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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es 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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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규칙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서 오류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어떠한 심각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토론이 아무리 격렬해진다 하더라도. 다만 나는 내친 김에 몇 가지 좀더 세심한 요령들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혹시 이 요령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혼란을 느낄 이유는 없다. 대부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 때로는 이 방법이, 때로는 저 방법이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논쟁에 더 오래, 더 자주 얽혀 들어가면 갈수록 여러분은 순간 순간 어떤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지 확고한 감각을 터득하게 된다. --- pp.18-19, 「서문」 중에서
된다.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의 적수가 여성의 낙태권을 주장한다면, (마치 그가 이와 동시에) 영아 살해 그리고 소아성애를 주장하는 것처럼 만든다. 그러면 상대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도덕적 괴물이라는 인상을 반박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킬 여지는 사라지는 것이다. --- pp.22~23쪽, 「서문」 중에서 여러분이 파티에 가거나 벗들과 함께 있을 때 전혀 무익한 토론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생각해보라. 이제 이 책 덕분에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 책을 펼치고 그때그때의 견해에 따라 필요한 페이지 수만 알려주면 된다. (…)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배우자를 찾는 광고도 훨씬 간단하게 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키와 눈 색깔 외에 여러분의 견해와 일치히는 이 책의 페이지만 적으면 된다. 그러면 미래의 배우자는 여러분이 비열한 우파인지 아니면 우수한 좌파에 속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p.30, 「서문」 중에서 문화적 입장들 [식사에 대하여: 육식 vs 채식] 이런 쾌락을 포기하도록 우리를 설득하는 논리는 무엇보다 도덕적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네 발 달린 친구들을 도살하여 먹어치우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이는 사실상 식인과 마찬가지라는 논리. 우리는 이에 대해, 당근도 어쩌면 감정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가볍게 응수하면 된다. 꽃상추 샐러드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렇다고 해서 당근을 거두어 잔인하게 강판에 가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 p.38, 「육식 만세」 중에서 어느 위대한 독일 사상가가 말한 것처럼 바로 이런 순간에 야만이 시작된다. 도살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예감하며 비참하게 울부짖는 양과 소와 돼지들을 두고 누군가가“그저 동물일 뿐인걸.”이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능력 중 하나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연민이다. 그러한 연민이 동물들에게는 닿지 않는다니, 기괴한 일이다. --- p.41, 「엄격한 채식주의를 위하여」 중에서 [음료에 대하여: 커피 vs 홍차] 우유를 곁들인 커피는 다채롭고 마법적인 가능성들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카푸치노를 두고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문화유산에 기여한 최대의 업적이라고, 베르디의 오페라와 동등하고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보다 우월한 업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카푸치노뿐만이 아니다! 커피를 우유와 섞는, 혹은 우유를 커피와 섞는 이 음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 pp.60쪽, 「커피」 독일 오스트프리슬란트 지방의 사탕을 넣은 차는 정말 맛있다. 그 거칠고 모난 사탕을 뜨거운 차 속에서 부술 때(오스트프리슬란트에서는 차를 젓는 것이 세련되지 않은 행동이다) 들리는 소리는 가슴속 깊이 기쁨을 준다. 이런 차에는 반드시 크림을 곁들여야 한다. 뭉쳐진 하얀 크림이 검은 색 차 안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모습은 요가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명상하는 기분을 자아내는 것이다. 커피? 그게 뭐지? --- p.63, 「홍차」 중에서 경제적 고려들 [세금에 대하여: 조세포탈 vs 성실한 납세] 최소한 소련은 솔직했다. 그 나라는 신민들이 느슨해지면 강제노동수용소에 가두었다. 그러나 시민국가는 아주 당연하게 우리의 재산 중 일부를 몰수할 권리를 가져갔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혹독한 벌금을 감수하거나(즉 더 많은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감옥에 처넣어진다. 달리 말해, 세금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적나라한 폭력을 동원한 으름장이다. 