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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여자 | 알파카를 놓아줘 | 호텔 M │ 오늘 아침, 미소만큼의 사랑을 받았다면 2 재 | 미국의 달 | 로키산맥 | 눈과 10센트 시카고 | 프리지어 스토리 3 NY·MAN 1 | NY·MAN 2 | NY·MAN 3 │ NY·MAN 4 | NY·MAN 5 | NY·MAN 6 NY·MAN 7 | NY·MAN 8 | NY·MAN 9 4 낯선 자의 전화 | 쌍안경 | 리틀 펑키 │ 물가에서 5 미키마우스의 수수께끼 | 문워크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맥도널드 6 멕시코의 파파 | 니로가 없는 거리 │신흥주택단지 미국의 성성聖性 - 후기 옮긴이의 글 |
Shinya Fujiwara,ふじわら しんや,藤原 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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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황천의 개』의 전설적 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대표적 여행에세이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현대문명에 대한 고찰이다.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과 사건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상표가 찍혀 있을 뿐, 실상은 오늘날의 한국이며,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 옮긴이의 글에서 로스엔젤레스, 솔트레이크, 시에라네바다, 로키산맥, 재의 사막, 시카고, 뉴욕, 플로리다……. 약 200일, 전 국토 2만 마일, 광대한 대륙의 표층을 훑어낸 아메리카 자동차 여행기! 현재 일본에서 수십 년간 ‘특급 작가’로 대접받고 있는 사진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기 위해’ 카메라 한 대만 들고 무작정 인도로 떠난 여행가,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표현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후지와라 신야의 책이 다시금 청어람미디어에서 출간되었다. 신간『아메리카기행』은 전작『동양기행』(전2권)과『황천의 개』에 이어, 동양에서의 여행을 마친 그가 홀연히 떠난 아메리카로의 200일에 걸친 ‘서양기행’의 기록이다. 중동과 아시아 근동을 여행했던 사진가가 바라본 1980년대의 미국은 차라리 황량하고 특이하고 고독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고독한 군중’, 그것이 바로 후지와라 신야가 바라본 ‘아메리카의 초상’이다. 그는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보통의 미국인처럼 모터홈(장거리용 캠핑카)에 몸을 싣고, 서부에서 동부를 가로지르며 그 황량함과 외로움, 인간존재의 여러 단상,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 구조물 사이를 봤다. 그리고 그것을 찍고 기록했다. 미국, 서양이 바라던 것의 정점이자 메시아였던 땅 그 시절, ‘미국’은 자유와 권리가 실현되는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 맥도널드,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의 특징은 이중성이다. 환호는 실망으로 바뀌고, 장점은 단점이 되고, 성공은 실패로 끝이 난다. 지금은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맥도널드지만 잘 나가던 시절에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활약했었다. 간편하게 즐기는 동시에 영양학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맥도널드의 두 얼굴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맛과 영양, 가격, 편리성을 두루 갖춘 맥도널드는 공산권을 압도하는 자유주의의 힘이었으며, 인류의 정신구조를 개편할 메시아였다. 1980년대의 맥도널드는 인류의 생활을 다스리는 권력이었으며, 식량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문명의 정점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젊은 청년들은 거리에서 맥도널드를 먹었고, 유행에 민감한 아가씨들은 코카콜라를 마시며 쇼핑을 즐겼다. 아이들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따라했고, 아버지들은 월스트리트의 엄청난 성공에 경외심을 가졌다. 바로 그런 시절에 후지와라 신야는 미국을 여행했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정점에 달했던 시절,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와 로마와 몽고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임을 누구도 의심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후지와라 신야는 200일간 미국 전역을 일주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 뉴욕, 플로리다, 플로리다에서 다시 남부를 횡단해 로스앤젤레스까지 무려 2만 마일을 달린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태양에서 흑점을 찾아내듯 아메리카 대륙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본위를 찾아내려는 탐험이다. 여기에 나타난 인간들의 생활은 단조롭고 외롭다. 그리고 그들은 소통하지 않는다. 이런 인간들이 사는 공간, 즉 신흥주택단지는 마치 유령도시와 흡사하다.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역사도, 공동체도, 의미의 망도 없이 하나의 집을 배정받아 관리하는 수인처럼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그의 사진 또한 외롭고 단조롭다. 