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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과학사가 이종찬의 유럽·일본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탐방기
이종찬
해나무 200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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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유럽, 식물이 문명의 기초가 되다
자연의 감각은 교양으로 승화된다
파리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에덴동산에서 유럽 문명의 감각을 발견하다
식물원은 감각의 보고寶庫이다
자연사박물관에서 광물은 인간이 된다
자연사, 예술, 상업은 삼위일체이다
미술은 감각의 박물학이다
프러시아의 힘은 과학과 기술이었다
세기말 비엔나의 풍경
지도는 영토에 앞선다
열대의 식물이 유럽의 문명을 만들다

2부 일본, 박물학이 근대로 나아가다
생물적 본능도 성리학의 규율이 되다
불교적 감각이 성리학의 덫에 갇히다
유럽은 이과형 지식인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미디어는 감각의 확장이다
바다의 감각에 빠지다
‘오랑캐’가 네덜란드를 오랑캐라고 부르다
여행은 감각의 번역이다
감각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깨끗함이 사회적 질서를 만들다
튤립이 무역 상품이 되다
몸의 감각이 제국의 의학이 되다
일본과 유럽, 감각을 소통하다
유럽의 감각을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읽다

나가며 - 여행을 통해 ‘열대학’을 추구한다

주註

저자 소개 1

LEE JONG CHAN,李宗燦,이별빛달빛

인간은 우주적 존재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깊은 역사가 만들어낸 남성적 이름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면서, 코스모스(Kosmos) 젠더를 선언한다. 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깨달음을 하게 되었다. 21세기부터 열대학(tropical studies)을 정립하면서, 《난학의 세계사》,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훔볼트 세계사》를 세상에 내보였다. 이를 위해 콩고와 아마존 열대우림, 칼리만탄, 우간다,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브라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에서 탐사 활동을 했다. 또
인간은 우주적 존재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깊은 역사가 만들어낸 남성적 이름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면서, 코스모스(Kosmos) 젠더를 선언한다. 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깨달음을 하게 되었다.

21세기부터 열대학(tropical studies)을 정립하면서, 《난학의 세계사》,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훔볼트 세계사》를 세상에 내보였다. 이를 위해 콩고와 아마존 열대우림, 칼리만탄, 우간다, 쿠바, 멕시코, 에콰도르, 브라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에서 탐사 활동을 했다. 또한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호주 등의 주요 도시에 있는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탐방, 조사했다.

서울대,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 하버드-옌칭연구소, 니담-케임브리지연구소, 웰컴연구소 등에서 공부와 연구를 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열대학연구소와 의과대학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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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63쪽 | 436g | 148*210*20mm
ISBN13
9788956053998

만든이 코멘트

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2009-12-18
시선을 압도하는 공룡의 뼈대, 화려한 날개를 지닌 다양한 나비들, 수많은 종류의 광물, 신비를 간직한 듯한 꽃과 식물들.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생각하면 곧잘 떠올리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 책을 접하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들, 왜 서구에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이 생겼을까, 왜 우리나라엔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자연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식물학, 자연사, 박물학이 서구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 학문분야가 발달하게 된 연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대부분의 과학사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 세기의 천재들과 그들의 생각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린네, 뷔퐁, 알렉산더 훔볼트, 라이엘 등 박물학에 주목하고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제게 이 책은 자연사, 박물학에 대한 관심, 뱅크스, 헤켈, 퀴비에, 메리 애닝, 알렉산더 훔볼트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습니다. 현대의 자연과학이 모험, 풍토병, 해적, 폭풍우 등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탐험에 나섰던 식물학자, 동물학자, 박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진 것이었구나!)
출간을 앞둔 어느 날 교정을 보면서 “유럽, 식물이 문명으로 태어나다”라는 문구를 보고 다시금 생각에 잠겼습니다. 식물학을 단순히 생물종을 명명하고 분류하는 학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식물’이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식물이? 왜? 서양에선 왜 식물을 한 곳에 모았을까? 식물은 꽃과 나무, 풀로 나뉘겠지만, 인간 중심으로 접근하면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없는 것, 약이 되는 것, 약도 안 되는 것으로 나뉘고, 더 나아가 돈이 되는 것, 돈이 안 되는 것으로 구분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들..
이제는 식물학, 박물학이 분화되어 전문적인 현대과학이 되어 이제 박물학자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연사와 박물학을 재조명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책 속으로

① 식물이 문명의 기초가 되다
“창세기의 핵심어는 에덴동산이다. 그러면 낙원인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 중세 유럽에서는 낙원이 지구에 실제로 존재할 것이며, 그것은 ‘오리엔트’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더욱이 흑사병으로 고통을 겪던 중세사회에서 약용 식물들이 치료에 유용하게 쓰이자,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은 식물들을 한곳에 모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식물원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식물원이 읽어버린 에덴동산을 재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에 식물원이 곳곳에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 pp.47-48

