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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탈식민적 주체성
이식문학론을 넘어 양장
배개화
창비 200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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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양학술총서

책소개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한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제1장 들어가기 전에
1. 연구의 목적과 대상
2. 연구사 검토
3. 연구의 방향

제2장 이론적 전제들
1. 전통의 현재성
2. 외부 전통의 내부화 방식:복사 대 번역
3. 근대 조선어 형성과 근대 민족의 창출
4. 환유적 운동으로서 조선문학

제3장 조선담론에 나타난 재현적 이중구속과 그 극복
1. 조선학운동과 저항담론으로서 전통론
2. 전통 혹은 조선적인 것의 특수성을 둘러싼 논쟁
1) 전통=조선=과거에 나타난 이중구속적 사유
2) 조선 문화 형성에 있어 주체성 문제
3) 조선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
3. 전통과 고전 개념 전유의 두 양상
1) 새로운 세계사의 인식과 전통논의의 저널리즘화
2) 반(反)전통론으로서 전통론:서인식의 예
3) 고전/보편에 이르는 길로서 전통/특수:임화


제4장 조선문학의 역사철학적 근대성에 관한 고찰
1. 조선어의 근대화와 조선문학의 정의
2. 민족문학의 형식으로서 민족어에 관한 재인식
1) 프로문학에서 민족어의 위상
2) 두 개의 민족문학과 민족어
3) 리얼리즘 문학을 통한 민족어 완성
4) 조선문학의 위기와 민족어의 옹호
5) 1930년대의 소론과 해방공간에서 민족문학론의 연관성
3. 한국 근대문학의 양가성:전통과 이식
1) 신문학사의 기원에 관한 탐구열의 원인
2) 신문학의 의의―질적으로 새로운 조선어의 성립
3) 신문학의 문예 계보학 설정
4) 이식과 전통

제5장 조선어의 재해석과 심미적 근대성의 구축
1. 조선어 문장의 규범화와 그 이론적 배경
1) 새로운 문장 의식의 이론적 배경
2) 언문일치가 제기하는 문제들
3) 감각성 또는 어감의 강조
4) 문학적 국어, 국어적 문학
2. 조선어의 심미적 가치의 규범화
1) 문장미의 추구
2) 감식안과 유일어의 발견
3) 미적 체험론의 의미
3. 전통의 재해석:내간체 수용을 중심으로
1) 내간체의 소개:이병기
2) 내간체의 심미화:정지용
3) 내간체의 규범화:이태준
4. 조선어학회와 「문장」의 상관성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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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배개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ㅏ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2년간 하바드-옌칭 연구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박사논문 주제를 연구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교양학부에 재직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2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5쪽 | 600g | 153*224*30mm
ISBN13
9788936413149

