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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이가서 20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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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엮으며

제1부 이 사람을 보라
1. 시신을 소달구지에 싣고 고향에 가져가 묻어다오 / 성혼成渾, 〈묘지墓誌〉
2. 황천길에 무궁한 원한을 품으리라 / 이정암李廷, 〈자만自挽〉 2수
3.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금각琴恪, 〈자지自誌〉
4. 선영 아닌 딴 곳에 장사지낸다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 김주신金柱臣, 〈수장자지壽葬自誌〉
5. 입조한 삼십 년 동안 좌우에서 돕는 자가 없었다 / 이의현李宜顯, 〈자지自誌〉
6. 화합을 주장하던 내가 세상의 죄인이 되었다니 / 원경하元景夏 〈자표自表〉
7. 어리석다는 평은 정말 말 그대로가 아니랴 / -임희성任希聖, 〈재간노인자명 병서在澗老人自銘 幷序〉
8. 갈아도 닳지 않는 석우가 있다 / 오재순吳載純, 〈석우명石友銘〉
9.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 서유구徐有,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
10. 나라가 망하자 사흘 동안 흰 옷을 입고 슬픔을 표했다 / 김택영金澤榮, 〈자지自誌〉
11. 일본의 신민이 될 수는 없소 / 이건승李建昇, 〈경재거사 자지耕齋居士自誌〉

제2부 이것으로 만족이다
1. 현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도 할 만하다 / 김훤金, 〈자찬묘지自撰墓誌〉
2. 늘 〈감군은〉 한 곡조를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상진尙震, 〈자명自銘〉
3. 느긋하고 편안하게 내 명대로 살았다 / 홍가신洪可臣, 〈자명自銘〉
4. 담백하고 고요하게 지조를 지켰노라 / 김상용金尙容, 〈자술묘명自述墓銘〉
5. 슬픔과 탄식 없이 편안한 삶을 누렸도다 / 한명욱韓明勖, 〈묘갈墓碣〉
6. 몸이 한가롭기에 일 또한 한가롭다 / 이신하李紳夏, 〈자지문自誌文〉
7. 이처럼 살다가 이처럼 죽었다 / 박필주朴弼周, 〈자지自誌〉
8. 슬픈 일이 반이고 웃을 일이 반이다 / 권섭權燮, 「자술묘명自述墓銘」
9. 재주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노닐었다 / 남유용南有容, 〈자지自誌〉
10. 이것이 섭섭할 따름이다 / 윤기尹, 〈자작뇌문自作文〉
11. 올해의 운運이 가버렸구나 / 서기수徐淇修, 〈자표自表〉

제3부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1. 청풍명월을 술잔으로 삼아 장사지냈다 / 조운흘趙云, 〈자명自銘〉
2. 나는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이다 / 조상치曹尙治, 〈자표自表〉
3. 시끌시끌한 일일랑 도무지 긴치 않다 / 박영朴英, 〈묘표墓表〉
4. 대부가 직분을 유기했다면 장사지낼 때 사士의 예로 한다 / 이식李植, 「택구거사 자서澤폪居士自敍」
5. 서른을 넘긴 뒤로는 다시는 점을 치지 않았다 / 박미朴, 〈자지自誌〉
6. 노새 타고 술병 들고 나가서 노닐어 돌아가는 것도 잊고는 했다 / 남학명南鶴鳴, 〈회은옹 자서묘지晦隱翁自序墓誌〉 7. 으레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 강세황姜世晃, 〈표옹자지豹翁自誌〉
8.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 서명응徐命膺, 〈자표自表〉
9. 사람됨이 보통사람보다 못했다 / 정일상鄭一祥, 〈자표自表〉
10. 기쁨과 슬픔을 헛되이 쓰려 하지 않았다 / 유언호兪彦鎬, 〈자지自誌〉
11. 깨닫고 보니 죽음이 가깝도다 / 유한준兪漢雋, 〈저수자명著自銘〉
12.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면 먼저 제 몸을 지켜야 한다 / 남공철南公轍, 〈사영거사자지思潁居士自誌〉
13. 남들은 나를 늙은 농사꾼으로 대해주지 않는다 / 이유원李裕元, 〈자갈명自碣銘〉