착실한 납세자라면 한번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일년 중 국세청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달이 얼마나 되는지, 몇 달째부터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를. 이것이야말로 강제노동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124, 「세금은 포탈해야지」 중에서 국가는 우리로부터 빼내가는 세금을 우리 자신이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법적 기반 자체에 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은 차원 높은 이기주쟀다. 경제 순환의 참여자인 우리 모두는 법치국가가 존재함으로써 결정적인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능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벌이는 평화로운 상호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 p.127, 「세금은 내야지」 중에서 [돈을 불리는 수단에 대하여: 예금 vs 주식] 우리에게 통장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대신 주식을 사라고 꼬드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통장이 훨씬 낫다. 통장으로는 언제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자가 높지는않지만 경제계의 날씨에 상관없이 그 이자는 신뢰할 수 있다. 비가 올 수도 눈이 올 수도 있고, 태풍이 닥쳐서 주식시장 전체를 휩쓸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악천후 후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듯이 예금 이자는 그렇게 굳건히 지급되는 것이다. --- p.134, 「예금 만세」 중에서 그는 예금통장을 뒤적거리면서 돈이 어떻게 천천히 불어나는지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왜? 돈이 더이상 천천히 불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급격히 늘어난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조회하는 사람은 이를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다. 갑자기 신문에서 주가동향을 파고드는 재미를 알게 된다. 느긋하게 등을 뒤로 기댄 채 자기 돈이 혼자서 일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동안 지긋지긋할 만큼 돈을 벌어왔으니 이제 그 돈이 나를 위해 노력을 좀 해도 되지 않겠는가? --- p.135, 「주식 만세」 중에서 정치적 토론들 [원자력에 대하여: 반대 vs 찬성] 첫째로‘평화적 사용’과 군사적 활용을 분리한다는 건 인위적일 뿐이다. 이는 이란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둘러싼 분쟁이 잘 보여준다.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봉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원심분리기는 원자폭탄을 위한 농축 우라늄 생산에도 이용된다. 그 외에도 어떤 원자로들을 가동하면 부수적으로 플루토늄이 생겨나는데, 플루토늄은 단 몇 그램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오염시킨다. --- p.153, 「원자력? 사양하겠어」 중에서 오로지 우라늄 연료봉의 도움으로 물을 데울 뿐인데, 그 물은 결코 방사능 물질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신체와 생명에 대한 그 어떤 위험도 없이 그 안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터빈을 돌릴 증기를 얻어낸다. 그게 전부다. 원자력 발전소 근처의 방사능 오염 정도는 알프스 산을 오르는 사람이 노출되는 자연적인 방사능 수치보다도 낮다. 현대적인 핵발전소의 사고 위험은 주도면밀한 안전 기술 덕분에, 거의 0이라고 할 만큼 최소화되었다. --- p.155, 「원자력? 기꺼이」 중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하여: 인간이 문제야 vs 자연적 현상이야] 믿기지 않지만, 온실 효과를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신경도 쓸 필요 없는 얼간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선동의 대가로 산업계로부터 보수를 받는다. 그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후 참사를 부정하는 자들을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자들처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봐야 한다. 그들 모두를 엄격한 징역형에 처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 p.192쪽, 「인간이 온실효과를 야기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 중에서 인간이 (오직 인간만이) 지난 수십 년 간의 기후 변동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논리는 기후의 역사가 제공한다. 세계의 기후는 전혀 일정하지 않고, 언제나 대대적인 변동을 겪어왔다. 1만 년 전에는 하마들이 라인 강에서 목욕을 했다. 중세에는 (최근의 연구 성과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는 바대로, 이제까지 늘 주장되어온 것처럼 유럽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전역에 이른바 최적 기후가 존재했다. 당시에는 스코틀랜드도 포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했다. --- p.194, 「인간이 온실효과를 야기했다는 말은 엉터리인 것으로 증명되었어」 중에서 종교 문제들 [안락사에 대하여: 찬성 vs 반대] “어떤 인간에게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없다.”이는 자유주의의 모토이다. 모든 사람은 어디에 살지, 어떤 일을 할지, 누구와 함께 살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그 누구도 특정한 곳에 머물기를 강요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 땅을 떠나려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나라를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그에 상응하는 범죄를 구동독에서는‘공화국 도주’라고 불렀다). 