② 왜 한국에는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없을까
“왜 한국에는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없을까. (…) 문제는 매우 근본적이다. 이 질문은 조선은 왜 바다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다. (…) 바다로 나가 이국의 땅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낯선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과 동물들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를 포함하여 바다로 일찍 나갔던 나라들은 이국에서 돌아올 때 자신의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들을 갖고 돌아왔다. 그중에는 엄청나게 큰 코끼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처럼 한 번도 이와 같은 해양 학습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해양 탐험을 즐기지 못했던 사회에서는 이국적인 식물, 동물, 광물을 수집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릴 수 없다. 탐험가들이 해외의 자연사를 탐험가 자신의 나라에 소장하려는 욕망은 자연사박물관의 탄생으로 나타났다.” --- pp.73-75

④ 자연사, 예술, 상업은 삼위일체이다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굳건히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기술과학과 예술이 발달할 수 없다. 국내의 상업과 해외 무역이 형편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 중국에 가서 유럽의 기술과 과학을 배워왔던 조선 실학자들의 문제의식이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당대 화가들의 그것과 결합되기 위해서는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공간의 생성이 필요조건이었는데 조선사회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p.86

④ 왜 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에는 ‘손’과 ‘다리’가 없을까
“몸과 인간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갖게 되면, 해부도에 ‘팔’과 ‘다리’를 빠뜨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허준으로 상징되는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 다시 말해서 ‘노동하는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임진왜란에서 일본과 맞서 싸울 군사력이 일반 백성과 노비(노예)들의 ‘팔’과 ‘다리’가 만들어내는 생산력에 좌우된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사농공상’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팔’과 ‘다리’는 양반들 사이에서 ‘머리’에 비해 매우 하찮은 신체 부위로 인식되었다.” --- p.98

⑤ 왜 조선은 건축을 하지 않았을까
“조선 후기는 무엇보다도 지독하게 가난했다. 아니 찌들도록 궁핍했다. 한국사는, 진보나 보수에 관계없이, 이 사실을 감추고 있다. 영조와 정조의 ‘위대한’ 통치와 조선 실학으로 치장된 역사 앞에서 대규모의 빈곤과 잦은 민란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불안감은 감추어져 왔다. (…) 나라가 가난하여 자원과 인력이 애초부터 없다면 건축하고 싶은 욕망은 아예 꿈틀거리지 않는다. 건축을 디자인하려는 지성은 물질적 토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건축에 대한 생각은 싹조차 피어나지 못한다.” --- p.165

⑥ 콜레주 드 프랑스는 왜 클로드 베르나르를 기억할까
“(콜레주 드 프랑스 입구에는 클로드 베르나르의 동상이 서 있다.) 베르나르의 『실험의학연구방법론』이 발간되었을 때, 프랑스 지성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지식인이 없을 정도였다. 베르나르가 제시했던 ‘내부 환경’ 개념에 영향을 받은 콩트는 이를 사회에 적용하여 ‘외부 환경’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베르나르는 파스퇴르와 함께 프랑스에서 ‘이과’형 지식인들이 어떻게 존경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사례에 속한다.” --- p.175

⑦ 조선통신사는 왜 데지마를 주목하지 않았을까
“열 두 차례나 에도를 다녀왔건만, 조선통신사의 기록에서 일본 근대 문명의 탄생 공간인 데지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도쿠가와 일본이 데지마에서 ‘난학’을 통해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배웠음을 고려할 때,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에서 데지마를 비켜 오사카로 여행길을 선택함으로써 서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232

⑧ 일본, 위생으로 동아시아를 통치하다
“일본은 전쟁에서 가장 큰 적은 적군이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던 세계 최초의 나라이다. (…) 청나라와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 대한 주권적 권력에만 집착했던 데 반해, 일본은 위생을 통해 조선에 대한 규율적 권력을 추구했다. 몸에 대한 위생적 통제는 사회적 질서로 이어지기에 정치와 군사를 통한 주권적 권력에 소요되는 비용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었다. 위생적 통치는 통치의 효과뿐만 아니라 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 p.241

출판사 리뷰

“먼저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으로 가라”
“여행자는 모름지기 식물학자라야 한다”

“파리에서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 에펠탑, 샹젤리제와 개선문, 노틀담 성당만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여행은 과연 즐겁기만 할까? 파리식물원을 거닐지 못하고 자연사박물관 내에 전시된 인류의 기원을 알아보지 못하고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파스퇴르박물관도 둘러보지 못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파리 여행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파리의 역사는 식물원에서 시작하여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파리 사람으로 진행하는” 그런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과 과학아카데미 없이 파리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_본문 중에서

유럽·일본의 정수를 밝히는 과학사가의 도발적인 여행기!
루브르박물관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식물원으로 갈 것인가?『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는 독특하게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과학관을 여행지로 택한 과학사가의 유럽·일본 탐방기이다. 유럽·일본을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과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미술관 체험기, 건축 여행기와는 차별화된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식물원, 자연사박물관 등에 대한 단편적인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일본에서 식물학, 자연사, 박물학, 의학, 더 나아가 자연과학이 발달하게 되는 이유를 사회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본다는 점이다. 의학사를 비롯해 동서양 문명을 꾸준히 탐구해온 저자는 과학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인문학자들이 간과해온 유럽·일본 문화의 특징과 지식 체계를 면밀히 보여준다.