제4부 웃어나 보련다
1.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이다 / 이홍준李弘準, 〈자명自銘〉
2. 개미들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 모기는 내 살을 물어뜯네 / 남효온南孝溫, 〈자만自挽〉 네 수 가운데 제1수
3. 선생의 수명은 어이 그리 긴가 / 정렴鄭, 〈자만自挽〉
4. 벼슬에는 뜻을 끊고 농사에 마음을 기울였다 / 송남수宋枏壽, 〈자지문自誌文〉
5. 맑은 이름이 세간 사람들을 술렁이게 할 만하다 / 임제林悌, 〈자만自挽〉
6. 그 비루함이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 윤민헌尹民獻, 〈태비자지苔扉自誌〉
7. 인간의 모든 계책은 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다 / 김응조金應祖, 〈학사모옹자명 병서鶴沙翁自銘 幷序〉
8. 뼈야 썩어도 좋다 / 김광수金光遂, 〈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
9. 이것이 거사가 반생 동안 겪은 영욕榮辱이다 / 이선李選, 〈지호거사자지芝湖居士自誌〉
10. 허물과 모욕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유척기兪拓基, 〈미음노인자명渼陰老人自銘〉
11.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한 사람이 아닌가 / 김종수金鍾秀, 〈자표自表〉
12. 썩은 흙과 함께 스러지리라 / 이만수李晩秀, 〈자지명自誌銘〉

제5부 죽은 뒤에나 그만두련다
1. 시름 가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 / 이황李滉, 〈자명自銘〉
2. 대의?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럼이 없도다 / 노수신盧守愼, 〈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
3.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 / 이준李埈, 〈자명自銘〉
4. 허물을 줄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 허목許穆, 〈자명비自銘碑〉
5.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 / 박세당朴世堂, 〈서계초수묘표西溪樵墓表〉
6. 감암에서 야위어감이 참으로 마땅하다 / 이재李栽, 〈자명自銘〉
7. 천명을 즐기거늘 무엇을 의심하랴 / 조림曺霖, 〈자명 병서自銘 幷序〉
8. 나 역시 세속적인 것을 면치 못했다 / 조경趙璥, 〈자명自銘〉
9. 이름이나 자취나 모두 스러지게 하련다 / 신작申綽, 〈자서전自敍傳〉
10.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곱게 다듬으려 했다 / 정약용丁若鏞,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여적(餘滴)
자찬묘표·묘지와 자찬 만시

참고문헌
본서에 다룬 글

저자 소개 1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로 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로 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한시의 성좌』, 『김삿갓 한시』, 『(증보)한문산문미학』, 『간찰』, 『참요』, 『내면기행』, 『산문기행』, 『국왕의 선물』 1-2, 『옛 그림과 시문』, 『한국의 석비문과 비지문』, 『호, 주인옹의 이름』, 『한국의 과문(科文)의 양식과 시제(試題)』, 『응제(應製)와 제술(製述)』, 『서울 고전만유』, 『성호사설의 변정·상론·제안』 등 40여 종이 있다. 역서로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금오신화』,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1-2, 『삼봉집』, 『기계문헌』 1-6,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강의 : 논어』 1-3, 『육선공주의』 1-2(공역), 『동아시아 한문학 연구의 방법과 실천』, 『도성행락(圖成行樂) : 명청문인의 화상 제영』, 『여유당전서(시)』(네이버 지식백과), 『춘향전·춘향가』, 『을병조천록』, 『신편신역 청련집』, 『강화학파 정제두·이충익·심대윤』(한국사상선), 『신편신역 김시습전집』 등 4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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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612쪽 | 963g | 164*230*35mm
ISBN13
9788958642718

책 속으로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금각, 〈자지〉

봉성 사람 금각은 자가 언공이다.
일곱 살에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열여덟에 죽었다.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묘지치고는 너무 짧다. 열여덟에 죽었다니, 삶도 너무 짧다. 후대 사람들에게 운명의 야박함을 고발하려 했나보다. 금각琴恪, 1569~1586이 폐결핵으로 죽어가면서 남긴 글이다. (……)
금각은 또 이런 만사를 지어, 부모를 영결했다.

아버님 어머님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 --- 본문 중에서

늘 〈감군은感君恩〉 한 곡조를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상진, 〈자명〉

시골구석에서 일어나
세 번 재상의 관부에 들었고
늘그막엔 거문고를 배워
〈감군은感君恩〉 한 곡조를 늘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본문 중에서

나는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이다 / 조상치, 〈자표〉

노산조 부제학 포인逋人 조상치 묘

노산조라고 쓴 것은 오늘의 신하가 아님을 밝힌 것이고
벼슬 품계를 쓰지 않은 것은 임금을 구제하지 못한 죄를 드러낸 것이며
부제학이라 쓴 것은 사실을 없애지 않기 위해서이고
포인도망자이라 쓴 것은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 서유구 〈오비거사생광자표〉