여기에 인간의 온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라, 도시와 구조물이 있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현대국가, 현대도시의 초상이다. 현대의 유랑자이며 시대의 관찰자인 후지와라 신야가 황량한 길 위에서 담아낸 미국의 현재 그리고 고적한 풍경 사진가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가치관, 정의, 삶의 편린들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했고, 그 여행을 통해 세계의 내일을 확인했다. 20년 전 후지와라 신야가 미국에서 확인한 세계의 내일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다. 그의 예감처럼 미국 주도하에 완성된 오늘날의 사회, 경제, 문화는 코카콜라의 거품처럼 힘없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마이클 잭슨의 죽음처럼 부질없었으며,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금세 질려버렸다. 그리고 뉴욕의 뒷골목처럼 허황된 공허만을 남겼다. 인류의 모든 재화와 문명과 이성이 총집결한 1980년대의 미국에서 저자는 2000년대의 우리들이 겪게 될 인간정신의 고립과 황폐화를 미리 체험했던 것이다. 그 단상에는 우연히 마주친 흑백인종차별의 모습, 우주비행사에 대한 이야기(그는 이 부분에서 실로 흥미롭게 문화에 따른 종교관의 차이, 우주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길거리 생활자들, 자살, 외로운 노인들의 모습 등 미국에서 만난 인간군상을 하나하나 슬라이드 필름처럼 비춰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아메리카의 풍경은 그 대부분이 현대의 풍경이다. 광대한 대지는 있지만, 아무것도 없다. 역사도 없다. …… 무섭게 깨끗한 신흥주택가의 풍경. 대로 맞은편에서 빛나는 대형 주유소의 황색전등. 도시에 숨은 사람들의 군상. 미국의 거리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고독. …… 나는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위에서 읽히듯, 이 책『아메리카기행』은 여행기라기보다는 현대문명에 대한 고찰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과 사건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상표가 찍혀 있을 뿐, 실상은 오늘날의 한국이며,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문명과 기술의 진보 등은 미국이라는 고향을 자랑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남자를 사랑해주는 것 외에는 어떤 생활도 없는 알파카는 고원의 초식동물답게 성질이 온순했지만 유난히 걱정을 잘 한다는 결점이 있었다. 하필 그날 밤 마가 꼈는지 악몽을 꾸었다. 남자가 탄 자동차가 집에 오는 도중 갑자기 공중제비를 돌며 도로 옆으로 튕겨나간 것이다. 순간 알파카는 남자의 죽음을 예감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11번 도로를 달리던 남자가 까닭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한 명의 남자가 죽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이렇게 무표정한 남자라면 이 거리 어디에나 있다. 아니, 오히려 무표정이야말로 이 거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전형이다. 거리와 거리의 사람들 모두 과묵하고 무표정하다. 시내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자동차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스치는 무기물적인 소리만 들린다. 사람의 육성은 들리지 않는다. 거리의 과묵함을 따라하는 것인지 보행자들도 말수가 적다. 실컷 떠들다가도 감정표출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스스로를 억제한다. 타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이란 오락기기보다는 정신요양기기에 가깝지 않을까. 정신과 전문의 한두 명쯤은 알고 지내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풍속이다. 각 가정, 각 개인의 방에 비치된 텔레비전은 감정의 정화를 돕는 안테나 달린 정신의료기기일 확률이 높다. 현실에서 소원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타입의 프로그램과 감정을 주고받고, 이를 통해 정화된다. 전당포에서 유질流質된 물건을 파는 판매점에서 낡은 목공도구를 구입한 목수 밥은 점포 출입문을 열고 나오다가 마주친 낯선 타인에게 센스 있는 농담을 건네 5초쯤 그를 웃겼다가도 사막의 바람이 불어대는 거리에 한 발 내딛는 순간 방금 전의 유쾌함은 사라지고 누군가와 쓸쓸한 대화를 주고받은 기분만 남는다. 서로의 어깨에 의지하고, 도시 외곽에 장벽을 둘러치고, 때로는 리노나 라스베이거스를 본뜬 광란의 전광판으로 거리와 집을 장식해도 사라지지 않았던 저 광물세계, 즉 ‘죽음과 비슷한 형질’의 정밀하고도 강인한 침투성. 그럴수록 깊어지는 생물의 근원적인 고독감, 혹은 이해불능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알루미늄 자동차에 홀로 몸을 싣고 그 땅을 지나가는 타국인의 배후에 스며들지 않을 리 없었다.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개척자들이 부를 좇아 미 대륙을 횡단하던 중 그들은 불모의 잿빛 바다와 맞닥뜨렸다. 그리고 이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대의 망상이 필요했다. ‘알라딘 환상’이다.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는 램프의 거인이다. 미국의 초기 개척자들은 수많은 상품과 식료품이 가득 쌓인 신기루를 광대한 재의 저편에서 본 것은 아니었을까. 