책 속으로

한국어로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필자는 2001년 9월부터 2003년 1월까지 하바드 엔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의 초대로 하바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한국문학 중에서도 현대문학 전공자였던 필자는 몇 년 동안 취미 삼아서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녔던 덕분에 우연찮은 기회를 얻어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영어 책을 많이 볼 일도 없었고 지금은 흔한 어학연수도 받아본 적이 없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필자가 박사논문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은 1930년대말 출판된 「문장」 잡지의 전통논의였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겠다는 계획을 잡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당면한 ‘영어 전용’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새로운 교육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런저런 과목들을 청강하느라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애초 미국 방문의 이유였던 박사논문 연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이 박사논문 준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도움은 책상 앞이나 강의실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에서 보낸 일상 자체가 박사논문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은 영어가 공용어이고 대학에서도 모두 영어로 교육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즉 상대적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지만 그곳에서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는 매우 지적일 수 있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어로 논문을 써봤자 읽어줄 독자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짧은 영어로 힘들게 논문을 써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어의 가치하락을 온몸으로 경험했다고나 할까.
또 하나의 계기는 내 연구 대상 자체에서 왔다. 1930년대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던 시기로 근대 국가로서의 ‘조선’이나 ‘대한민국’ 등이 성립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내 전공을 설명할 때면 나의 말은 항상 “한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라고 시작되었다. 이 점은 내가 국내에 있을 때는 그다지 의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근대 한국문학의 환경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1910~1945)를 필자가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환경이 문학의 생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짧은 기간 동안이긴 하지만 한국어가 공용어가 아닌 환경 속에서 ‘한국문학’에 대해서 외국어로 이야기하고 쓰다 보니, 나 스스로가 마치 식민지 지식인이 된 것 같은 투사가 일어났다.
덕분에 이중언어 환경, 즉 일본어가 공용어인 상황에서 ‘조선어’로 말하고 ‘조선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과 ‘일본어’의 중압을 조선인 문학자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이런 의문은 ‘식민지 상황이 근대 조선어와 조선문학 형성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모더니스트나 리얼리스트 또는 민족주의자든 맑시스트든 근대 조선어와 조선문학에 대한 자기 나름의 모델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모델을 실현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연구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문학 연구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연구의 방향은 ‘영연방 문학’으로 말해지는 ‘영어’ 위주의 문학 연구의 일반적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영미권의 탈식민주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영어 또는 영어와 식민지어의 잡종어(크레올)로 쓰인 문학에 대한 연구들이다. 하지만 조선문학의 경우는 ‘조선어’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 예외적인 경우만 ‘일본어’로 창작되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을 없애고 일본어로만 교육하기로 결정한 제3차 조선교육령이 발표된 1938년 4월 1일 이후에 창작된 조선인의 일본어 작품들은 ‘영연방 문학’을 중심으로 한 탈식민주의 연구 방법을 그대로 이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다수의 한국문학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반면에 나의 연구는 ‘조선어’와 ‘조선문학’ 자체가 지닌 ‘탈식민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출판하게 된 것이다. 박사학위를 2004년 2월에 받았으니, 논문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다시 쓰기도 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부족한 대로 이 책이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어로 문학을 하는 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선배 문학인들의 고민과 열정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석사 때부터 지금까지 어버이 같은 사랑으로 지도해주신 박동규 선생님,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큰 관심을 베풀어주신 권영민 선생님, 연구에 큰 지지와 도움을 주신 최원식 선생님, 박사논문 심사와 그 밖에 많은 도움을 주신 조남현 선생님과 장사선 선생님, 늘 애정과 지지를 보내준 방민호 선생님을 비롯한 연구실 선후배들, 그리고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말없이 곁을 지켜준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더불어 이 책이 출판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서남재단에도 감사드린다.

2009년 6월
배개화

--- 「저자의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임화, “민족문학이냐? 계급문학이냐?” ― 이분법의 극복

카프 서기장을 역임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전개하는 등 사회주의자로 알려진 임화는 1934년부터 민족문학을 이야기하고 민족어를 옹호했다. 이것은 임화가 사회주의적 신념을 버렸다든지 민족주의자가 됐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임화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역사철학적 배경으로서 (민족주의문학이 아닌) ‘민족문학’ 개념에 몰두했다. 임화는 자본주의시대라는 역사적 조건하에서는 부르주아 민족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민족문학이라는 두 유형의 민족문학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6년에 일본은 조선어 사용과 조선어 교육 금지를 골자로 한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의 ‘공학제’ 실시를 공포한다. 이에 임화는 ?조선어와 위기하의 조선문학?을 '조선중앙일보'(1936.3.8~3.24)에 아홉 차례에 걸쳐 발표한다. 임화는 일본의 조선어 말살정책이 마침내 조선문학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조선어 옹호를 외쳤다.
임화가 민족문학론을 전개한 데는 일본제국주의가 파시즘화하던 정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임화는 식민지 상황의 특수성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 완성의 특수성―반제국주의, 탈식민―을 간취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의한 부르주아혁명 완수라는 조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인식했다. 그리하여 레닌을 수용한 ‘프롤레타리아적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이것은 당대에 팽배했던 ‘민족문학이냐? 계급문학이냐?’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태준, 언어민족주의 또는 전통 담론의 현재성

