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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노래 부르는 뇌가 탄생하다
2장 우애의 노래를 부르면 3장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 4장 위로의 노래를 부르면 5장 지식의 노래를 부르면 6장 종교의 노래를 부르면 7장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 주註 가사 저작권 감사의 말 옮기고 나서 뮤지션과 노래 찾아보기 찾아보기 |
Daniel J. Levi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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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늘 그래왔듯 음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뇌와 문화를, 진화와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음악이 인간의 삶에서 행해 온 역할과 음악과 인간의 공진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음악학자, 고고학자, 심리학자 모두 이 주제에 매달려 왔지만 지금껏 이 모든 분야의 지식을 한데 모아 음악이 우리 역사의 진행 과정에 미친 영향력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낸 사람은 없다. 이 책은 마치 가계도를 작성해 낸 것과 비슷하다. 우리 선조들의 삶?일로 분주한 낮과 잠들지 못하는 밤?에 모습을 부여해 준 음악적 주제들, 즉 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보는 작업이다.
---p.9 음악의 다양성을 생각했을 때 올바른 질문은 음악이 인간관계에서 행하는 기능들이 존재하는가 여부다. 그리고 음악의 이런 여러 기능은 독특한 지적?문화적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감정과 이성과 정신이 진화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음악적 뇌는 지난 5만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의 본성과 문화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음악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_ 14쪽 의도치 않게 창조성을 매력적이라 여기게 된 사람들은 음악가나 예술가를 짝으로 맞아들였을 터이고, 당시로서는 그들도 몰랐겠지만, 그들의 자손들이 여기서 생존의 이득을 얻었다. 초기 음악가들은 주위 사람들과 든든한 유대감을 맺을 수 있었다.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남들보다 훨씬 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노래에 중요한 생존 정보를 새겨 넣었는데, 이로써 추가적인 생존의 이득을 자식들에게 쉽게 물려줄 수 있었다. 결국 음악을 만들고 듣는 것이 좋게 느껴지는 까닭은 음악에 내재한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 아니다. 우연히도 음악 활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진 선조들의 후손이 이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물려받아 살아남은 것이다. ---p.27 나는 예술과 과학을 연속체의 양 끝이 원처럼 서로 맞물려 공통의 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 과학이 그저 사실과 관찰 결과를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감정과 보살핌이라는 정서적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수많은(어쩌면 무한한) 사실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남들에게 전한다. 이것은 감정에 따른 판단이다. 우리로 하여금 특별히 어떤 것에 마음을 쓰도록 동기가 작용한다. 정서와 동기부여는 동일한 신경화학적 동전의 양면이다. ---pp.202-203 이 책에서 나는 전 세계 다양한 음악들을 예에 포함시키고자 노력했다. 나의 중심 주제는 인간의 문명사를 형성해온 여섯 가지 종류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여섯 가지 노래들만 있다고 딱 잘라 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해내는 다양한 모습들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이다. 음악의 중요한 기능은 여섯 가지 범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음악 문화마다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pp.304-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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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이론’의 창시자 레비틴의 독창적인 주장 ‘음악 본능’
신경과학, 뇌과학, 그리고 진화심리에 관한 연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국내서점 분류에도 ‘뇌과학’ 영역이 생겼을 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2006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는『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가 진화심리 분야를 일반화시키는 데 공헌했다면,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언어 본능』 등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신경과학(뇌과학) 용어를 전파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신경과학자로서보다는 ‘1만 시간 이론’의 창시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대니얼 J. 레비틴은 전작 『뇌의 왈츠』에서 이미 ‘음악적 뇌’라는 독창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진정한 의미의 ‘통섭’을 글쓰기로 보여주다 전작 『뇌의 왈츠』가 감성과 미학의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인간의 예술적 능력을 뇌과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하게 들렸던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음악적 뇌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면, 『호모 무지쿠스』는 ‘언어 본능’에 정면 도전하며 ‘음악 본능’이라는 개념을 수많은 사례와 인용을 통해 구체화한다. 