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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청년패스 강력추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푸른숲 2010.04.05.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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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작고 약한 존재들의
야하고 뜨거운 고백을 열망하며

1장 유리 같은 몸, 가시 같은 마음
보이지 않는 존재
나는 골형성부전증이다
달빛만 들어오던 사춘기
배움이 열어준 신세계, 그러나 비좁은 세계
풍경처럼 사는 사람들
무대 위, 내가 세상에 보이는 순간
내 몸과 내가 하나가 되기까지

2장 온몸을 밀어 세상 속으로
탈출을 꿈꾸다
바깥세상의 아찔한 높이
'특수'의 세계와 '일반'의 세계
슈퍼 장애인 되기
가장 달랐지만 가장 가까웠던 친구
그와 나의 '사이'

3장 새로운 몸의 기억 만들기
추락하는 것에는 바퀴가 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나는 치료되지 못했지만 치유되었다

4장 두 세계 사이에서
칸트를 읽는, 구걸하는 장애인
비정상 세계의 지옥같은 이야기
전시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
함께 비를 맞는 연대

5장 나는 '야한'장애인이고 싶다
직립보행의 섹시함에 대하여
내 다리르 봐줘
'야한' 장애인, '야한' 가난뱅이
'야한' 추남/추녀가 되자

6장 통속의 뇌, 주인공이 되다
휠체어 위의 맥베스
객석을 무대로 바꾸는
용기 있는 사람들
자유의 무게
무력한 이십대
그리고 88만 원짜리 장애인
내 몸이 증언하는 자유와 연대의 힘

에필로그
우리에겐 분노가 필요하다

부록
장애 문제 깊이 읽기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탄다.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으며,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연극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인정투쟁―예술가 편] 등에 출연했다. 한편에는 장애, 질병, 가난을 이유로 소외받는 동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좋은 직업, 학벌, 매력적인 외모로 세상의 ‘중심’에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탄다.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으며,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연극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인정투쟁―예술가 편] 등에 출연했다.

한편에는 장애, 질병, 가난을 이유로 소외받는 동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좋은 직업, 학벌, 매력적인 외모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동료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진동하듯 살면서, 또 사회학과 법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을 여러 매체에 글로 썼다. 지은 책으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인문의학』(공저) 『희망 대신 욕망』이 있다. [한겨레]와 [시사인], [비마이너] 등에 글을 쓴다. 2019 년 [시사IN]에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연재했다.

법률가로서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다. 2019년경부터는 주로 글을 쓰고 공연을 하는 삶을 산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사이보그가 되다》(공저) 등의 논픽션을 썼고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인정투쟁; 예술가 편〉 〈무용수-되기〉 등의 공연에 배우, 무용수로 출연했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 교양부문), 2021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6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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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70g | 135*215*20mm
ISBN13
9788971848333

책 속으로

나의 몸, 우리의 몸, 가난과 질병과 추함에 빠져들까 불안해하는 몸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가? 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모순된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를 극복했다면서 왜 나는 여전히 장애인인가.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인인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내가 세상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왜 안 되는가. ---p.7

나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내 피는 지금 이 순간도 찬란한 태양 아래서 세상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세상과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라고 부추긴다. 절대로 ‘싸가지 없이’ 굴지 못했던 미약한 존재들, 세상에서 영원히 찾아주지 않을까 봐 자신을 숨겨야 했던 존재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가 이제 감히 ‘섹시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는 쿨하기(cool)보다는 오히려 뜨거운(hot) 존재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획득한 자만이 ‘야한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야한 장애인이 되려는 자만이 그 권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p.9

재활원은 자원봉사자들에게 하나의 풍경일 뿐이었다. 내게는 그곳이 삶의 전부였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연애를 하고, 영화를 보고, 섹스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팍팍한 일상의 때를 잠시 벗겨내기 위한 ‘풍경’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외지인들에게서 그것을 느꼈다. 그네들은 친절하게 말을 걸고 내 생활을 도와주곤 하지만, 그때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기들은 그네들의 삶에 스며들지 않고 한순간 숭고한 영혼 정화의 방편이 되었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누구도 진실한 친구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p.48

