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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1. 예술가의 삶, 그 예술의 뿌리 유서 깊은 집안에서 출생하다 | 태백의 산과 동해의 바다 | 고등학교를 자퇴하다 | 신세계를 향해 | 예술의 길로 들어서다 | 세 분의 스승이 있었다 |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다 | 사진, 생계를 위한 제2의 선택 | 추상의 길 | 《자유미술가협회전》 최고상을 수상하다 | 군국주의에 짓밟힌 예술가의 자유혼 2. 삶의 격랑 속에서 바다로 나간 산사나이 | 일생의 반려를 만나다 | 해방… 그리고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다 | 신사실파를 결성하다 | 치열하면서도 행복했던 약수동 시절 | 서울대 교수직보다 소중했던 ‘50년미술가협회’ 3. 전쟁의 상흔 빼앗긴 서울에서 | 서울 수복, 그리고 다시 1.4 후퇴 | 양조장을 시작하다 | 막걸리 띄우던 방에서 이어진 고독한 작업 | 피난지 부산에서 제3회 《신사실파전》을 열다 4. 한국 현대미술의 주춧돌이 되다 서울로 돌아오다 | 명동시대 | 분규의 시작_ 대한미협과 한국미협 | 모던아트협회로 전위예술의 전기를 마련하다 | 《현대작가초대전》 | 정치적 격변 속에서 |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 전위미술운동 | 상파울로 비엔날레 | 잃어버린 그림들 5. 예술을 위한 오직 한 길 첫 개인전 |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교수로 부임하다 | 일체의 형식과 타협을 거부하다 | 1975년, 처음으로 작품이 팔리다 | 예술과 맞바꾼 건강 | 인생을 함께했던 친구와 동료들 6. 한국 추상미술의 북극성이 되다 나의 분신, 나의 뮤즈 | 사랑하는 아이들-리지, 자야, 진이, 건이! | 끝내 꺾이지 않았던 추상을 향한 열정 | 죽음 앞에서도 담담히 유영국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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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선생은 산의 화가다. 선생이 그린 산은 그냥 그림 속의 산이 아니다. 당신 가슴속에 존재하는 산, 당신이 정신과 영혼으로 품은 산…, 유영국 선생 바로 그 자신이다.
- 책을 내며(p.7) 유영국의 작품은 당시 그곳에서 같이 활동하던 한국 화가들과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당시 한국 화가들이 주로 형상에서 출발하여 점차 추상으로 다가갔다면, 유영국은 처음부터 추상으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오직 추상의 길만을 걸었다. 처음 데뷔 몇 년 동안의 실험적인 작품을 빼고, 유영국은 애초부터 절대 추상, 절대 순수 구상만을 이어간 것이다. - 1. 예술가의 삶, 그 예술의 뿌리(pp.38-39)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와 보니, 현대미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얼마 안 있어 해방은 되었지만 그림 그릴 엄두가 안 나고, 그리려고 해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 길이 없었어요. 그때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해온 추상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가를 내 나름대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 2. 삶의 격랑 속에서 (p.58) 그들은 예술가였다. 땟거리는 없어도 마음에 맞는 동인들끼리 뭉치자마자 전시회부터 하자는 예술가들이었다. 그 척박한 상황에서도 전시회를 할 생각에 아이들처럼 기뻐하는 천진하고 순수한 영혼들, 그들이 신사실파 동인들이었다. - 3. 전쟁의 상흔(p.91) 1970년대에 이르자 유영국의 산은 환상적인 총천연색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산은 그의 정신세계요, 완전한 자신이었다. 그의 마음이 행복하면 산도 붉고 아름답게 피어났으며, 그의 마음이 아프면 산도 흙빛의 얼굴을 한 채 슬프게 서 있었다. 세상이 환하면 그의 산도 환하고, 세월이 아프면 그의 산도 함께 울었다. 그에게 산은 비단 산만이 아니었다. 바다도 산이요, 해와 달, 들판과 낙조도 모두 다 산이었다. 산은 우주 전체이자 생명 그 자체였다. - 4. 한국 현대미술의 주춧돌이 되다(p.121)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자신의 예술을 ‘개인전’으로만 보여주겠다는 그의 약속은 철저히 지켜졌다. 1964년부터 1998년까지 15회의 개인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승부를 건다”라는 자신의 의지를 마지막까지 행동으로 보였다. - 5. 예술을 위한 오직 한 길(p.144)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서, 평생 자유로운 예술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