덧붙여, 어려운 신경과학 용어를 쓰지 않고 에세이처럼 재치 있고 감동적으로 풀어내는 능수능란한 솜씨는 기타리스트에서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한 프로듀서로, 늦깎이 학생으로 선회한 그의 경력을 충분히 짐작케 하며, 스팅, 조니 미첼 같은 팝음악의 수퍼스타에서 올리버 색스 같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와의 대화가 한 권의 책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레비틴만이 가능한 일이다. 어설픈 학제간 연구나 장르 넘나들기가 아닌, 진정한 학문의 통섭은 어떤 모습인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하는 수백 곡에 달하는 노래를 www.sixsongs.net에서 들어볼 수 있다. 음악적 뇌에서 인류의 문명이 탄생했다 레비틴은 우선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특징을 언어와 예술을 가능케 한 뇌 구조의 진화에서 찾는다. 대뇌피질에 위치한 전전두엽의 진화는 인간을 언어와 예술에 반응하고 능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음악과 시를 만들고 암송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것 자체가 가치가 있고 그것을 좋다고 느낀 선조들이 살아남아 후손을 낳고 이런 본능적인 선호를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음악적 인간인 까닭은 수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의 핵심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정성껏 돌보고 예쁘다고 여기면 그 아기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건강해질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인식한 선조들의 경험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되면서 우리에게 아기를 예뻐하는 본성이 생겨난 것과 같은 이치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듣고 싶은 음악을 다운받아 들을 수 있고, 수백 곡이 담겨 있는 아이팟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노래를 그 날의 기분에 맞게 흥얼거리며 걷거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유행가의 한 구절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떠올린 적이 있을 것이다. 또 특별한 날에는 친구들과 모여 그 날에 맞는 노래를 따로 의논하지 않아도 부를 수 있으며, 우울한 날에 자기만 특별히 찾아 듣는 음악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본성적으로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은 태초의 인간부터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뇌에 반복적으로 기입된 흔적의 결과다. 그렇다면 인간의 음악적 뇌는 어떤 방식으로 인류 문명의 흐름을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의지를 발현시켰을까? 『호모 무지쿠스』에서 레비틴은 선사시대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 종이 즐겨 불렀던 수많은 노래들을 분석하면서 문명의 사운드트랙, 즉 여섯 가지 노래의 주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곧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이다. 음악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브라질 아마존의 메크라노티 족은 노래를 부르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는다. 일종의 방어 전략인 셈인데, 다른 부족으로부터 공격 받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남자들은 새벽 4시 반부터 깨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 경우도 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과 19세기의 스코틀랜드인은 춤과 노래를 통해 적에게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동시에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일치된 행동과 노래에 의해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두 가지 예를 통해 노래가 적에 대한 경계나 위협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내부적 결속을 도모함으로써 동일 집단의 신뢰를 형성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이런 인류학적 관찰에 과학적 설명을 덧붙인다. 노래를 부르면 옥시토신이라는 신경화학물질이 분비되는데, 바로 이것이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음악이 예술의 형식이라기보다는 소통 수단에 가깝다고 한다. 즉 태초에 음악은 단순한 유희나 오락, 여흥 거리가 아니라 인간 종이 생존하는 데 언어보다도 더 본질적인 도구였다는 것이다. 음악은 인간의 근육을 움직이고 통제하거나 공통의 동작을 만드는 데에도 관여했다. 레비틴은 사회적 유대의 수단으로 불린 노동요에서 몰입으로 충만한 행복감과 정서적 유대감을 발견하는데,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 가까운 예로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전 국민이 따라 불렀던 ‘오, 필승 코리아’를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2장 우애의 노래를 부르면) 음악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뇌졸중, 기타 퇴행성 뇌 질환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양로원이나 재활원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도 음악이다. 배우자나 자식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들도 자신들이 젊었을 때 즐겨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발을 구르거나 심지어는 가사를 기억해내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실제로 레비틴은 파킨슨병으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틀어주자 춤추고 뜀박질까지 하는 광경을 관찰했으며, 구두끈을 제대로 매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음악을 틀어주었을 때 박자에 맞춰 끈을 맸던 사례를 제시한다. 