풍석자가 부인 송씨의 광중을 단주, 장단 백학산 서쪽 선영의 아래에 옮기고 난 뒤, 그 오른쪽을 비워 수장의 곳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이, “옛날 사람 가운데도 그렇게 한 사람이 있었죠. 그대는 스스로 묘지를 짓지 않나요?” 하기에, 풍석자는 “아! 제가 무슨 뜻 둔 바가 있었다고 묘지를 적겠습니까?” 했다.
그런데 전에 내가 친척 아우 붕래에게 답한 서찰에서 삼비(三費)의 설을 말한 것이 있다.
처음에 내가 중부 명고공, 서명응에게서 『예기』 〈단궁〉과 〈고공기〉, 『당송팔가문』을 배울 때는 우람하게 유자후, 유종원와 구양영숙, 구양수의 문장을 배울 뜻이 있었다. 얼마 있다가 『시』 『서』와 『사서』를 읽게 되면서는, 또 정사농과 주자양을 떠들게 되었다. 바야흐로 빠져들기는 괴로울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으면서 터득한 것은 없었으되, 도끼를 잡고 몽치를 던지는 수고를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했다. 하지만 얼마 있다가는 부친의 유업을 잇느라 저지당하여 뜻이 흔들렸고, 벼슬살이하느라 유혹당하여 뜻을 빼앗겨서, 지난날 배운 것을 지금은 모두 잊었다. 이것이 첫번째 낭비이다.
이름을 신하의 명부에 올린 처음에, 정묘정조께서 앞서의 악을 전부 씻어주시는 은혜를 입어 영화로 통하는 서반의 청직에 숫자나마 채우도록 반열에 끼워주셨기에, 스스로 자환씨와 유중첩의 교서를 직분으로 삼으려고 스스로 기약했던 일을 다시 잊고 말았다. 바야흐로 이름이 관리 명부에 기록되어 온힘을 쏟아부을 때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눈이 흐릿하게 되는 수고를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해나갔다. 하지만 얼마 있다가 양장구곡 같은 험한 벼슬길이 눈앞에 있고 구당협 같은 험난함이 뒤에 있어, 수레의 굴대가 꺾이고 배의 키를 잃어버려, 머뭇거리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이 두번째 낭비이다.
무릇 그런 뒤에 폐기되어 진나라 동릉후의 오이, 운경의 채소, 한나라 범승의 호박, 후위 가사협의 나무에 관한 농법을 고개 숙이고 묵묵히 따라 익혀, 경영하고 계산해서 날과 달을 쌓았으니, 다툼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사물이 인색하게 굴어 착오를 일으키고 칭칭 얽어매어, 꽃부리가 맺기를 바랐건만 마침내 동량재가 꺾이고 집이 엎어져서 일만 가지 인연이 기왓장 깨지듯 부서지고 말았다. 이것이 세번째 낭비이다.
(……)
아아, 정말로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역시 낭비는 잠깐이고 거둔 것이 있어 오래간단 말인가? 저 입언立言과 입공이 탁월해서 불후의 땅에 발을 똑바로 세운 사람들은 그 정신과 기백이 반드시 백세나 천세 이후까지 몸과 이름을 끌어안고 보호할 것이니, 이것은 하루아침에 엄습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젊어서는 성실하다가 장성해서는 근심이 많았고 늙어서는 어둑어둑하므로, 시원을 따져보고 끝에서 처음으로 되돌려 몸뚱이와 함께 변화해 없어지지 않을 것을 찾아본다고 해도, 끝내 그림자와 음향처럼 방불한 것을 얻을 수가 없다. 게다가 80년 세월을 죄다 낭비해버린 뒤에, 뻔뻔하게 붓을 잡고 편석片石을 빌려서 문장으로 꾸미면서, 휑하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니, 아무래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손자 태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우람한 비를 세우지 말고, 그저 작은 비석에 ‘오비거사 달성 서 아무개 묘’라고 써준다면 족하다.”
원룈의 운세는 12만 9600세인데,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은 고작 1620분의 1이니, 홀홀하기 짝이 없도다! 그렇거늘 이미 70하고도 9년을 허비했으므로, 작은 구멍 앞을 매가 휙 날아 지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해의 날을 다 채우지 않는다면 하상 8세부터 11세까지 사이에 죽음과 구별이 되겠는가, 구별이 되지 않겠는가? 어린 아이를 묻는 옹기 관에 벽돌 광곽에 무슨 명을 쓸 필요가 있는가? 이 때문에 탄식하노라. 무덤의 유실이 깊숙하고 넓기에, 돌아가신 조부와 돌아가진 부친을 이 언덕에서 따르리라.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죽음에 대한 사색은
곧 삶에 대한 사색이자,
내 안의 숭고함을 되찾는 일이다.