자유주의가 지지하는 기본적 자유들 중에는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자진해서 죽음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결단도 포함된다. 허나 이는 일견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 p.213, 「적극적 안락사는 자비로운 일」 중에서 이러한 맥락에서 불치병 환자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대개의 경우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오늘날에는 이러한 고통을 진통요법을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 특히 자기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다른 사람들이 더이상 자신을 원치 않는다고 느낀다. 안락사 옹호자들이 하필이면 출산율은 낮아지고 노인이 증가하는 바로 이 역사적인 시점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덧붙이자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는 대부분의 경우 환자의 희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환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친애하는 가족들의 희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 pp.216-217, 「안락사는 범죄」 중에서 [컴퓨터 운영체제에 대하여: 윈도우즈 vs 매킨토시] 애플 추종자들은 일종의 종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사제로서 경배하며, 애플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들을 흡사 새로운 계시처럼 받아들인다. 다른 모든 종파의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애플 광신도들 역시 극도의 지각 박약과 유머 결핍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즉 그들은 그 종교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의구심조차 용인하지 않는다. --- p.236, 「윈도우즈가 좋아」 중에서 다른 회사가 생산하는 그 고철들은 시장에 내던져지는 순간에 벌써 낙후된다. 그러나 새로운 매킨토시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 속에 등장한 제품처럼 보인다. 애플 사의 데스크탑 컴퓨터나 노트북 컴퓨터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편리한 아이폰도 마찬가지이다. 이 제품으로는 전화하고 이메일 보내고 사진 찍고 인터넷 서핑까지 할 수 있다. 어쩌면 커피도 끓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 p.238, 「매킨토시를 좋아해」 중에서 성적 쾌락들 [섹스의 의미에 대하여: 낭만적인 것 vs 스포츠일 뿐] 그러니까 좋은 섹스는 침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침의 미소로, 낮 동안 머리칼을 쓰다듬거나 일초 더 어깨에 머무는 손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유머러스하게 눈썹을 찡긋 쳐드는 행동으로, 상대에게 키스를 보내면서, 사무실로 보낸 감미로운 이메일로, 상대가 넣어둔 초콜릿 하나를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하고 놀라면서 시작한다. --- p.254, 「좀더 낭만적인 섹스가 좋아」 중에서 기본적으로 이 모든 것은 운전면허 시험 정도로만 낭만적이다. 거기에는 이론적인 부분이 있다. 급커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어디에 정지 표지판이 있고 어디에 우회전 표지판들이 있는지를 외웠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적인 부분이다. 열쇠를 돌려 점화장치를 가동시킬 줄 알아야 하고, 변속 레버를 바꿀 줄 알아야 하고, (가장 고난도 기술로) 후진 주차를 할 줄 알아야 한다. --- p.255, 「섹스는 스포츠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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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고 기발한 논쟁 필승 가이드북!
한네스 슈타인, 토론의 최강자가 되는 노하우를 공개하다. 지난 6월,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호흡기 없이 100여 일을 견뎌 10월 현재까지 자가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일년 여에 걸친 재판과 항소, 법정 바깥의 무수한 설전에도 불구하고 존엄사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존엄한’ 혹은 ‘안락한’ 죽음일까? 자결권 역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논리와, ‘안락사 논의’는 결국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지불되는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는 데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의견은 아직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리고 10월, 극장판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되었다.