재활 학교를 통해 나는 공부를 시작했고, 우정을 배웠으며, 무대 위에 섰고, 사랑을 경험했다. 그동안 주변의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누군가와는 첫 번째 키스를 했다. 어리둥절하게도 그 모든 일이 단 3년 동안 일어났다. 병원 아니면 작은 방 안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나의 삶이 어느 순간 고속버스를 타고 유럽 여행이라도 하듯 정신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두렵고 떨렸던, 그리고 부정하고 싶었던 이 공간에 나 자신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가족과 함께 투병 생활을 하던 ‘골형성부전증 환자’임을 잊고 휠체어에 앉은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내 병은 점차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했다.---p.67

나는 태어날 때부터 뼈가 부러졌다. 열다섯 살부터 휠체어를 타고 살았다.〔…〕그렇다. 나는 장애인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나의 자부심과 나의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애와 아무런 관련 없이 살 수 없을까. 그냥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장애인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능력, 직업, 학식, 유머, 경쾌함 같은 것을 갖출 수는 없을까.---pp. 118~119

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위험하고 심각한 상태를 벗어났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내 몸의 독특한 운영 방식을 구성했으며, 그 자체로 나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위험 상태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신과 신체를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몸 그 자체이고, 몸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기질, 재능, 성격, 감정의 일부가 결정된다. 나는 내 팔꿈치에 새겨진 검은색 굳은살로 내 과거를 기억한다. 휘어진 내 다리가 곧 내 삶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아닌 몸은, 더 이상 김원영이 아니다.---p.141

정상은 비정상 없이 성립될 수 없다. 장애인 없이는 ‘건강한 몸’이 자신을 확인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장애인이 이곳저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눈물을 훔친다. 따가운 시선과 동정심 가득한 눈물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둘은 사실상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가운데 두 세계는 점점 더 멀어진다. 한쪽에서 법전을 들고 서 있는 내 친구와 다른 쪽에서 돈을 구걸하는 장애인은 서로에게 아무런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렇게 차츰 하나의 세계를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pp.178~179

나는 두 가지로 분리된 자아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한쪽의 자아는 다른 쪽의 자아를 모욕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다른 쪽의 자아는 그 모욕을 견디지 못해 분노한다. 한쪽의 자아는 수용 시설이라는 꽉 막힌 세계에서 그 안팎의 세계 사이에 놓인 끈적거리는 선 때문에 때때로 울부짖는다. 그러나 다른 한쪽의 자아는 수용 시설의 삶에 모여드는 사회의 시선 덕분에 스스로를 특별한 인간인 양 생각한다. 꽉 막힌 세계와 그 위에 터를 잡고 펼쳐진 넓은 세계. 두 세계로 분열된 내 자아는 그렇게 서로를 부정하면서 공존하고 투쟁한다.---p.184


하지만 과감하게 예상 밖의 인물에게 주연을 맡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며, 그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창조한다. 휠체어 위의 맥베스, 두 명의 가난한 중학생과 대학생 하나를 동시에 세상의 주체로 만드는 장학재단, 그리고 눈의 깜박임을 기다려 긴 문장을 완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 승리가 아니라 상상력과 인내심, 과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런 연대의 손길은 막연한 동정이나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가능성, 또는 특별한 무대를 통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연출하고자 하는 자유정신의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내게 무대에 등장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일깨웠다. 탁월한 연출자와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 이외에 무대 자체를 개조해 객석을 아예 무대로 만들 수도 있다.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을 무대에서 객석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객석은 무대가 된다. 이제 무대는 단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pp.243~244

내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유’다.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존 질서를 마음껏 거스르는 존재이자, 수많은 이들이 열망한 자유가 모여 만들어낸 구체적인 증거다. 그들은 무대와 객석을 뒤바꾸고,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과감히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내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낼 수 있도록 상상력을 보태고, 적극적인 협력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것들이 내 삶을 구성했다.---p.245

