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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인 어머니가 수평을 지향한다면, 불인 아버지는 수직을 지향한다. 한없이 낮아지려는 물과 한없이 높아지려는 불이 만나는 아슬아슬한 교차점, 그곳에 나 소금이 백야(白夜)처럼 놓여 있다. 꺼질 듯 꺼지지 않고……
---p.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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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깐 부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에, 어머니의 움직임은 더욱 느려져 있다. 나는 얼음 상태에 들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저토록 한없이 느린 움직임 속에 들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고통스럽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저토록 한없이, 속이 터지도록 느린 것은 그녀가 슬픔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위안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어머니의 움직임은 저처럼 느리다.
움직임을 통해, 내가 어머니의 감정을 읽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움직임만으로도 나는 얼마든지 어머니의 감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움직임에, 어머니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평온할 때 그녀의 움직임은 낮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잔잔히 안으로, 안으로 잦아든다. 즐겁고 기쁠 때 그녀의 움직임은 더없이 가볍고 활기차다. 분노에 휩싸여 있는 때는 출렁출렁 소리가 나도록 거세고 격렬하다. 어머니를 위로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한다. 물을 위로할 능력도 권한도, 나 소금에게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pp.9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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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각인되는 작가, 김숨의 2010년 신작 『물』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이 빛을 발한다! 김숨 특유의 건조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바라본 ‘물’의 이미지. 감정을 싣지 않은 건조한 묘사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환상과 리얼리즘의 결합, 그 정점에 『물』이 있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통해 참혹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온 작가 김숨. 그 연장선상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소설 『물』을 출간했다. 김숨 소설의 매력은 서사의 힘이나 인물의 역동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건조함, 차가움,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이 등단작 「느림에 대하여」부터 『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한다. 이런 그로테스크함과 문체로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김숨의 문체는 무뚝뚝하면서 거칠다. 『물』에서 이런 문체는 더욱 견고해졌다. 짧고 건조한 문체로, 또 시간과 공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환상과 리얼리즘의 경계를 넘다든다.작가의 환상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소설은 『백치들』 『철』을 거쳐 『물』에서 그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물 불 금 공기 소금 납! 그들의 불온한 집착과 욕망의 관계도 『물』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여섯. 물, 불, 금, 공기, 소금, 납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 방울’의 물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불온한 집착과 욕망으로 뒤얽힌 기이한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지만, 불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물 속에서 금은 찬란히 빛나지만, 금을 변형으로 이끄는 것은 불이다. 소금은 오롯한 결정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을 멀리하고, 불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은 치명적으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이런 점들은 전작 『철』에서, 소재는 강렬하고 직정적이나 인물 간의 유기성이 다소 약한 점이 아쉽다는 평가를 충분히 보완한다. 그러면서도 작가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작가는 언젠가 “광물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에 관심이 많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전작 『백치들』에서의 ‘모래’가 가진 이미지, 『철』에서의 ‘철’이 가진 이미지 등은 이번 작품의 ‘물’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가 언급한 ‘광물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그 자체로 물이고, 불이고, 금이고, 공기이고, 소금이고, 납이다. 물과 불이 전혀 다른 물질이듯,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분명한 특징과 성질을 지닌다. 물론 그 특징들은 그들에게 명명된 이름에서 기인한다. 여섯 인물 중 작가가 가장 중심에 배치한 인물은, 물로 상징되는 어머니이다. 구백 매에 이르는 이번 소설은 한 방울의 물로부터 시작해, 한 방울의 물로 끝난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