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생명체들의 이야기, 「북극의 눈물」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조용한 환호 속에, 바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자초했다는 뼈아픈 반성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따라붙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구는 주기적으로 기후변화를 겪어왔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구적 항온장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중심적 오만함의 극치라고 반박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굳이 성향이 다른 신문 사설과 인터넷 토론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댓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정 사안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명확해 보이는 사안에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갖춘 반대 논리들은 움트고, 평화롭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 우리를 짜증나는 설전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끝나지 않는 말싸움 앞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을 도리 없다. “아, 저것들 확 쓸어버릴 순 없나?” 이 책만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옳다! 자, 이제는 더이상 고민하지 말자. 아이러니와 패러디로 무장하고 여러 해 동안 허위에 가득 찬 지식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데 열중해온 한네스 슈타인이 세계 최초의 ‘논쟁 가이드’로 돌아왔으니까. 지성의 무용함을 주장하면서 역설적으로 참된 지성을 선동했던 첫 번째 책 《생각 없이 살기》와 일상에서 마주치는‘사이비 지성’에 대해 조롱의 칼날을 들이댄 《일상고통 걷어차기》에 이어, 이번에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은 여러 해 동안 지속돼온 저자의 지식인 비판 시리즈 완결편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책 속에서 토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규칙뿐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 종교, 섹스 등의 41개 주제에 대해 정반대 견해로 논박하는 글들을 펼쳐낸다. 육식이냐 채식이냐, 주식이냐 예금이냐, 비틀스냐 롤링스톤스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원자력, 사형제도, 낙태, 안락사 찬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는 삶을 구성하는 소소한 문제들과 인터넷 공론장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들을 톡 쏘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정복해나간다. 전작에서도 이미 보여주었지만,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 신랄한 풍자와 유머는 독자들에게 통찰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저자는 이 책이 어떠한 대화나 토론에서도 상대를 일격에 물리칠 수 있게 해주고 멋진 애인까지 구해주는 궁극의 논쟁 가이드라고 뻥뻥 큰소리친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이러니의 본질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말과 속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논쟁에서 100퍼센트 승리하는 방법 책을 펼치자마자, 상대를 수사학적으로 제압하는 현란한 전술들이 등장한다. 청중을 휘어잡았던 고대 연사들의 수사술에서부터 온갖 치사한 트릭들까지. 한네스 슈타인에 따르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황금률은 세 가지다. 첫째 다툴 사람을 세심하게 선정하고(미래의 장인이나 직장 상사를 적으로 골랐다면 당신은 논쟁이 뭔지도 모르는 초짜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고른다. 세 번째 요령이 핵심인데,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물쩡거리다 본의 아니게 골리앗이 되어버린다면, 그 전투는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다. 그러니 자신이 늘 억압받는 소수파임을 내세우자. “나는 할아버지 때까지 앨러배마 들판에서 면화 노동을 한 유대교도 쿠르드인으로서…….”라며 종족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훌륭한 작전이다. 하지만 이런 규칙들을 지켰는데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다면? 걱정하지 말라. 한네스 슈타인은 이를 보완해줄 몇 가지 ‘세련된’ 술책을 숨겨두고 있으니. 예를 들어 대화 상대를 무고하는 방법. 상대가 입도 뻥긋하지 않은 주장을 그가 내세운 것처럼 뒤집어몾우자. 그 족쇄에서 벗어나느라 상대가 진땀 빼는 사이, 당신은 유유히 결정타를 날리면 된다. 권위자의 말을 빌려오는 것도 괜찮다. 사람들은 종종 (실은 엄청 자주) 인용과 실제 증거를 착각한다. 생각나는 게 없다면 다음과 같은 틀을 이용해 아무거나 하나 지어내자. “이미 괴테도 인스턴트 수프가 맛있다고 했지요.” (거기에 “다들 아시다시피”라고 덧붙이면 금상첨화!) 그래도 안 되면 논점에서 이탈해 엉뚱한 얘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도 있다. 90퍼센트 이상 승패가 결정된 싸움에서조차 이런 술책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역전극을 연출해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토론은 필요 없어 한네스 슈타인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치사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명절 날 TV를 보며 큰아버지와 벌이던 설전(주로 훈계로 끝나지만), 심야 토론 프로그램, 연인과의 반복되는 다툼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던가? 