잘난 척은 다 하면서도 결국은 내 안으로 도피하기만 했던 나에게도 누군가는 “사랑해, 사랑하는 게 더 멋있어”라고 말해주었고, “무대에 올라가, 그게 더 섹시해”라고 말했으며, “글을 써, 네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자유로워질 거야”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H는 “다리를 보이지 마, 그게 더 추해”라는 눈빛을 보내지 않고 오히려 (따스한 동정의 눈빛조차 아닌) 에로스의 감수성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장애인 치고는 멋있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멋지고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뜨겁기 위해 무대 위에 섰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장애인 치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장애인 치고는’ 멋진 말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멋질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pp.260~261

출판사 리뷰

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될 생각은 없다.
나는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책으로 출간되는 장애인 이야기는 대개 희망과 용기,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표방한다. 이 책의 저자 김원영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한 편의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내다가 재활학교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고, 나아가 비장애인도 가기 어렵다는 로스쿨에 진학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자신은 걸을 수 없는 다리, 매력적이기 어려운 외모, 가벼운 주머니를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걷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이십대 청년,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고 다른 모든 장애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장애인 김원영 개인의 삶을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객관화하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천사 같은’과 ‘병신 육갑하는’이라는 수식어 사이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해왔는지, 편견 가득한 시선 속에서 장애인들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신의 온몸과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온몸으로 쓴 사회과학 에세이’다.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 비판이나 고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모든 약자, 특히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이십대들이 정당하지 못한 것에 ‘증오’가 아니라 ‘분노’할 수 있기를, 그 뜨거움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모두가 익숙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편견을 깨는 의외의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약자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고자 한다. 저자가 그려 보이는 우리 사회는 분명 이기심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얼룩져 있지만 자유로운 창조와 연대의 가능성이 꿈틀대는 희망적인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건강함과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는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장애인의 이야기에서 편견과 싸워온 모든 약자들의 이야기, 나아가 가슴속에 뜨거운 욕망을 품고 자유를 일구어가는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의 이야기로 점차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스물아홉 청년 김원영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이유다.

소년은 어떻게 청년이 되는가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던 한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세상에 등장하는 과정을 담은 사회 비판적인 에세이지만, 그에 앞서 한 연약한 소년이 삶의 고비마다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한 사람의 단단한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기이다.

방 안에서 작은 창으로 학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소년은 열다섯 살에 ‘장애인 등록’을 하고, 이듬해 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재활 학교에 입학한다. “아빠, 여기 이상한 장애인들이 너무 많아”라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던 소년은 ‘다음 주’에 온다는 아빠를 기다리며 점차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재활 학교에서 그는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이상한 장애인들’ 사이에 “자신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가족과 함께 투병 생활을 하던 ‘골형성부전증 환자’임을 잊고 휠체어에 앉은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소년은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연극을” 하며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점차 인정해가지만, 곧 장애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려는 꿈을 꾸게 된다. 그 길에서 장애인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새로운 장애인’을 만나 용기를 얻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비로소 ‘특수’의 세계에서 ‘일반’의 세계로 진입한 소년은 그 아찔한 높이에 좌절하지만 곧 무엇이든 잘하고 어떤 모욕에도 쿨한 ‘슈퍼 장애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슈퍼 장애인’답게 고등학교 3년을 치열하게 보내고, 그의 눈에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던 서?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제 장애인의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그냥 ‘서울대학교 학생 김원영’이 되려고 한다.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 그는 자신의 자부심과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본격화되던 장애인 인권 운동의 흐름은 그에게 다시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선언하며 장애인의 학교생활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줄 것을 요구한다. 그 운동의 한복판에서 많은 독서와 토론을 거치며 그는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새롭게 배운다. 이전까지 그는 “삶을 극복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던 그는 결국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 경험을 통해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휘어진 다리가 곧 내 삶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아닌 몸은, 더 이상 김원영이 아니다.”

이렇게 기나긴 여정 끝에 ‘장애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울대 로스쿨이라는 ‘정상(正常)’ 세계의 ‘정상(頂上)’에 속한 그의 위치는 여전히 그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있다. 그에게는 “한쪽에 건강하고 열정적이며 좋은 직업과 매력적인 연인을 가진” 친구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 집을 지키는”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두 세계로 분열된 그의 자아는 지금 이 순간도 “서로를 부정하면서 공존하고 투쟁한다.”

