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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九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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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를 지도 감독하는 조교 가운데 한 사람이 내 고향 섬 사람이었다. 한 5킬로 정도의 길을 달려 어느 고개를 넘을 때, 그 조교는 내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대오 밖으로 불러냈다. 잠시 기합을 주는 척하더니, 오솔길로 나를 이끌고 갔다.
"이 오솔길을 곧장 따라가면 부대로 돌아가는 또 다른 고갯길이 있다. 그 길목이 구보의 마지막 코스이니, 두세 시간 후 본대가 그 곳을 지나갈 때 재주껏 합류하도록 해라." 나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그 고갯길을 찾아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군장을 풀었다. 때는 초여름으로 나무에는 푸른 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낙엽 속에 몸을 묻고 누우니 얼굴은 열기로 후끈거렸지만, 그러나 편안했다. 바람이 살랑거려 나뭇잎들을 끝없이 반짝거리게 할 뿐 만상이 조용했다. 잠시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사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도 그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땅 밑에서 스며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 가슴속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시계의 초침이 울리는 것처럼 거의 규칙적인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마침내 숲 전체를 고르게 덮었다.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머리 위 오리나무 가지의 나뭇잎들이 그 사각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푸른 벌레들이 오리나무 잎을 갉는 소리였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나뭇잎들은 금방 잎맥만 남기고 차례차례 사라졌다. 그리고 이따금씩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벌레들을 쪼아가곤 했다. 그러나 그 숲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나뭇잎을 빼앗기는 나무도, 나뭇잎을 갉아먹는 벌레들도, 그 벌레를 잡아가는 새도, 모두가 평화로웠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비단 그물처럼 숲을 덮고 나는 그 그물에 저항없이 갇혀 있었다. 내 몸이 아주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앙상하게 남은 잎맥이기도 했고, 새의 입에 물려 하늘로 날아가는 벌레이기도 했다. --- pp. 146∼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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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한 장으로도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 세상에서 여태 꿈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지럭대는 벌레에도 불성이 있다 하신 말씀은 아직 빈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받고고 벌레만 못한 대접을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봄에서 가을까지 사는 박 넝쿨도 박 무게를 버틸 꼭지에 박꽃을 피우고 박을 답니다. 제 꽃 제 열매를 못이기는 꽃대나 줄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한 가족, 한 몸뚱이를 건사할 여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인간 세계의 잔혹함을 보고 있습니다. 호박 한 포기만 못한 그 세상을 믿느니 차라리 다정한 무덤들을 믿겠습니다.
세상에는 필시 육신의 죽음과 다른 또 다른 죽음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죽음의 냄새를 맡습니다. 달콤하여 취하기 좋으나 돌이키기는 어려운 그 길로 세상은 떠나가고 있습니다. 복날 다리밑에 매달리는 짐승이 제 무게 때문에 죽음에 이르듯, 사람도 욕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 죽음에 닿지 싶습니다. 욕심 다 버리고 깃털 같은 무게조차 버리고 나서야 우리 안의 불성이 제 면목을 드러내게 된다는데, 사람 사는 소식은 언제나 마음 무겁고, 드문드문 아는 이들이 이승 떠나신 소식을 듣습니다. 밝은 방 안에서 문득 마음이 어두어 옵니다. 그렇구나. 내 입고 있는 세월의 옷도 이제 낡아가고 있구나. 그 옷이야 그리 아까울 것도 없으나,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찌 세상 떠나는가? 깃털도 땅에 내려와 제 무거움을 쉬던 것 보았습니다. 깃털보다 가벼워도 오히려 무거울 것을, 잔인하고 또 어리석기도 한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 pp. 4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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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불립문자(不立文字)래요, 절망인가요? ...나는 삶의 숨은 그림을 찾아 독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음에 분명합니다. 삶에서 공통분모 비슷한 것을 찾아내고 이것을 개념화할 수 있다고 믿었음에 분명합니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내가 창안한 개념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고백합니다. 나는, 지극한 진리란 말로써 전할 수 없다(不立文字)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나는 이 착각의 늪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렸습니다...
