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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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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임권택을 말한다, 1934-1984

첫 번째 이야기,
열여덟 살 소년 임권택, 가출하다

두 번째 이야기,
스물여섯 살에 첫 번째 영화를 찍다

세 번째 이야기,
삼년 동안 '닥치는 대로' 열여덟 편을 찍다

네 번째 이야기,
'다찌마와리' 영화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다

다섯 번째 이야기,
유신시대에 새마을영화를 빌어 '기어이'고향에 돌아가다

여섯 번째 이야기,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자네 아직도 영화 하고 있나?"

일곱 번째 이야기,
『족보』, 첫 번째 걸작 혹은 한국적 예절로의 입문

여덟 번째 이야기,
비로소 빨치산 아버지의 기억과 마주하다

아홉 번째 이야기,
80년 5월 '이후',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안고 만행을 떠나다

열 번째 이야기,
열이틀 만에 찍은 『안개마을』로 런던영화제에 가다

저자 소개 1

鄭聖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서울에 대한 지리감각을 익혔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달 동안 낙타만 그렸다. 또 하나는 호금전의 〈용문객잔〉.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후 무협 영화와 소설에 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철의 〈심야의 결투〉를 본 후 급기야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영화에 대한 첫 번째 애정 고백. 중학생 때 이미 꼭 봐야 할 영화 500편 리스트를 작성했다. 고등학교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서울에 대한 지리감각을 익혔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달 동안 낙타만 그렸다. 또 하나는 호금전의 〈용문객잔〉.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후 무협 영화와 소설에 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철의 〈심야의 결투〉를 본 후 급기야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영화에 대한 첫 번째 애정 고백.

중학생 때 이미 꼭 봐야 할 영화 500편 리스트를 작성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금지된 장난〉을 보러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가 우연히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를 보고 쇼크를 받았다. 영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때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라는 아주 명징한 사실을 깨달았다. 서점 서가에 꽂힌 《타고르 전집》을 《고다르 전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고다르의 환영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영화란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영화를 보고, 글을 계속 쓰다가 대학에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고 학보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영화평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영화글을 쓰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 3학년 때 쓴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평론은 지금의 악명(?)을 고스란히 예고한다. 1989년에 창간한 《로드쇼》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에 태어나 ‘90년대 시네필 문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키노》를 이끌며 영화 비평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16년 동안 《말》의 최장수 필자였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하여 긴 호흡의 문어체 화법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영화연구I: 임권택》,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전2권)가 있고,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을 책임편집했다. 2009년 겨울, 서울 청계천을 걷고 또 걸으며 첫 번째 장편영화 〈카페 느와르〉를 찍었다. 2010년 영화 평론 시작한지 26년만에 첫번째 영화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필사의 탐독』을 동시에 세상에 내놓았다.

정성일의 다른 상품

저자 : 임권택 (林權澤)
영화감독. 1934년 음력 11월 2일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1962년 '두만강은 흐르는가'로 첫 번째 영화를 찍었다. 그 후 60년대에 많은 사극과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70년대에는 새마을영화와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족보'(1978)로 새롭게 재평가되기 시작했으며 '만다라'(1981)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후 '씨받이'(1986)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받았으며, 1989년 낭트삼대륙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1990년 '장군의 아들'을 통해 흥행감독으로 거듭났으며, 1993년 '서편제'가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에 '춘향뎐'이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었으며, 2002년 그의 아흔여덟 번째 영화 '취화선'으로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6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07쪽 | 1138g | 162*232*35mm
ISBN13
9788987057231

책 속으로

임권택을 말한다. 그것은 한국 영화를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이며, 동시에 20세기를 지나온 한국인을 말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임권택은 20세기를 통과한 한국의 모든 조건을 조금도 피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꼼짝없이 그대로 통과하였다. 일제 강점하의 한국,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살육전, 50년 그해 여름 한국전쟁, 빨치산 투쟁을 한 부모님, 그리고 휴전, 그 이후의 무시무시한 연좌제의 그림자, 독재와 4 · 19의 봄, 그리고 다시 5 · 16 군사쿠데타, 지긋지긋한 군부 정권의 시작, 박정희의 끔찍한 시절, 71년 유신정권, 새마을 운동, 79년 박정희의 죽음과 짧은 80년의 봄, 그리고 또 그해 5월 광주, 학생운동과 수많은 죽음들, 87년 민주화 항쟁, 전두환과 노태우, 혹은 김영삼과 김대중, 우리들의 90년대,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 임권택은 그 속에서 스스로 예술가가 되었다. 내게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 임권택은 미국으로 도망가지 못했으며(백남준), 독일로 망명하지 못했다(윤이상). 그는 그 안에서 살았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무덤 같은 세월 속에서 희망도 없이 그저 죽기 위해서 살아간 시간"들을 감싸 안아야만 했다.
임권택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한반도 안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임권택 영화가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힘이다. 모든 질문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임권택을 이해하는 것,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갑자기 (서구로부터 가져온) 영화 미학의 대부분은 무기력해진다. 왜냐하면 임권택의 인물들의 태도와 정서, 그들의 상황, 그 안에서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씬, 그 씬은 만들어내는 쇼트들의 구성, 혹은 찍지 않은 쇼트, 그 사이를 건너가는 편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미'주어진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한국이다. 거기에는 조선 오백 년 유교 문화와, 일제 강점하의 삶의 그림자와, 여전히 잘려나간 분단 한국이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임권택은 영화에서 그 무게의 삶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자신이기도 한) 사람의 내면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임권택의 영화들은 20세기 한국의 사유로 이끄는 입문이다. 그 안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 pp.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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