노래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을 분비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리게 해준다. 그리고 개인에게 발휘되는 효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은 보다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고 협력적인 집단을 조직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3장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 한편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마들이 아기에게 공통적으로 불러주는 노래를 꼽으라면 곧바로 자장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느리고 지속적이며 규칙적인 자장가의 리듬은 엄마에게는 생각할 여유를, 아기에게는 호흡과 심장 박동의 안정, 맥박과 근육의 이완을 가져다준다. 자장가로부터 아기가 받는 위안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우울한 날 행복한 노래가 아니라 슬픈 노래를 듣는 것도 어딘가에 자신과 같이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있으며, 그러므로 슬픔에 빠진 사람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드는 노래는 우리가 이 큰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깨달음을 주면서 하나의 사연을 개개인의 문제보다 더 큰 보편성의 차원으로 승화시켜 준다. (4장 위로의 노래를 부르면) 생후 7개월된 아기는 모차르트의 선율을 ‘또렷이’ 기억한다 생후 7개월 된 아기도 한 번 들은 음악을 2주 동안 기억한다. 아기들이 모차르트의 특정한 가락을 자기가 듣지 않은 가락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 또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인류 역사의 초창기에는 먹어도 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기 위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어떻게’ 노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노래들은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방법, 생활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도 처음 글자나 숫자를 배우는 아이들은 운율에 맞춰 그것들을 차례로 외운다. ‘반짝반짝 작은 별’의 리듬에 맞춰 알파벳을 외우거나 구구단에 장단을 넣어 외우는 것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레비틴은 “문장을 기억하는 능력에 비해 노래가사를 기억하는 능력이 월등히 낫다. 각운, 리듬, 강세구조, 선율, 클리셰, 시적 장치는 서로 합쳐지면 그 효과가 몇 배로 나타난다. 거의 완벽하게 기억을 복원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리적 실체 없이 구비 전승되는 노래와 서사시가 책과 같은 문자 매체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수천 행으로 이루어진 노래와 서사시가 어떻게 원형 그대로 수천 년 동안 전승될 수 있었는가를 레비틴은 명쾌하게 설명한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이야기나 영움담, 중요한 사건, 경전처럼 오랫동안 간직되고 기억해야 할 주제들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들은 노래가 기억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5장 지식의 노래를 부르면) 한편 ‘종교의 노래’는 ‘우애의 노래’나 ‘지식의 노래’와 비슷한 맥락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특정한 믿음의 체계나 시공간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이들 두 노래와 구별된다. 종교 음악은 인간의 기억과 동작, 감정, 주위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개인에게 안전하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자신이 신과 직접 소통하는 행동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6장 종교의 노래를 부르면) 뇌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음악적 인간이 음악에 바치는 헌정 여섯 가지 노래 중 마지막은 ‘사랑의 노래’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최우선으로 삼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이타주의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의 작은 희생이 가족 안에서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에서처럼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사랑의 노래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사랑의 노래는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열망과 고매한 품성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자만과 욕망을 옆으로 제쳐놓고 더 큰 대의에 봉사하는 것을,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런 생각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사회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7장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 『호모 무지쿠스』에서 레비틴은 음악적 뇌가 창조해 낸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뇌과학과 신경과학, 음악학과 미학, 심지어는 언어학과 심리학까지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음악이 인간의 문명을 이끌었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인간의 문명을 어떻게 바꾸고 발전시켰는가에 주목함으로써 진화의 과정에서 그 동안 유심히 살펴보지 못했던 인간 본성의 새로운 측면을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이 책은 음악을 본질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치가 훀는지 미학적으로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인간이 음악에 바치는 헌정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