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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을 말한다, 1934-1984
첫 번째 이야기, 열여덟 살 소년 임권택, 가출하다 두 번째 이야기, 스물여섯 살에 첫 번째 영화를 찍다 세 번째 이야기, 삼년 동안 '닥치는 대로' 열여덟 편을 찍다 네 번째 이야기, '다찌마와리' 영화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다 다섯 번째 이야기, 유신시대에 새마을영화를 빌어 '기어이'고향에 돌아가다 여섯 번째 이야기,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자네 아직도 영화 하고 있나?" 일곱 번째 이야기, 『족보』, 첫 번째 걸작 혹은 한국적 예절로의 입문 여덟 번째 이야기, 비로소 빨치산 아버지의 기억과 마주하다 아홉 번째 이야기, 80년 5월 '이후',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안고 만행을 떠나다 열 번째 이야기, 열이틀 만에 찍은 『안개마을』로 런던영화제에 가다 |
鄭聖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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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을 말한다. 그것은 한국 영화를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이며, 동시에 20세기를 지나온 한국인을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임권택은 20세기를 통과한 한국의 모든 조건을 조금도 피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꼼짝없이 그대로 통과하였다. 일제 강점하의 한국,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살육전, 50년 그해 여름 한국전쟁, 빨치산 투쟁을 한 부모님, 그리고 휴전, 그 이후의 무시무시한 연좌제의 그림자, 독재와 4 · 19의 봄, 그리고 다시 5 · 16 군사쿠데타, 지긋지긋한 군부 정권의 시작, 박정희의 끔찍한 시절, 71년 유신정권, 새마을 운동, 79년 박정희의 죽음과 짧은 80년의 봄, 그리고 또 그해 5월 광주, 학생운동과 수많은 죽음들, 87년 민주화 항쟁, 전두환과 노태우, 혹은 김영삼과 김대중, 우리들의 90년대,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 임권택은 그 속에서 스스로 예술가가 되었다. 내게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 임권택은 미국으로 도망가지 못했으며(백남준), 독일로 망명하지 못했다(윤이상). 그는 그 안에서 살았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무덤 같은 세월 속에서 희망도 없이 그저 죽기 위해서 살아간 시간"들을 감싸 안아야만 했다.
임권택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한반도 안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임권택 영화가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힘이다. 모든 질문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임권택을 이해하는 것,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갑자기 (서구로부터 가져온) 영화 미학의 대부분은 무기력해진다. 왜냐하면 임권택의 인물들의 태도와 정서, 그들의 상황, 그 안에서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씬, 그 씬은 만들어내는 쇼트들의 구성, 혹은 찍지 않은 쇼트, 그 사이를 건너가는 편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미'주어진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한국이다. 거기에는 조선 오백 년 유교 문화와, 일제 강점하의 삶의 그림자와, 여전히 잘려나간 분단 한국이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임권택은 영화에서 그 무게의 삶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자신이기도 한) 사람의 내면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임권택의 영화들은 20세기 한국의 사유로 이끄는 입문이다. 그 안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 pp.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