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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꽃에 드리워진 그림자
1. 연못, 또 하나의 자궁 2. 동전 두 닢, 그 영원한 빛 3. 슬픈 인연의 고리 4. 천 강에 비치는 달 5. 사람의 껍질을 쓴 쥐 한 마리 6. 겨자씨 속의 수미산 7. 한 개의 화살로 두 마리의 붕새를 8. 차의 맛, 우주적인 순리의 향기 9. 또 하나의 초의 10. 추사 김정희의 중대한 실수, 그를 위한 대리전 11. 영원한 우정 12. 영원으로의 회귀 작가의 말 초의 스님 행장 참고 자료 |
HAN,SEUNG-WON,韓勝源, 호 : 해산海山
한승원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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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선사에 대하여
초의 선사(1786-1866)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이자 다도를 정립한 사람이다.
성은 장씨(張氏)이며, 자는 중부(中孚), 법명은 의순(意恂)으로, 초의는 호이다. 16세에 출가하여 불학 이외에도 유학, 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고,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자하 신위 등과 폭 넓게 교류를 가져 시부(詩賦)를 익히기도 하고,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지어 차 생활의 멋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불교 사상 또한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으로,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좌선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멋을 찾고 불법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둔사의 동쪽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을 홀로 정진하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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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차문화의 기반을 닦고,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자하 신위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소치 허련 같은 예술가들의 삶 속에 차 정신과 선 사상을 슴베이게 한 큰 뿌리로서의 선승이었던 초의 스님의 일대기가 《초의》라는 장편 소설로 작가 한승원의 손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해남 대둔사(대흥사) 일지암과 강진의 다산초당 사이를 수없이 왔다갔다하고, 다산 시문집과 추사의 문집, 자하 신위의 글 등 초의 스님과 교유했던 지식인들의 문집 속에서 초의 스님의 행적을 좇았다. 우리 시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진정한 장인 작가 한승원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의 스님의 유년 시절과 출가 직후 행자와 사미로서 지낸 행적 등 초의 스님의 전생애는 물론, 초의 스님과 지식인·예술가들과의 교유를 통해 그 시대의 치열했던 정신사까지 복원해냈다.
<초의 스님을 둘러싼 조선 후기의 치열했던 정신사> 조선은 표면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폈지만, 실제로는 유학자가 문집을 낼 때는 스님에게서 발문을 얻어 싣고, 스님들이 시집을 낼 때는 유학자들의 발문을 싣는 등 불교와 유학은 친밀하였다. 즉, ‘반듯하게 지은 집처럼 규모를 앞세운’ 유학과 ‘벗어남으로 인해 자유자재한’ 불교는 은연중에 서로 보완 관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초의는 당시 ‘호남 칠고붕’으로 추앙 받은 뛰어난 선승이었다. 선지식은 물론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한 삼절인데다 범패 탱화 단청 바라춤에 이르기까지 팔방미인이라고 일컬을 만큼 다재다능했다. 당대에 이름을 떨치던 지식인들은 초의 스님과 교유하여 얽매임으로부터 놓여난 정신적인 삶을 증명받고 싶어했다. 그렇게 교유하게 된 이들이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정약용의 아들들인) 정학연과 정학유, 해거도인 홍현주, 자하 신위, 신광호 등이다. 정약용과 초의와의 2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다산은 나이 상으로 초의의 아버지 뻘에 해당)은 초의 스님이 25세 되던 해에 시작되었다. 극도로 불안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다산은 초의에게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초의는 다산을 ‘정신적인 아버지’로 극진하게 모시며 차와 선, 시와 그림에 대해 교학상장(敎學相長) 하였다. 이후로 정학연, 정학유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김명희, 추사 김정희, 홍현주 등과 교유하게 된다. 특히 추사와의 우정은 추사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차와 서신으로 끈끈하게 이어졌다. 시대의 두 천재였던 추사와 초의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사상과 선에 대해 논쟁했지만, 이후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에는 그곳까지 직접 찾아갈 정도로 그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나중에 초의는 추사를 대신해 백파의 《선문수경》을 반박하는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을 발굴해 경학과 선을 가르치고 이후 추사에게 소개한 것도 다름 아닌 초의 스님이었다. 초의 스님의 이름을 널리 알린 《동다송》 또한 해거도인 홍현주의 청으로 집필된 책이다. 