저자는 유럽·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물학, 자연사가 유럽·일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술과 과학이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지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역할을 간파하지 못한 유럽·일본 여행은 피상적인 접근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유럽과 일본 역사에서의 과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기술과학?상업을 경시했던 조선시대의 한계와 문과형 지식 체계로 편향된 한국사회를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학사가의 눈으로 보면 유럽·일본이 다르게 보인다
-왜 한국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을까?
-몽펠리에식물원에 왜 라블레가 있을까?
-알렉산더 훔볼트와 조선 실학자들의 차이는?
-일본은 왜, 어떻게 깨끗한 사회가 되었을까?

그러면, 과학사가에게는 어떤 유럽과 일본이 눈에 들어왔을까?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찾아간 저자에게 말을 건넨 과학자들은 뷔퐁, 린네, 베르나르, 알렉산더 훔볼트, 헤켈, 자캥, 마리엔 노스, 지볼트 등 한국에는 덜 알려진 식물학자, 박물학자, 생물학자, 동물학자 등이다. 저자는 왜 이들에 주목했을까?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선 왜 유럽에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이 발달했을까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 식물원 근처에 의과대학이 있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식물원은 약용식물원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식물학의 발달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이들 약용식물이 중요한 무역 상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부의 창출을 꾀했던 유럽 제국의 해양 탐험과 식민주의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동·식물, 광물 등 자연물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자연사박물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네덜란드 등 바다로 일찍 나갔던 나라들은 이국에서 자신들의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식물, 동물, 광물을 갖고 돌아왔으며, 이국의 자연사를 수집?소장하려는 탐험가들의 욕망은 자연사박물관의 탄생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유럽인들이 식물, 동물, 광물을 ‘자연의 경제’로 파악하고, 이들을 상업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이는 곧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지질학의 발달로 이어졌고, 오늘날처럼 자연과학이 발달한 유럽을 만들었다.

이에 저자는 식물학자, 동물학자, 지질학자 등 박물학자들의 위대함을 도시, 거리, 박물관에 새겨 넣은 유럽·일본의 문화를 주목하면서, 박물학, 미술, 건축, 역사 등을 종횡무진하며 여지껏 국내에 덜 알려진 유럽·일본의 진면목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프랑스혁명의 과학적 기원, 세잔의 ‘사과’ 속에 깃든 과학, 피카소와 과학, 괴테와 색의 과학, 낭만주의 풍경화와 과학, 열대식물의 중요성, 정약용의 한계,『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한계, 데지마의 중요성, 일본 제국의 의학 등 여타의 유럽·일본 여행기에서 읽을 수 없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과형 한국 지식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
저자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문제는 한국의 지식문화가 철저히 ‘문과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지식문화의 특징은 결국 서양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도록 하는 열쇠, 즉 ‘과학’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인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 서술은 과학의 가공할만한 영향력을 간파하지 못하거나 사소하게 취급했고, 그로 인해 서구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가령, 서양의 과학을 문과형 지식인들이 소개함에 자연과학의 발전이 갈릴레오, 뉴턴, 다윈 등 ‘천재’의 탄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그로 인해 천재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식물학?박물학적 토대는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을 언급할 때에도 계몽사상가들의 사상과 철학만이 중점적으로 다뤄졌을 뿐 뷔퐁의 박물학이나 의학이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유럽과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천재 또는 영웅들과 그들의 이념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물질주의(Materialism)’를 이해해야만 한다”라면서 “유럽인들과 일본인들은 동식물을 모으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더 나아가 그곳에서 실용적인 방법에 근거하여 부를 창출했다.”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유럽과 일본의 많은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다니면서, 한국 지식문화의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가려졌던 역사의 진실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한 것은 한국 지식문화의 편향성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저자는 ‘얼치기 애국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겨냥해, 다양한 예를 제시하면서 조선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데다, 급기야 일제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 연유는 기술?상업을 경시한 성리학의 틀에 조선 사대부들과 실학자들이 갇혀 그 지식체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굳건히 자리잡은 조선사회는 중화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해양 탐험 문화가 발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기술자, 중인에 대한 경시가 과학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으며, 상업에 대한 무시는 조선사회를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조선사회 전체가 가난했기 때문에 예술과 건축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았다.

이에 저자는 “나는 유럽과 일본의 자연과 풍토에 대한 감각을 조선의 그것과 끊임없이 비교하려고 했다. 이런 비교를 통해 나는 학교 교육이나 사회적 통념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조선사회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조선사회의 지적·문화적 풍요로움에 대한 재발견·재해석이 어느 면에서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지만, 지나친 미화는 성리학이라는 틀에 갇혀 폐쇄적이고 곤궁했던 조선사회의 역사적 진실을 감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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