이현주. 바우의 목줄을 묶다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개한테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만일 내 뜻을 빨리 알아 무명無明의 그늘을 벗어버린다면 무슨 계율이 필요하며 무슨 가르침이 더 있겠느냐?" 순간,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지요. 바우와 제가 과연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똑같다는 사실 앞에서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이 태산 같은 업장業障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나의 인생을 보살피는 자비의 손길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입니다... 곽병찬. 영지 앞에서 ...그런 나에게 절하는 이의 모습은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평소 무심했습니다. 기껏해야 집안의 무병장수, 자식들의 입신출세 따위나 빌고 있겠거니 라는 선입관이 앞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편견은 첫날 대적광전에서 저 혼자 절하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그 분은 그저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고, 정성스레 떠받들기를 거듭했습니다. 그의 윗도리에선 어느새 땀이 흥건히 배어 나왔습니다. 그는 절 한번 하고 부처님 또는 보살님을 미련하리 만치 그윽하게 우러렀습니다. 저는 그의 눈이 보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할까... 이철수. 외발이 새가 바라보는 먼 하늘 여러 해 전에 호도나무인 줄 잘못 알고 심었던 가래나무 그늘 덕을 여름내 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가래나무 잘못 심기듯이 제 삶도 그랬을까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래나무가 호도나무 대신 창 밖에 무성한 그늘을 드리워 제구실하듯, 모자라는 대로 가꾸어 살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하면 한세상 살아지지 하고 지냈습니다. 이제는 살다가 세상에 작은 쓸모나마 생기면 고마운 일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구병. 빗속에서 얻은 깨달음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그 모든 '올바른' 일들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 했을 뿐이지,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없이 하는 일은 곁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아무리 위대해 보이더라도 결국 쭉정이만 남는 듯합니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그 많은 세월이 빈 쭉정이로 폭풍 속에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폭풍 속에서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끊임없이 사랑해라..." 윤구병. 부처됨의 어려움 ...석가는 깨우친 순간 중생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따라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친 것은 참으로 깨우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깨우침이었다면 이제까지는 혼자서도 살 수 있을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죽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너 없이는 못 살아"라는 느낌입니다. 출가하기 전의 석가는 중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중생으로부터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김영동. 내 안에 숨어 있는 것 ...마음이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썩어가고, 여러 가지 질병에 인간 스스로가 죽어 간다 해도, 마음은 늘 살아 있는 듯합니다... 마음이 생긴 그대로의 본성으로 움직일 때 고통은 고통대로,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우리의 삶에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생긴 그대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즐겁게 밖으로 표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우익. 이 땅의 농민으로 살면서 ...땅을 갈기 위하여 우리는 소를 부리지요. 그 동안 이웃의 소 부리는 것을 배울 겸 해서 살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소에 겁을 주면서 혹사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일꾼들은 소와 호흡을 잘 맞추어 마치 율동을 하듯 소를 부리는데 단단한 흙이 물결을 가르듯 넘어가는 그 모습이 사람도 소도 여유로와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이어서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신이 났습니다. 현진스님,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숙한 민중은 상일꾼들이 소를 잘 다루듯이 정부를 다루어 가는 게 아닌가 하고... 전우익. 홀로 정영상 형을 생각하며 ...난 형의 죽음을 슬퍼하진 않아. 제법 좋은 시 몇 수 남겼고 다정다감한 나머지 수많은 친구들과 사랑 싸움도 무척이나 했고, 형이 떠났다는 소문 듣고 전국에서 모여든 친구들이 애석한 마음에서 뜨거운 눈물 흘려 주었고 자다가 자는 듯이 갔는데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 농사를 지어 보니 밭 갈아 씨 뿌리는 일 정도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싹트고 크고 영그는 일은 땅기운, 햇빛, 비바람의 조화로 이루어집디다... 우리의 생명도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 성싶습니다... 삶과 죽음으로 인간은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삶만 보고 죽음이란 또 하나의 조화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박성수. 일상에서 도망친 것 그 자체가 깨달음 ...