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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다락방에서 꽃핀 장밋빛 미래
PART 01.상상 속에 갇힌 테크놀로지 PART 02.인간과 기계, 그 공생의 역사 PART 03.테크놀로지, 생존의 법칙 PART 04.테크놀로지의 미래 덧붙이는 말과 감사의 말 부록미래 테크놀로지 스캔 |
Matthias Ho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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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텁지근한 다락방에서, 지붕에 난 창문 아래에 쌓인 비둘기 똥 냄새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냄새에서 갑자기 어떤 거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그렇다. 그렇게 내 앞에 펼쳐졌던 과학기술은 완전 사기였다. 달콤한 말로 우리를 유혹했지만 그것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우리의 코를 꿰어 이리저리 빌어먹을 환상으로 끌고 다녔을 뿐 약속했던 찬란한 영광은 아직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과학기술도 늙고 병들고 쇠락했다. 우리를 위해 잔디에 물을 주고 접시를 닦고 쓰레기를 버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로봇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몸매를 가꿔주고 불치병을 치료하며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슈퍼 알약? 말하는 애완동물, 음성 인식 주택, 저절로 달리는 자동차? 조금만 더 믿고 기다리면 될까? 도대체 그놈의 미래란 어디 있는가? 어째서 그나마 이루어놓은 과학기술조차도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했을까? --- p. 11
자동차 운전은 결코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다. 인간과 자동차는 기술 진화에서 깊은 공생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운전대를 자동차에게 넘기는 일은 운행 방식의 변화를 능가하는 생각보다 훨씬 큰 사건이며 ‘인간 대 자동차’의 협동 체제를 위협하는 일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다양한 법적 문제도 산재해 있다. 자동 운전 중에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이며 손해배상은 누가 해야 하는가? 추가로 발생한 이 자유 시간의 재량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회사가 자동차 안에 있는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선언함으로써 우리의 편안한 아지트 생활을 빼앗지는 않을까?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우리는 비록 폭주족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달리고 싶을 때는 맘껏 질주할 수 있기를 원한다! --- p. 38 식량과 가정 살림의 모든 체계는 계속해서 복잡해질 것이다. 복잡하기가 끝이 없는 인간의 호감과 거부감, 배고픔, 알레르기, 연민, 유행, 일탈 행위들을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냉장고가 모두 이해하고 그에 맞게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냉장고 안에 늘 같은 개수의 요구르트가 들어 있기를 원하나? 물론 다양한 지시를 내릴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어떤 한계에 다다를 것인데 스스로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혹은 원해도 되는지 아니면 원해야만 하는지 모르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 똑똑한 냉장고는 우리의 미래상을 지배하는 테크놀로지의 사기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똑똑한 냉장고는 세계를 조종하고 제정하려는 (남성적) 자동화 유토피아의 일부다. --- pp. 77-78 오늘날 새로운 지식들은 하나의 학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간의 교집합이나 분야 간 구별이 명확하지 않는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리학과 신경과학 사이, 심리학과 생물학 사이, 인류학과 생태학 사이. 그곳에서 지식의 불꽃은 반짝인다. 미래의 학문은 점점 더 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과학저술가 존 브록만은 이를 가리켜 ‘제3의 문화’라고 이름 붙였다. 21세기의 진보는 다른 모습이다. 기계 시대의 자연과학 진보와 달리 더욱 정신적이고 체계적이며 사상적이다. --- pp. 156-157 자연계의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외형을 다듬어 나갔다. 중력에 가장 적합한 구조가 나무였기 때문에 다리는 언제나 자재와 상관없이 나무 모양을 띠고 있다. 뼈는 이른바 생물학적 ‘렌더링’의 결과다. 즉 장면을 이미지로 만든 결과다. 움직일 때마다 생물의 외형과 중력의 영향이 서로 소통하여 뼈의 형태를 다듬었다. 연구자들은 물고기의 외형을 본따 잠수함의 모양을 유선형으로 설계했다. 로봇 연구자는 바퀴벌레의 움직임에서 착안해 로봇의 다리를 만들었다. (…) 생물은 언제나 더 큰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개별 기능이나 신체기관을 약간씩 변이시켜 발전해 왔다. 이와 달리 인간의 공학은 개별 기능의 절대화와 최적화 경향을 추구한다. 하지만 생물의 ‘퍼지 이론’대로 여러 기능을 우아하게 조화하는 능력이 테크놀로지의 최종 결말을 바꿀 수 있다. 계통 전체를 보는 눈만이 기능성을 이길 수 있다. --- pp. 226-227 테크놀로지와 달리 진화는 결코 발명이 아니다. 유전자 코드는 솔루션을 찾는 대신 여러 가능성을 경쟁시킨다. 다니엘 데넷의 표현대로 진화 알고리즘은 “가능성이라는 건초더미에서 좋은 디자인이라는 바늘을 찾는 것이다.” 번성한 모든 생물체는 ‘운 좋게 살아남은’ 결과다. 반면 테크놀로지는 연역적 법칙이 지배한다. 연역 추론, 실험, 시행착오를 통한 점진적 개선, 발견한 원리의 적용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새로운 파생이 생겨나고 학문, 실용, 인지가 복합적으로 성장해 인지를 초월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혁신의 법칙 또한 변화한다. 두 가지 혁신 방법을 서로 조합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시행착오의 맹목적인 도전과 공학적 분석 절차를 조합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진정 ‘테크놀루션’이라 부를 만한 테크놀로지를 초월한 ‘메타 테크놀로지’가 발생할 것이다. --- pp. 236-238 지금의 트렌드가 계속된다면 22세기에는 모든 기아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거의 모든 국가가 선진국 대열에 들 것이며 고효율의 태양열 집열기와 변환기로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고 마찬가지로 식량과 물자도 넉넉해질 것이다. 전 세계는 유연한 사회주의가 발달할 것이다. 후미진 한두 곳에 갈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큰 갈등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평화롭고 생태적이며 고효율인 세계에서 테크놀로지는 진화를 멈출 테고 이런 균형 상태는 수천 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기술을 감지하는 촉수가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정신과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며 당분간은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토록 자주 인용되고 예언되었던 ‘영속성의 시대’가 마침내 열리는 것이다. 환경, 테크놀로지, 문화는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현대의 생태환경 전문가들이 세계 지도자가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이런 사회에서 인류는 생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까? 착취나 정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필요도 없고 서로 죽이지도 않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도구를 갈고닦지 않는 그런 인류가 될까? 아니면 스타니스와프 렘이 예언했듯이 문명이 다시 ‘우주의 정적 뒤로 사라질’ 그 순간까지 열심히 전진할까? 문제는 테크놀로지도 생물체도 이런 식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균형은 오래가지 못한다. 영속적이지 않다. 우주는 생명체이며 계속 변한다. 그리고 인류는 우주와 함께 한다. --- pp. 283-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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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인간을 이해하는 과학기술만이 살아남는다 !