가난한 미국인들이 이 재의 바다를 건너 미친 듯이 서쪽(파라다이스)으로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그 신기루를 손에 넣게 될 것이라는 어린애다운 희망과 확신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인이 꿈꾼 알라딘 환상은 1950년대가 되자 터무니없는 경제력의 발전에 의해 거의 현실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재의 바다 저편에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난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슈퍼마켓 ‘자이언트 주식회사’를 보게 된다. 이것은 3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법의 램프다. 그 속에는 캠벨 수프, 리츠 크래커, 타이거 콘플레이크, 펩시콜라 같은 상품들이 무한정 쌓여 있다. 오늘날의 미국인에게 이 거대한 마켓은 당초무늬로 채색된 아라비아 사막의 모스크다. 그들은 오직 이곳에서만 안도감을 느낀다. 우주비행사가 이란의 사랸처럼 생긴 달 표면에 사뿐히 날아오른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지켜본다. 성조기가 화면에 등장하고 달에 꽂힌다. 내 귀에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감탄하는 목소리와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에 겨워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상의 절규와 현실의 외침이 겹쳐진다. 사막의 무리 중 누군가가 외친 것이다. 그 절규에서 언뜻 “아메리카!”라는 단어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말투가 기쁨의 표현이 아닌 분노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분노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호응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그날 그곳에서 뭐라고 외쳤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아메리카는 악마다.” 1969년 8월, 인류의 극적인 순간에 도취된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 중 동양의 한 점에 불과한 작은 땅덩어리에서 그들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반응으로 분노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인슈타인의 타임머신을 타고. 달에서 내가 본 것은 나의 미래다. 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달에서. 만약 지구의 수명이 다하고 재의 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이라면 영혼이라도 구제받는다. 하지만 달의 모습은 인류가 지구를 불태워버리고 파괴해버린 후의 고요한 죽음, 그 재의 바다에 대한 예언을 들려주기 위해 저 광대한 천체를 회색으로 물들인 것처럼 보였다. 밤하늘에 달이 떠오를 때마다 의심한다. 매일 밤, 내 머리 위에 빛나는 저것. 저것은 달이라는 행성이 아니다, 라고. ……저것은 차갑게 굳어져버린 지구, 이 땅의 미래가 환영처럼 우주공간에서 비춰지고 있는 것뿐이다, 라고. 소년들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말없이 걸음을 재촉하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백인들의 싸늘한 눈총을 받으며 흑인소년들은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밤거리를 지나간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은 팔과 손에 어떤 암호가 숨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잊지 마.”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을 때 멀리서 소년들을 바라보는 통행인 중에 몇 명의 젊은 일본인 남녀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으로 보인다. 두 손 가득 쇼핑백을 안고, 우린 지금 뉴욕의 길거리 문화를 체험하고 있어, 라는 만족스런 웃음이 머핀처럼 생긴 얼굴에 가득했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너흰 그런 인간밖에 안 되는 거야, 이 바보들아!” 얼굴 표정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소년 중 한 명이 나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이 하얀 해변에 유색인종은 그들 외에는 나밖에 없다. 온통 새하얀 세계에서 흑인과 황인의 만남은 어떻게 생각하면 근친의 정 같은 미묘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고립되어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자신들과 약간은 비슷하게 생긴 동료를 발견했다. 차 안에서 리듬을 맞추던 소년이 무방비 상태로 격의 없는 미소를 보낸다. 뉴욕 인근의 미국치고는 보수적인 도시다.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다. 남편이 출근한 후 한가로움을 주체 못하는 부인들을 위해 도시 곳곳에서 문화모임, 애완견 품평회, 작은 종교강연회 등이 개최되며, 부인들은 경쟁하듯 비싼 옷을 차려입고 참석해 선생이나 강사의 입에서 조크가 나올 때마다 지적이면서도 고상한 웃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나라나 중산층이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이 모이면 비슷한 생활형태가 형성되는 법이다. 현대적인 시스템에 따라 일상이 되풀이되는 미국의 신도시는 여행자에게 의미가 없다. 그러나 모터홈 여행자는 특징이 없는 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는 필요에 쫓기게 될 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