저자는 “전혀 무익한 토론”과 “헛된 노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제 누구도 불필요한 토론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는 종의 주요 관심사”에 해당하는 논쟁들을 그가 이미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야들야들한 어린 송아지 고기를 못 먹게 하려는 도덕주의자들에겐 당근이나 꽃상추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응수하면 되고, 채식 식단이 무미건조하다는 상투적인 불평 앞에는 중동 지역 음식인 ‘후머스’나 인도 음식인 ‘달’을 들이밀면 된다. 예금 통장을 버리고 주식을 사라고 꼬드기는 자들에겐 예금 이자의 굳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세계적 경제 흐름에 뒤처져 예금 통장만 들여다보며 히죽대는 바보들에겐 펀드 수익률을 보여주자. 체르노빌의 재앙을 까맣게 잊어버린 “구제불능”들에겐 “악마의 물건” 플루토늄의 위험성과 해결되지 않은 핵폐기물 문제를, 대안도 없이 이산화탄소 감축만 외치는 고루한 환경주의자들에겐 원자력 발전소의 놀라운 안전성에 대해 일러주면 될 일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비본질적인 문제들, 취향의 영역에도 날카로운 칼날을 겨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바그너. 그의 오페라가 “청자의 감성뿐 아니라 지성에도 엄청난 호소력을” 미친다는 상찬 뒤에는, 그가 이뤄놓은 예술가적 업적이라곤 자신의 작품들을 “깔끔하고 교묘하게” 반유대주의의 도구로 이용한 것뿐이라는 맹비난이 이어진다. 카푸치노를 두고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문화유산에 기여한 최대의 업적”이라며 경탄하는 커피 애호가들에게 홍차는 쓴 맛밖에 나지 않는 갈색 물에 불과하고, 홍차를 즐기는 “더 영민하고 용기 있고 탁월한 사람”들에게 커피는 시시해빠진 음료일 뿐이다. “종종 신경증적 성향까지 보이는 고양이 애호가에 비해 개 주인들은 강건하고 균형잡혀 있다”는 주장을 개 예찬론자들이 내놓으면, 고양이 애호가 측에선 “개 주인은 언제나 독재자의 성향을” 지녔으며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라고 반박한다. 독자 여러분은 이 남자가 패러디와 아이러니를 수족처럼 부릴 줄 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무언가를 상찬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냉소의 지뢰는 여지없이 펑펑 터져나오니까. 세계를 이끌 강대국으로 중국이 적당한 이유는 군사적 강경책을 사용해야 할 순간에 “도덕적 규정들, 가령 민간인을 최대한 보호하라는 고귀한 원칙 따위”로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느물대고,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의 억울함을 고발하는 척하며 모두에게 노골적인 조롱을 보낸다. 이쯤 되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세상의 모든 허위를 비웃고 할퀴고 꼬집고 비틀어온 이 남자가 ‘궁극의’ 논쟁 가이드를 쓴 이유는 대체 뭘까? 상대주의 시대의 생존법 몇 해 전 이야기다. 「슈피겔」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거치며 언론인으로 잔뼈가 굵은 한네스 슈타인의 눈에 신문 사설 한 편이 들어왔다. 헤센 주의 선거 결과를 다룬 그 사설은 사회민주당이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 정당도 겸허하게 반성할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이 글은 한마디로 사설의 “멋진 표본”이라고 칭찬할 만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은 오류가 하나 있었다. 문제의 그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가까스로 이긴 것이 아니라, “대패”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미리 준비한 두 편의 사설 중 선거 결과와 어긋난 사설이 인쇄된 것이다. 언론인으로 지내며 양비론의 효용과 폐해를 지긋지긋하리만치 실감나게 체험했던 한네스 슈타인에게, 퍼뜩 이 책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독자들에게, 사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썼다고 고백한다. 그 역시 지독한 독선을 ?어버리지 못하고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자기 입장만 방어했던 철없는 지식인이었기에.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와 나름의 정당성, 아집을 잠시 뒤로 하고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여본 사람이라면 안다. 모든 국면에는 ‘여기’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만 동등한 무게를 가진 또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네스 슈타인 역시 좀더 공부하고 세월에 담금질당하는 동안, 사물의 다른 면을 볼 때 그것이 더 흥미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자들은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을 토론의 최강자가 되기 위한 대화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도, 저자 자신이 그랬듯 독선을 치유하고 상대주의적 관용을 체득하게 해주는 철학 에세이로 읽을 수도 있다. 한네스 슈타인이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매콤한 위트와 거침없는 패러디에 낄낄거리든, 뜨거운 반성과 성찰의 호수를 떠다니든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겐 이제 만만찮은 과제 하나가 던져진 셈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견해를 경청하고 수긍하는 ‘상대주의적 관용’이라는 과제. 조금만 더 겸허한 마음으로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한네스 슈타인이 이 책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진짜 ‘꿍꿍이속’이 무엇인지, 말 많은 우리 세상에서 진정한 승자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은 선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