아마도 이러한 분열과 혼란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 고민의 한가운데서 그는 여러 세계에 정체성을 걸치고 있는 존재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긍정하며,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과 초월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분노하고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소년은 이제 불안정한 정체성조차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청년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들어갈 집단에 애초부터 적합한 인물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부족했고, 적당하지 않았고, 그 집단과 조응할 수 없는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시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화해하고 상호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나는 기존의 질서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 질서가 내 몸, 내 정체성과 조응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과 외부 환경을 변화시켰다. 장애를 극복해본 적은 없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장애에 적응해나가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생활과 이곳에서 한 공부가 내 삶을 또 얼마만큼 확장할지를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한다. 세상은 또 얼마나,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 228~229쪽

‘희망’이란 말 뒤의 차가운 현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오토다케(《오체 불만족》의 저자) 등 불리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낸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판에 박힌 시선이 장애인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장애인들로 하여금 외부의 기대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게 해 그들을 점점 더 소외된 존재로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한 손에는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행인이 쥐어주고 간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서 있는 저자는 그 두 세계가 어지러이 뒤섞인 채 살아온 자기 몸의 역사를 돌아보며, 장애인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 장애인이 실제로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비장애인들은 대개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 열악한 교육 환경, 빈곤 등의 문제를 사회제도나 기부금, 자원봉사의 손길로 해결해주면 된다는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두루뭉술한 인식이 놓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구체적인 고통과 저항의 움직임을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을 오가며 세밀하게 또한 분석적으로 그려 보인다. 이 책의 모델이 되었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마지막 문장에서 프란츠 파농이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자기 몸의 기억을 좇아 지나온 삶의 밑바닥까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장애인들의 “지옥 같은”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가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살았던 것처럼, 절대 다수의 장애인들은 평생을 수용 시설이나 작은 방 안에서 지낸다. 최소한의 교육만 받고, 동료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 이외에는 어떤 의미 있는 인간관계도 맺지 못한 채,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무시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도움’을 주기 위한 개인이나 단체의 방문은 꼭 필요한 일이고 무료한 일상의 작은 이벤트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일회적 성격이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들은 “외지인들의 친절함이 자신을 다른 세계의 인간으로 전제했을 때만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욱더 멀어지는 두 세계의 간극만을 체험할 뿐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상처를 넘어 모욕을 경험한다. 그 도움의 손길이 장애인들에게 전시되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활 학교에 다니던 시절 자신에게 학비를 후원해주던 ‘저명인사들’ 옆에 어머니와 함께 앉아 말없이 전시되는 경험을 했고,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희귀병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남자를 침대에 눕힌 채 강당으로 데려와 예배 시간 내내 전시하기도 했다. 지하철역에서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는 〈즐거운 나의 집〉을 배경음악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민망함을 감수해야 하고, 혜택을 받는 대신 “꽃동네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 좀 하고 오세요. 그럼 내 삶에 대해 진짜 감사하게 된답니다”라며 자신을 영혼 정화의 방편으로 삼는 이들에게 무감각해져야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모욕은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되는 존재, 욕망 없는 존재, 깊은 사고나 격렬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공용으로 만들고, 첫 생리를 한 장애인 여성에게 “주제에 여자라고”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저자를 비롯해 그가 소개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세우고 다섯 시간 동안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중증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장애인 역시 인간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며, ‘자아’와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는 예민한 존재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세운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이동’이라는 일상적인 행위가 인권의 하나로 부상했듯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장애인들의 새로운 면모, 아니 그동안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면모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 담론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시각을 한층 확장해줄 것이다.

나는 이제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한때 슈퍼 장애인이 되어 희망을 전하려 했던 저자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가 이제 감히 ‘섹시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욕망을 숨겨왔던 장애인들은 물론, 나아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기를 요구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는 ‘쿨함’ 따위로 자신을 숨기지 말고, 가진 것 없고 능력도 부족하고 볼품없는 외모지만 누군가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과감하게 드러내자고 말한다.