자찬묘지·묘비명의 종합


이 책은 근대 이전 한국에서 이루어진 자찬묘비명 글쓰기의 양식을 모두 망라하고 주요 작품들을 처음으로 소개 혹은 번역하여, 한국고전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자지(自誌)·자명(自銘) 등의 자료들을 분류, 정리하여 총망라함으로써 이 방면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이 책은 원문에 대한 단순 번역을 넘어서서 해당 인물들의 일대기와 또 그들이 살았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총체적인 관점에서 풀어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지향을 말해주는 것으로 바로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의 자서전에서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은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를 앞서 살다간 선조들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금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현재적 가치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묘비명

이 책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를 소개하고 현대어로 번역하였으며, 이미 익숙히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의 자찬묘비명에 담겨 있는 정신지향을 깊이 있게 분석해서 현대의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근대 이전의 자서전적 글들은 서구지성사에서 발원한 현대적 자서전과는 달리 길이가 짧지만, 인물 전형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방식은 오히려 현대인들의 자기 성찰에 일정한 참고가 될 만하다.
묘비명만 남아 있을 뿐 만날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선인들의 삶을 그려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헌의 일차적 해석에 그치지 않고 행간을 읽음으로써 글을 남긴 원 저자의 심리와 지향을 읽어내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저술을 행하였다.
또 당시 시대상의 파악에 필요한 관련 자료들과 원 자료의 해석에 요구되는 방계 자료들을 수습하여 하나의 퍼즐을 맞추듯이 그들 하나하나의 삶과 죽음의 그림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글들이지만, 한 시대를 살다간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담아냈다.
그래서 번역과 해설을 읽다보면, 인물 열전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각 인물이 활동한 시대별 역사안내서를 읽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묘비명

1200년대의 김훤에서 1900년대를 살다간 이건승까지. 지금으로부터 멀게는 800년 전, 짧게는 100년 전의 삶과 죽음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그러니 이 책 안에서도 7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덧없고 무기력한 삶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한 궤적이 그들의 묘비명 담겨 있다. 인간의 삶만큼 강한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700년을 관통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큰 울림으로 전해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자기의 삶을 성찰한 방식을 이해하고 각자의 삶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그래서 스스로 묘비명을 쓰게 되기를 바란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자기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아주 강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 살아서 죽음을 극복하다

옛사람들은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를 극복하려면, 영원히 썩지 않을 세 가지를 이루라고 했다. 덕과 공과 언, 그 셋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이루어야 이름이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고 했다. 이것도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태어날 때는 몸이 빛났건만, 인간은 갖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몸의 정기를 잃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가기 마련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 아닌가.
옛사람들은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 있으면서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를 애도하는 만시를 지었다.
옛사람들은 자기의 묘표와 묘지를 적고 자기의 만시를 지으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부조리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간결한 언어로 응축시켜 남기기도 했으며,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털웃음을 웃기도 하고, 말래야 말 수 없는 자기 양심을 발로하기도 했다.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했다. 죽음이 가져다줄 통절한 아픔과 슬픔을 가상으로 체험함으로써 죽음의 보편성을 배우고, 고독 속에서 홀로 겪게 될 죽음의 순간에 느낄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죽음의 절박함을 알았기에 삶속에서 진정한 희열을 맛보고자 했다.
선인들은 자신의 학문과 활동이 이 세상에 무언가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염원하였기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죽음을 의식하고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를 혁신할 기획을 세웠다. 우리 선인들도 영원한 것의 표상에 도달하려 애쓰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들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빛을 찾아내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 슬픔 같은 것이 저며오는 때도 있었지만, 끝내 음울함 속에서 죽어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선인들이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쓴 묘표, 묘지와 만시 속에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죽음이 그 사람을 이야기해준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연구로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과 김열규 님의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가 저명하다. 필립 아리에스는 익명의 사람들의 집합적 역사를 다루는 방법론에 따라, 저술가나 성직자들의 비균질적 자료를 분석해서 죽음에 관한 집합적 감성이 표출되어 있는 방식에 주목했다. 김열규 님은 우리의 민속과 고전문학의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한국인의 ‘죽음론’을 개괄하고 죽음의 문화적·신화적 형상에 주목했다.
이 책은 이러한 선행 업적들에 주목하면서, 익명의 사람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이 일회적 삶을 살면서 그 삶에서 보편의 문제를 제기했던 개인사에 주목하고, 묘비를 세우고 지석을 묻을 수 있었던 지식인 계층의 죽음론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개인의 특수성과 계층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50여 남짓의 선인들이 스스로 남긴 묘표와 묘지, 그리고 만시에는 한국인이 죽음에 대해 지녀왔던 보편 관념의 한 국면이 드러나 있으며, 그것은 그대로 오늘날 우리 자신이 스스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때에 참조준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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