해인사를 찾은 것은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도망친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누구나 다 견디어 나간다고 해서 일상 생활이 만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겉으로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앞으로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때문이다. 게걸스러움, 악착같음, 구차스러움……. 삶을 압박하는 이 불편한 단어를 피해 갈 수 있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 절에 온 사람이라면 돌아가는 그곳이 흙탕물인 줄 알아야만 비로소 절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이 청년을 누가 내게 보냈을까? ...시인 윤동주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했다. 내가 어찌 감히 윤동주 선생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나 역시 소망하는 것을 하늘은 아니더라도 내 자식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은 애비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생은 자기가 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나쁘게 살면 나쁜 결과가, 바르게 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생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오묘한 부처님의 섭리가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유홍준. 배워서 될 수 없는 얘기들 ...첫 슬라이드가 조선 초기 백자 항아리였고, 그 다음은 백자 제기, 그 다음은 귀대접……. 이런 식으로 다음다음으로 속속 넘어가는데 열 번째쯤인가에 달항아리가 슬라이드에 비쳤다. 의자에 앉아 등을 돌리고 학생들과 함께 슬라이드를 보던 최 관장은 느린 몸동작으로 일어나더니 달항아리를 물끄러미 살피다가 옆으로 가서 또 한 번 바라보고는 "그거 참 조오타" 하면서 이내 "다음 슬라이드" 하고 말하였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그 강의 중에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달항아리의 형태와 때깔에 서린 그 모든 미감을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권정생. 아름다운 우리 당산나무 ...『서편제』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누나를 폭력에 가깝게 학대한다고 생각한 동생 동호가 아버지와 싸우고는 마을 밖 당산나무 밑에서 누나 송화와 헤어져 집을 나간다. 아득히 들길 저편으로 사라지는 동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화는 울고 있었다. 그 뒤 송화는 아예 벙어리가 된 채 날마다 이 당산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떠나간 동생을 기다린다. 만일 당산나무가 없었더라면 『서편제』 영화의 기막히도록 아름다운 이 장면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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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봄기운이 전국을 물들여가고 있다. 비단 상춘객이 아니라 하더라도 따뜻한 봄날, 어디로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산문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닐까? 최근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우는 스물두 명의 저자들의 에세이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해인사를 거닐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해인사에서 매월 발행하는 『월간 해인』의 「유마의 방」이라는 컬럼에 실렸던 원고들 가운데 스물네 편의 글을 선별하여 묶어 펴낸 산문집이다(옹기장이 刊). 스물 두 명의 저자들은 리영희, 이문옥, 윤구병, 노무현 등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웠던, 386세대들에게 친밀한 이들에서부터 이윤기, 유홍준, 김 훈, 이현주, 이철수 등 여러 독자층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가들, 그 외에 대학강단에 서는 교수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스물네 편의 산문들은 저자들 자신의 소박하고 평범한 삶 속에서 얻었던 지극히 작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지중해 여행 중에, 동해안 길목에서, 해인사에서, 고전(古典) 속에서, 추억 속에서, 편지글 속에서, 앞뜰에서, 미술관 그리고 어느 기차역과 대학강단 등 자신이 속해 있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문득 깨달았던 작은 진리들이 그에 어울리는 사진과 함께 담백하게 편집되어 있다. 독자들은 그 작은 진리의 숲, 사색의 숲을 함께 거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십여 명의 작가들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유려하고 빼어난 글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대중출판을 염두에 둔 글쓰기가 아니어서 더더욱 소박하고 겸허한 글을 대할 수 있다는 점, 지금과는 조금 다른 입장이었던 저자들의 과거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 『월간 해인』의 표지 사진을 맡고 있는 사진작가 백종하의 아름다운 사진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과거 정치,종교,문화 등 시대에 경종을 울렸던 『월간 해인』에서 담아낸 지적산문들> 여기에 모인 스물네 편의 산문은 해인사에서 매월 간행되는 『월간 해인』의 컬럼 「유마의 방」에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실렸던 글이다. 가까운 과거는 가까운 과거대로, 먼 과거는 먼 과거대로 그 시대에 따른 저자들의 감동과 아픔 그리고 작은 깨달음들이 고스란히 글 속에 녹아들어 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원칙의 화두가 변함이 없는 법이라고 한다면 이 글들 속에 녹아 있는 눈물과 웃음은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다. 