금가지??처럼 책상물림 인류학자가 쓴 그런 학술적 저작이 아니다. 슈바이처는 파우스트처럼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이 책은 환자의 고름과 종기, 작은 상처, 우는 눈,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 등 인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을 살 때의 마음과 감정 상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비좁은 카누 안에서 균형을 잡는 법, 강을 건널 때는 급물살을 피해 강둑에 최대한 붙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들짐승과 식물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굶어죽기 십상인 곳으로 변하는 원시림, 햇빛의 날카로운 각도를 피해 어느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하며, 원시림 속 생활의 무서운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선 자주 어려운 철학책을 놓고 궁리를 함으로써 상쇄해야 한다는 등 생태와 생존을 논파하는 대목 등은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적 진술이다. 감상적 진술은 비정한 자연, 생사의 현장에 대한 절박한 입장 뒤에서 자제된다. 차라리 극명한 묘사와 사실적 관찰이 대부분이다. 윤곽이 뚜렷한 텍스트, 한 자연과학자의 탐사 수첩에 가깝다.

종교적 선각자, 휴머니즘의 투사라는 슈바이처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그것이 추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슈바이처는 부득이하게 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그의 표현대로 ‘공생 관계’로 의료 활동을 펼치지만, 그는 늘 꿈꿨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자유인으로서 헌신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세계의 인도주의 과제는 특정 국가? 종파의 분자로서가 아닌, 동류인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동류라는 것. 살아 있는 모든 육체, 병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 몸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 아프리카 흑인의 몸은 유럽인의 몸과 다르지 않다는 것. 사회문제와 전통과 윤리는 각각 처한 곳에 따라 달라지지만 육체의 고통은 한가지라는 것.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지배자라는 것. 이렇게 신념의 내용은 극히 인간적인 것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시기는 슈바이처의 생애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를 접하던 시절이다. 모험과 현장의 급박함 속에서, 물질적인 극빈 속에서 오히려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믿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아직 확신으로 무르익지 않던 때라서 의심과 인간적인 약점을 감출 수 없던 나날이었다. 한 휴머니즘 투사가 태어나기 시작하는 태동기, 구체적 각성이 일어나는 수많은 계기와 작은 과정을 가장 정직하게 기록했다.

추천평

우리같이 초라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 단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우리 시대의 도덕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분
존 F. 케네디
슈바이처 박사의 말은 특정 시대에 구애 받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지미 카터 (알베르트 슈바이처 휴머니태리언 어워드 1회 수상자, 노벨 평화상 2002년 수상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슈바이처가 의료 활동을 통해 아프리카의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국가들의 상호연대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 또 그 기획이 믿을 만하다면 어떻게 적용할지 시험하기 위해 슈바이처는 랑바레네로 갔다. 무엇보다 그는 의료 활동을 통해 인간뿐 아니라 창조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생명 경외 윤리’에 확신과 설득력을 얻었다.
호르스트-에버하르트 리히터 (정신분석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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