나는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몸이 가진 욕망과 내 몸에 부여된 운명, 그 모든 것을 쿨하게 받아칠 줄 아는 유쾌한 인간 또는 고상한 척, 성숙한 척하는 인간이 아니라 좀 구차하고 미성숙하더라도 뛰고 싶다면 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남은 생을 뜨겁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 누군가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무성적인 존재로 인식당할 때 저 유명한 드라마 주인공 강마에의 대사처럼 “진짜 시련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겪은 척, 뛰어넘은 척, 쿨한 척”하는 대신 “내 몸을 봐라. 내 욕망을 봐라. 나의 짓밟히는 자존심을 봐라”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221쪽

저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자신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분노는 증오와는 다르다. “증오는 폭력만을 낳을 뿐 증오하는 주체의 상태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분노는 부정의에 대한 합당한 저항이고, 그 저항 속에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열정므 발견하는 과정이다. 분노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확장시킨다.” 이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는 이십대와 거기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 같은 서울대학교 학생,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평균 임금이 88만 원보다는 44만 원에 가까운 장애인이라는 중첩된 정체성 사이에서 여전히 진동하듯 살고 있는 그가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발언이다.

《88만 원 세대》 이후 쏟아져 나온 무수한 이십대 담론이 정작 이십대의 입에서 이십대의 경험과 감수성, 현실에 기반하여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의 전 생애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 발언은 새로운 종류의, 본격적인 이십대 담론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은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나가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장애인’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집단에게서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십대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을 찾았다는 데서도 이 책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자유, 서로 다른 세계의 ‘사이’를 연결하는 힘
저자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내던 자신이 중고차를 끌고 서울대 캠퍼스를 누비는 법학도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도움과 기회와 우연을 ‘자유’라는 말로 표현한다. 잠깐 왔다 가는 자원봉사자들 따위에겐 마음을 열지 않겠다던 재활 학교의 자존심 강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혜원 누나와 선정 누나,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포기하려던 그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었던 ‘새로운 장애인’ 찬오 형, 세상에 나오는 것조차 부정당하던 장애인을 연극 무대에 주인공으로 세워준 대학 친구들, 걷지도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다리를 에로틱한 감수성으로 바라봐준 여자 친구, 늘 도움을 받는 입장이기 쉬운 장애인에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한 장학재단…….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창의적인 사고로 감행한 이들의 남다른 선택이 바로 그가 말하는 ‘자유’다. 이렇게 통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무대를 연출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사이,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 생겨난 미지의 공간에서 그는 두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천명륜은 항상 내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도 언제나 내가 그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녀석과 나는 큰소리로 말다툼을 한 뒤에도 묵묵히 함께 움직였다. 그때 우리는 그가 나를 일방적으로 돕고, 나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싸우고 나서 곧장 그가 내 휠체어를 밀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나 역시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동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그 관계란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거나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를 넘어서, 서로 다른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항상 당연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떤 것들의 ‘사이’였다. 서로 완전히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상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공감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 107~108쪽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로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 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 222쪽

저자는 용기 있고 창의적인 개인들이 열망한 자유, 그 자유가 연결한 여러 이질적인 세계들의 사이, 그 가능성의 공간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몸이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자유이며, 자신이 경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그 많은 이들의 실천에 빚지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는 ‘사이’의 존재로서 스스로가 더 많은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내 삶은 이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변화했으며 내 자유가, 내 몸이, 내 사랑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기 위해 썼다. 실천의 주체가 되기에 나는 아직 경험쳀 일천하고 능력도 용기도 부족하다.

그러나 앞으로 내게 다시 무엇인가를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증언을 넘어 변론을 하고자 한다. 그 변론이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의 몸, 당신의 몸, 내 친구들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몸이 가진 자유가 될 것이다. 우리의 유약한 몸, 장애를 가진 몸, 추한 몸, 88만 원짜리 몸. 그 몸들이 처한 완전히 다른 여러 세계가 나의 존재와 나의 사랑을 통해서 자유의 가능성을 타고 새로운 삶을 생성하는 것. 그것이 내 궁극적인 꿈이며 삶이 될 것이다. -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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