유럽 최고의 미래학자가 말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미래 우리가 이제껏 그려왔던 과학기술의 찬란한 미래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진보의 가속 단계가 아니라 그 정점에 있다!” _미래학자 테드 모디스Ted Modis 로봇 강아지 ‘아이보’를 기억하는가? TV에 나와 마치 진짜 강아지보다 더 진짜처럼 굴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 ‘진짜’ 강아지는 상품으로 출시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이용가능한 화상 전화는 통신회사들이 들이는 수억 원의 마케팅 비용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 초음속으로 하늘을 날았던 콩코드기는 시간의 경제성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음속(亞音速)으로 나는 일반 비행기와의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과거 상상에 그치던 것을 뛰어난 기술개발로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 최고의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인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는 자신의 저서 ‘테크놀로지의 종말(21세기북스)’에서 인간이 오랫동안 기대해 왔던 장밋빛 미래들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앞의 사례처럼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대중화되지 못하고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앞으로 테크놀로지가 어떤 식으로 진화해 갈 것인지를 제시하며 지금까지 인간이 테크놀로지에 대해 가졌던 환상을 제거한다. 인간은 혁명적 미래보다 편안한 미래를 원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류를 위한 실현가능하고 현실적인 조언들 저자는 테크놀로지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일 뿐, 지금까지 우리가 꿈꾼 테크놀로지 세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테크놀로지가 제시하는 미래는 ‘구원에 대한 판타지’라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반영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매혹시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가 마치 진실인양 여기게 한다.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에게 허상을 보여줄 뿐이어서 개발된다 하더라도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테크놀로지는 한 분야에서 성공한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려고 하거나 멋져 보이리라 생각됐지만 어설프게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기술개발에만 매달려 시장성이 없는 상품들을 만들거나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매력이 사라져버리는 상품들도 많다. 1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개발되었던 미래의 첨단기술들이 시장에서 왜 실패하고 사라져갔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스카이카나 전자동 자동차, 화상 전화, 종이 없는 사무실, 똑똑한 냉장고, 개인 이동 수단인 세그웨이, 인공지능을 가진 전자제품 등이 그 예이다. 2부에서는 왜 어떤 테크놀로지는 진화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고, 어떤 테크놀로지는 다채롭고 다양하게 진화하는지를, 과거 역사적 사례와 테크놀로지 진화를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요인 등을 통해 알아본 후, 3부에서 성공하는 테크놀로지의 조건을 자연계의 진화 원리를 토대로 설명한다. 4부에서는 영원불멸의 삶을 꿈꾸는 에이지토피아(Agetopia)와 제2의 현실이 된 사이버토피아(Cybertopia), 우주정복의 스페이스토피아(Spacetopia) 등 현재 인류가 상상하는 것들의 오류와 지향점 등을 기계와 인간의 공생 즉 일종의 ‘하이브리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테크놀로지는 생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자연적인 욕구의 인공적인 연장”이라는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의 말처럼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결핍과 생존위기에서 출발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을 외면한 채 혁명적 미래를 꿈꾸며 기계 중심의 자가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완벽한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다. 경제성, 사회의 흐름, 인간의 욕구, 문화체계 등 기술 외적 요인들이 혁신의 성패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계 중심의 테크놀로지가 보여주는 지금의 미래는 너무나도 어리석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언제나 우리가 유치원 시절 상상했던 딱 그 수준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기계 자체를 위한 맹목적이고 무자비하며 비인간적인 테크놀로지에 미래는 없다. 인간을 이해하고 자연계의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을 거친 테크놀로지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인류는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위안을 계속 발전시킬 것이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기술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가 지금과 비슷하다는 것은 “멋진 위로요 약속이며 계시다.” 저자의 말처럼 미래의 인류는 오늘날의 인류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