이렇듯 이들의 만남은 조선 후기 문화 각 분야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시대 격동하는 정신사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차의 중시조 초의 스님> 매년 봄 작가가 사는 장흥 바닷가 토굴 주위는 배릿한 차향으로 가득 찬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작가는 손수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따고 덖어서 차를 즐겨왔다. 이렇게 차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 따로 배워서가 아니라 초의 스님의 《다신전》과 《동다송》을 공부한 덕분이다. 작가가 차 공부에 있어서 스승인 초의 스님에게 관심을 갖고, 그분의 일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초의 스님에 관해서 작가는 이미 1998년 선승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님의 맨발》(문학동네 刊)에서 다룬 바 있다). 초의 스님은 ‘차 잘 마시기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초의 스님은 운흥사 행자 시절 다감 스님에게 차 기르는 법, 따고 덖는 법 등을 전수받음으로 차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의 세속 나이 43세 때 지리산 칠불암에 온 은사(벽봉 스님인 듯하다)의 부름에 따라, 청나라 모문환이 엮은 만보전서 중 <다경요채>에서 ‘차 제대로 마시는 법’을 초록해 《다신전》을 저술했다. 그 뒤 52세 때 해거도인 홍현주의 부탁을 받고 불후의 고전인 <동다송>을 펴냈다. 차를 제대로 잘 마심은 삶을 제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초의는 생각했다. 다선일체茶禪一體,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삼매茶禪三昧가 그것이다. 《동다송》은 차 전설과 차의 효능, 생산지에 따른 차 이름과 품질, 차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평, 차 끓이는 법, 차 마시는 구체적인 방법 따위를 노래했는데, 각 송마다 옛사람들의 여러 문헌과 사구를 인용하고 세세히 주석을 달아 고증하였다. 초의 스님은 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은 물론 차를 손수 따고 만들었으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노력하였다. 명성이 알려지자 대둔사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이라는 조그만 암자를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에 전념하며 정진하였다. <선禪과 유학, 학문과 예술,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대자유인의 일대기> 작가는 입적을 얼마 앞둔 현재와 어린 시절부터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거를 왕복하며 초의 스님의 일생을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린 시절 초의 스님은 집 근처에 있던 연못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한 스님에 의해 구출되었는데(소설 속에서는 운흥사의 벽봉 민성으로 되어 있다), 그 스님은 초의의 조부와 모친에게 그를 출가시킬 것을 권유하지만,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에야 초의는 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연못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연못 속에는 하늘과 구름이 들어와 있고, 늙은 적송과 산과 대숲 같은 연못 밖의 세상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도 들어 있다. 연못 속과 바깥의 세상은 이렇듯 같은 듯 다른데, 그 연못에 빠졌다 살아난 이후 초의를 둘러싼 세상은 달라졌다. 어제의 그는 죽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발에 밟히는 그림자와 그 자신이 바뀐 양 어제의 그림자가 오늘의 자기가 되고, 어제의 자기는 오늘의 그림자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를 왕복하는 《초의》의 서술 방식은 연못의 바깥과 안의 시간과 공간이 교직하는 것과 연관되어 그 의미와 효과가 더욱 배가된다. 또 한 가지, ‘먼 훗날 그 돈 받을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오’라는 한 아낙의 말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모티프다. 역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운흥사로 가려는 초립동 초의를 나룻배에 태워준 어느 아낙이 남긴 말, 그것은 초의 스님의 일생일대의 화두가 된다. 초의 스님이 율사나 강백에 머무르지 않고, 속세의 유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계층의 이들과 교유를 한 것은 천 개의 눈과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처럼 중생들을 유현한 깨달음의 세계로 좀더 쉽게 이끌기 위함이었다. 아낙에게 받았던 동전 두 닢을 세속 사람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것, 그것이 바로 초의 스님의 삶이었다. 한편 작가는 초의를 연모하여 마침내 출가한 비구니 스님 니지 현순을 등장시켜 초의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소설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오랜 동안의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탄탄한 구성과 유려한 문체로 완성된 《초의》는 문학성과 역사성을 겸비한 ‘역사인물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는 의미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