『월간 해인(海印)』은 1982년 3월 해인사 학승들의 손으로 발간된, 창간된 지 스무해가 넘은 불교계의 대표적 잡지이다. 1,500여 명의 집필진이 참여하여 6,000여 기사들을 담아내면서 불교계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잡지로 성장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유마의 방」이라는 컬럼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들이 왜 묶이게 되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마(維摩, Vimarakrti)는 유마힐(維摩詰)라고도 하며, 우리에게는 흔히 '유마거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바이샤알리의 거부로 아내와 자식을 가진 재가 신자였다. 유마 거사는 『유마경(維摩經)』을 통해 재가 신자의 몸으로 형식적이고 계율 묵수적으로 변하고 있던 기성교단의 그릇된 점을 타파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 불교의 시대적 요청을 대변하는 물결이었으며 보수주의적 색체가 농후했던 교단에 진보적 바람을 일으키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또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오늘날 불교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히 다가서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유마의 방」이라는 컬럼이 만들어지게 된 의도도 이에 다름 아니었다. 유마거사가 재가 신자의 몸으로 형식적이고 계율 묵수적으로 변하고 있던 기성교단의 그릇된 점을 타파하고자 노력하여 보수주의적 색체가 농후했던 교단에 진보적 바람을 일으키는 일대의 사건을 만들어냈듯, 「유마의 방」은 스님이 아닌 보통사람(俗人)의 글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정치와 종교와 문화계 등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 「유마의 방」을 거쳐간 저자들은 이 작은 지면을 통해 정치와 종교와 문화를 비롯한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진단하는 작은 목소리를 내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를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이제는 과거를 그리움으로 반추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 이 글을 읽는 또다른 맛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일상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이웃과 시대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결국 내 안에 스물두 명의 저자들의 직업은 참 다양하다. 화가, 목사, 철학자, 번역가, 시인, 농부, 교수, 작곡가, 소설가, (전)박물관장, 기자, 판화가, 대통령, 동화작가, 미술사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에서부터 번지수 없이도 우편물이 어김없이 잘 도착하는 오지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도 있고, 오리랑 고양이를 기르며 강원도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목사도 있고, 불교신자도 있다. 이렇게 환경과, 종교와 생각과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글과 몸으로 살아온 삶의 행적에서 우리는 이들을 이 시대의 지성, 이 시대의 양심들이라는 말로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산문들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유려하고 빼어난 문학으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들에서, 투박하기 그지없는 진솔한 글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 지성들의 글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읽는 기쁨을 더하는 것은 사진의 힘 덕분이다. 사진작가 주명덕에 이어 『월간 해인』의 표지사진을 맡고 있는 백종하의 스물네 편의 작품들은 원고를 더욱 빛나게 한다. 백종하는 『월간 해인』외에 『오대법보』등 여러 월간지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통사찰과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해 개인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최근 틱낫한을 비롯하여 스님들의 글을 책으로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스트레스가 많고, 아직은 이렇다할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로서는 좀더 쉽고 편하고 단순하고 느린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출판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의 마음에 오히려 작은 경종을 울리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고, 나아가 이웃과 시대를 바꿀 수 있는 힘은 결국 내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던 힘도 결국 저자들의 작은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에서는『해인사를 거닐다』라는 제목은 『월간 해인』에 수록된 글을 묶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성들이 쏟아낸 단상의 숲, 산문의 숲을 함께 거니는 느낌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표제에 쓰인 '해인사'는 반드시 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그 '해인사'를 넘어서는 것일 것이다. 바쁜 일상으로 봄나들이 한번 가보지 못할 현대인들에게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본향, 언젠가 한번쯤 일상을 떠나 마음의 휴식을 얻기 위해 가고 싶은 '미지의 그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으로의 산책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산문집『해인사를 거닐다』는 작은 힘과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