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고은주의 다른 상품
|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며 듣는 소리에 나는 다시 창문으로 다가갔다. 비는 이제 창문을 닫아야 할 만큼 거세지고 있었다. 준오는 지금 어디에서 이 비를 맞고 있을까. 이상하게 서먹해져버린 상태로 우리는 며칠째 연락도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준오가 먼저 나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준오에게도 나는 결코 간절하고 격렬한 대상이 아닐 테니까.
내가 준오를 계속 만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삶의 가벼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유진이 일깨운 나를 외면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 그것은 노래방을 찾아서 소리를 지를 것인지 바흐의 샤콘느를 들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명확하게 이질적인 선택의 문제였다. 그런데도 나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유진이 일깨운 나, 그것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나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게도 간절하고 격렬한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왜 없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것이 내 기질의 실체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진이 일깨운 나는 내가 동경하는 내 모습에 불과한 것인지도...... --- pp. 222∼223 |
|
감정의 과잉. 그것이 문제였다. 그가 내게 보여준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마음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그가 말하는 눈물에 대해서 고개만 끄덕이면 되었을 것을...... 어쩌자고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까지 낱낱이 말해버린 것이었는지.
"그런데 너는 흠집 많은 유리잔이었어. 게다가 여기저기 가시도 돋쳐있지. 나는 그 실체를 마주 대하기가 두려웠어. 투명하게 모든 것을 통과시켜버리지도 못하고, 매끈하게 나를 왜곡시켜주지도 못하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만을 비춰주는 거친 유리잔....." "하지만 그게 바로 당신의 진짜 모습인걸요." 완전히 지쳐버린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사소한 표현의 차이에서 생겨난 오해들을 눈물로 설명했고, 그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이별을 번복한 터였다. 거기서 더 이상 풀어낼 오해는 없었다. 이제는 그가 나를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여기든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해바라기꽃들 속에 취해 있어도 현실은 변하지 않지. 내가 달맞이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현실이고, 해바라기는 달맞이꽃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내 눈물은 그때서야 멈췄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오해가 아니라 지나친 이해였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그 눈물 끝에 맺혔다. 달맞이꽃의 어둡고 따뜻한 공감을 원하면서도 그 어두움을 늘 바라보아야 하는 힘겨움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오해를 핑계로 달맞이꽃을 외면하려 했던 사람. 소유할 수 없는 건 사랑할 수 없다던 그 여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만큼은 버릴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밀려들었다. 그 예감과 더불어 다시 솟아오르는 눈물을 나는 애써 억눌렀다. 이유 없이, 아무런 느낌 없이, 그저 말갛게 솟아오르는 눈물이었다. --- pp. 122∼123 |
|
소설은 이메일로 쓰여진 사소한 편지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편지를 미처 받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삼십 대의 소설가 신유진. ‘나’는 이 편지를 시작으로 친구 신유진이 남기고 간 자취를 집요하게 찾아간다.
사소한 편지를 보낸 사람은 김서인이라는 벤처캐피탈리스트. 잡지사 기자인 나는 인터뷰 형식으로 김서인에게 접근해 유진과의 관계에 대해 캐물어보지만 그는 딱 잘라 그녀를 모른다고 대답한다. 신유진의 이메일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게 된 나는 그녀의 웹하드에서 김서인이 보내온 스물여덟 통의 메일을 발견하고 유진을 향한 김서인의 사랑에 빠져 들어간다. 그러던 중 신유진이 홈페이지를 웹하드처럼 사용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곳의 운영자 아이디로 로그인하게 되면서 유진이 김서인을 만났을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써놓은 일기를 보게 된다. 김서인의 편지와 유진의 일기로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실체를 알아버린 나는 그들의 아찔한 사랑에 현기증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축축한 것, 눅눅한 것, 뜨거운 것, 끓어 넘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무엇에도 완전히 몰두하지 못하고,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실용적인 목적만을 추구했다. 그러한 나였기 때문에 그들의 진실한 사랑이 더욱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유진과 서인은 사랑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에 대한 태도를 고민했고 세상의 질서와 사랑이 빚어내는 극심한 갈등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자신이 녹아버릴 수도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버리는 거침없는 사랑 앞에서 나는 건조하게 살았던 삶을 반성한다. 그리고 그동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볍게 만나오던 남자 친구를 정리하기에 이른다. 그를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남자와 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자세를 바탕부터 바꾸어내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은 선택인 것이다. |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진부한 단어가 그 의문을 푸는 키워드로 여겨진 까닭 또한 나는 알 수 없다. 나를 휘청거리게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왜 그토록 거부할 수 없었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을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서 나의 시간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불명확한 것들에게 바쳐질 것이다.
|
|
소통과 단절, 나와 타자의 엇갈린 시선
작가 스스로 ‘연애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번 작품은 33세의 한 소설가 신유진의 돌연한 죽음으로 시작한다. 신유진의 대학 동창이자 잡지사 기자인 오민영은 그녀의 죽음을 특집기사로 쓰기로 한다. 그러던 중 오민영이 신유진과 전도유망한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사랑에 빨려들게 된다는 큰 틀 위에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간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의 사랑조차 자신의 사랑을 통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지닌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심한 오해와 오독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인터넷 메일로 주고받은 독특한 상호 교감과 죽은 소설가가 남긴 몇 편의 일기같이 단편적인 단서로부터 그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러브스토리를 상업성에 맞게 포장할 수밖에 없는, 상업주의가 극에 달한 이 사회가 이 소설에서는 비판적으로 그려져 있다. 지금내가 사라져버린다면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주춧돌 하나 제대로 세워놓지 못한 채 비루한 글만 잔뜩 만들어낸 나의 삶……. 오독을 먹고 자란 그 글들은 살아남는다 해도 결국엔 나에 대한 오해만 키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면……. 죽음이 아니라 죽음 후의 오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소설가. 2000년 성을 통한 여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장편 《여자의 계절》이 뜨거운 성담론을 불러왔고 그 작품을 끝으로 작가는 더 이상 성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김서인과 소설가 신유진의 순조롭지 못한 만남에서도 이러한 염려는 맞아떨어진다. 충분한 감성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매일매일 돈과 관련된 숫자를 만지며 살아가는 벤처캐피탈리스트에게 연애 감정은 단지 소모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랑이란 결국 상대의 한 부분을 발췌하고 과장해서 거두절미 몰두해버리는 것, 전후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보고 싶은 쪽만을 바라보는 것, 그 심각한 자기중심적 환각 상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렵고도 달콤한 한순간의 현기증에서 깨어났을 때 비로소 사랑의 실체와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24통의 편지와 12편의 일기로 완성되는 모자이크 그림> 《현기증》의 스토리 구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순한 인과가 아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유진이 남기고 간 일기와 그녀가 받은 편지를 통해 지나간 삶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플롯을 지니기 때문이다. 유진의 사랑은 조각난 퍼즐처럼, 여기저기 구멍 난 모자이크 그림처럼 미완성으로 남아 ‘나’에게 던져진다. ‘나’는 그녀의 자취를 좇아 구멍 난 모자이크 조각을 맞추어가며 마침내 하나의 완벽한 그림으로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구성은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화자가 점차 유진의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장치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그토록 건조한 삶을 지향하던 ‘나’가 유진의 사랑에 현기증을 느끼며 삶과 사랑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권태와 생활에 쉽사리 무너지는 연약한 사랑일지라도,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소모에 불과한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을 믿으며 그 안에 자신을 온전히 던져버릴 수 있는 유진. 그녀의 자취를 따라가는 즐거움 또한 이《현기증》이 주는 특유의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