“책보다 冊 자가 더 冊 같다”는 이태준의 유명한 말은 사물인 책과 그것을 지시하는 문자인 책(冊) 사이의 시각적 유사성을 강조한다. 이태준은 정지용 등과 함께 ‘구인회’의 멤버였을 뿐만 아니라 잡지 '문장'파의 한사람이었다. 이태준과 이병기는 조선어학회의 주요 멤버로 활약했으며 ‘모더니스트’ ‘이미지스트’라고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문장미를 추구하는 언어적 심미의식에 있다.
‘내선일체’ 정책의 실시와 함께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자 이태준을 비롯한 '문장'파는 국민문학론을 제창하며, 조선어학회의 국문운동 축적의 결과물들(표준어, 맞춤법 사정)을 창작에 적용하여 실천했다. 이것은 조선어말살 정책에 대항해 문학어로서 조선어의 가치를 옹호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려는 시도였다. 이태준이 집필한 '문장강화'도 ‘문학적 국어’를 만들기 위해 ‘국어적 문학’을 구축하려는 방법적?기술적 시도였다. 이태준은 “조선문학이 없는 조선말은 있을 수 있지만, 조선말 없는 조선문학은 없다”고 하여 조선어의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우리 한국 현대문학의 전사인 ‘조선근대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를 짚고 넘어간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어가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조선어학회나 조선어학연구회 등의 소장 언어학자들이 조선어를 정비하고, '문장'이 전통 담론을 통해 한글로 문학하려 한 것은 문학의 사활이 민족의 사활과 관련돼 있음을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문장'의 심미주의는 ‘주체적 미의식’을 지향한 문화 민족주의의 발현일 뿐 아니라 언어를 한 공동체의 소유물로 본 것이다. '문장'은 우리말을 민족의 기억을 담은 문화재로 인식하여 당시의 문화 민족주의를 고취할 토대를 만들었다.

한국문학의 탈식민적 주체성

‘일제강점기’ 조선 문학인들에게 있었던 ‘조선어의 위기’ 의식은 결론적으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향한 주체성으로 발현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문학자들의 고민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앞선 선배 문학인들의 고민을 통해 앞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주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되짚어볼 소중한 계기를 제공한다.

서남동양학술총서 50호 출간, 동아시아 학술사업 부흥을 위한 단단한 발걸음

동아시아를 학문적 사유 단위로 삼아 총서를 기획한 지 14년, ‘서남동양학술총서’가 2009년 6월 드디어 50호를 돌파했다. 학술총서의 기획 자체를 무모하게 바라보던 90년대 중반을 지나, 이제 한국사회에서 ‘동아시아’는 학계를 넘어 일반인의 인식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그속에서 서남동양학술총서는 우리 사회에 동아시아 담론을 제기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서남동양학술총서’는 서남재단이 재정 지원을 하고, 학계의 저명 학자가 선정 및 심사하며, 창비가 출판을 담당하여 발행된다. 매년 3~4월 공모를 진행하며, 연구과제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 학계의 최고 학자 4인의 만장일치 합의를 통과해야 한다. 선정된 연구자는 약 3년여간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결과낹은 관련 학계의 중견학자 2인으로부터 총서로 출간하기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심사 받아 수정·보완 과정을 거친 후 출간된다. 서남동양학술총서는 출간 자체가 관련 학계의 중요한 사료라 할 정도로 심도 깊다. 이 모든 과정이 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지만, 출간된 총서 어디에서도 재단의 소개를 찾아볼 수 없는 그 ‘단호한 무심함’은 학계에서 총서의 권위와 생명, 학술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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