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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역사에 묻힌, 하지만 묻힐 수 없는 아이들
머리말 : 내 아버지는 독일군이었다 제1부 저주받은 아이들을 찾아서 다니엘 룩셀 : 자전거로 시작된 비극 자닌 세베스트르 : 누가 베르너를 아시나요 제라르 페리우 : 전쟁이 없었더라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테레즈와 마리 조제 :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가 내 원한을 풀어주리라 믿었습니다 노르베르 르루아 : 끝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다 제2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 제1장 독일에 협력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 프랑크라이히의 독일 병사 1914~1918년, 범죄가 낳은 사생아 농촌에서 무료하게 지내다 제2장 거대한 환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랑을 잃어버린 아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위생 관념으로 도덕심을 대체하다 제3장 사랑의 탈영병 생체 대용품 마지막 발걸음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관계 대담 : 루트비히 노르츠와 장 폴 피카페르 인터뷰 : 독일군 참전?전몰장병 서류 보관소 대표 옮긴이 후기 :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
Jean-Paul Picaper
Ludwig N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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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3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빚어낸 사고인 셈이죠. 내 아버지는 독일인이었고 내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4세까지는 수용가정의 품에서 따뜻하게 지냈습니다. 그 후 브르타뉴의 작은 마을에 있던 할머니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11세가 될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지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앞으로 지나면서 내가 그들과 똑같은 인간인지 확인하고는 했습니다.”--- p.32
“우리가 학대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아무런 대우도 받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담을 몰래 넘어 들어가 먹을 것을 훔쳐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과일을 서리하기도 했고, 채소를 밭에서 뽑아 그대로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배추 수확을 끝낸 밭에서는 고랑에 남겨진 뿌리를 캐먹었습니다. 기숙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정말 건강한 소녀였습니다.”--- p.71 “내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어머니는 다시 어둠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기댈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희망의 끈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죠. 고통과 가난 이외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고통을 아들인 나와 나눠 가졌습니다. 하지만 내게도 그런 고통을 안겨줘야 했던 걸까요?”--- pp.92-93 “어머니와 릴리 언니가 나를 한 독일군의 품에 밀어 넣었습니다. 상당한 연배의 남자였습니다. 나는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어머니와 릴리 언니는 문자 그대로 나를 방에 던져 넣었습니다. 한 팔이 문틈에 끼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폭력이 뒤따랐습니다. 그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p.114 “해가 저물어가는 때였습니다. 야식 준비를 끝내자 갑자기 할 일이 없더군요. 축제를 앞두고는 으레 한가한 시간이 잠시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서서 혹은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축제가 시작할 시간을 기다리면서요.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번호부를 뒤지면 내 아버지 이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부질없는 바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화가 치밀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그런 짓이나 하자고 모인 것은 아니잖습니까! 차라리 그런 희망을 단념하고,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려는 그런 수고를 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찾지 않는데 내가 무엇 하러 그를 찾겠다고 안달해야 한다 말인가?” --- pp.144-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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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ing qeen〉, 〈Mamma mia〉 등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보컬그룹 ‘아바’의 멤버인 애니 프리드링스테드(Anni-Frid Lyngstad), 그녀가 바로 ‘저주받은 아이’였다는 사실에 전 유럽이 또 한 번 놀랐다. 애니 프리드는 다른 아바 멤버와 달리 노르웨이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에 주둔했던 독일군 장교인 아버지 알프레드 하세(Alfred Haase)와 19살이었던 엄마 서니 링스태드(Sunny Lyngstad)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 막바지 스웨덴을 통해 퇴각한 노르웨이 주둔 독일군과 함께 알프레드가 떠났고, 서니는 그가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으로 이주한 후 엄마가 신장질환으로 죽고 할머니 손에서 키워진 애니 프리드는 독일로 돌아가던 배가 침몰하여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았으나, 자신의 일대기가 독일잡지에 공개된 후 아버지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노르웨이를 떠난 지 32년 만에 알프레드 하세는 자신의 품에 딸을 껴안았다. 이때 바로 그 유명한 노래 〈Knowing me, Knowing you, that’s the best we can do〉가 작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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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처음으로 밝혀지는 ‘저주 받은 아이들’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 놈의 자식’ ‘수치스러운 아이’ ‘매춘녀의 아이’로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어린아이들이 겪은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저주받은 아이들이자 모든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또한 그 고통을 겪으며 반세기가 지났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자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진실’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결코 저주받은 아이들이 아니라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이 사랑해서 태어난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상처는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8.15 광복절을 맞아 ‘독일 놈의 자식들’이라 불리며 모욕 속에서 자라난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전쟁과 폭력의 상처 역시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군위안부와 친일논쟁 등 일본 잔재에 관한 문제들이 아직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 폴 피카페르는 독일군 병사와 프랑스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아로 태생적인 사명감으로 생생한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이 르포르타주를 완성했다. 한 편의 보고문학으로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수많은 언론에 주목을 받았고,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는 세계 곳곳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해방 후 64년 만에 읽는 전쟁과 역사의 교훈! 제1부에서는 저주받은 아이들 5명(다니엘 룩셀, 자닌 세베스트르, 제라르 페리우, 테레즈와 마리 조제, 노르베르 르루아)이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받았던 고통의 상처를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 놈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쓰고 반세기 동안 숨을 죽이고 살아가야 했다. 제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을 통해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정치精緻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금은 환갑의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저주 받은 아이’들의 증언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역사의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다니엘 룩셀은 1994년 프랑스 민영 TV ‘TF1’을 통해 자신이 독일군 아버지를 두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린아이들에게 끔찍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지 않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고귀한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기 때문이다”라는 가슴 아픈 말을 남겼다. 그리하여 ‘저주받은 아이들’이 태어난 것은 씻지 못할 고통을 안고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갔다. 제라르 페리우는 “전쟁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남들이 아는 것처럼 부도덕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제라르 페리우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또한 그들은 그 아이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독일군들이 프랑스에서 강제로 추방되자, 제라르와 엄마만 프랑스에 남아 아버지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는 “나와 엄마의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나는 무척이나 울었고, 자주 절망의 끝까지 가곤 했습니다. 나는 마치 속죄의 제물처럼 엄마의 십자가를 지고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던 이들은 다니엘 룩셀과 제라르 페리우뿐만 아니라 자닌 세베스트르, 테레즈와 마리 조제, 노르베르 르루아 등이 등장해서 자신들이 받았던 상처와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독일군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모멸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와 사회,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외면당하고 멸시받아야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WASt를 통해 독일에 있는 가족들을 찾았지만, 독일에 있는 자신들의 가정이 파괴될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독일군 아버지의 유산을 노린다는 오해 속에 독일인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다. 이 책은 ‘저주받은 아이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하거나 그동안 이들에 대한 비판이 부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 아버지를 두고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도 부당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저주받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단지 ‘독일 놈의 자식’이라는 이유에서 말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 청산해야 할 역사 이 책은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흔적을 말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나치 독일에 부역한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을 숙청하면서 과거사를 청산했다고 하지만, 오직 ‘저주받은 아이들’에 대한 문제는 도외시했다. 여기에서도 ‘저주받은 아이들’은 ‘독일 놈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외되었다. 1963년 1월 22일에도 프랑스의 드골 장군과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수상이 우호협정을 체결했지만, ‘저주받은 아이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프랑스도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했다고 하지만, ‘저주받은 아이들’ 문제는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도 프랑스처럼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부역자에 대한 단죄는 물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은 지금까지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일제의 병합에서 해방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지금도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고,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사과와 배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를, 그리고 그 부끄러운 역사의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결코 미래의 역사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