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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서문 _ 0. [휴일] 앞에서, 그리고 옆에서, 게다가 뒤에서, 하지만 아직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1장 ― 1968년, 그해의 맥락(들) 2005년에서 1968년으로, 한국영화사 안에서 하나의 사건 이만희가 거기 있었다. 1968년 그해 초겨울, 영화의 안과 바깥 2장 ― 그해 겨울 일요일의 낮 일요일 오후, 허욱은 점괘를 받아들고 산책을 시작한다. 남산에 올라간 허욱과 지연, 30개의 숏 남산에서 내려와 세 명의 친구를 방문하지만 … 3장 ― 그해 겨울 일요일의 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둠의 심연, 혹은 허욱의 유언 주 참고문헌 크레디트 |
鄭聖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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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복해서 한 번 더) 그리고 〈만추〉(1965)가 있다. 만장일치로 이만희의 최고 걸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몇 번되지 않는 새로운 문제 설정의 단절이라는 쇼크를 ‘발명한’ 영화.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제는 이 영화를 경험한 증인이 얼마 남지 않게 된 ‘소문 속의’ 영화. 왜냐하면 〈만추〉는 ‘잃어버린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작자 호현찬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 프린트가 세 벌이었는데 하나는 한 영화사 사장이 빌려 가서 잃어버렸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으로 건네지다 실종되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네거티브 원판인데 스페인에 수출되어 개봉한 뒤 돌아와 김포세관에서 폐기 처분되었어요.”
--- p.23 내기를 해 보고 싶다. 만일 허욱이 점괘를 믿고 그날 지연을 만나러 가는 약속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귀가했거나, 아니면 돈을 빌리러 돌아다니면서 만난 세 친구, 자신의 시신 앞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던 세 친구, 그중의 한 명, 아마도 술집에서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두 번째 친구일 텐데, 그 친구를 만나서 하루 종일 술을 마셨다면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세 가지 순환이 있을 수 있다. --- p.51 당시 모래바람은 영화 안에서 하나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영화와 관계 맺는 세상의 상태이며 개입이다. 그래서 허욱과 지연의 심리적 드라마의 진행을 보려는 우리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반대로 심리적 드라마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영화 안에서’가 아니라 ‘영화 안으로’ 부는 것이다. 만일 지금 아무 바람도 불지 않고 고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 p.73 이제부터 점괘의 남은 부분이 실행될 차례이다. 새가 점지해 준 점괘의 남은 말에 따르면 “… 만약 그렇지 않으면 크게 손재(損財)를 볼 것이니 몸가짐을 유의할 괘요. …”라고 경고했다. 이미 첫 마디를 어겼으니(“여자를 가까이하지 마라…”) 이제 크게 손재(損財)를 볼 차례이다. 아마 허욱은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손재를 보다. 재물을 잃다. 그런데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 라는 안심. 여기서 허욱이 셈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허욱의 유일한 보물, 지연. --- p.97 남산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남산에 다시 돌아올 때도 남산까지 올라오는 장면이 없다. 허욱은 모래바람이 부는 남산 벤치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린다. 벤치가 텅 비어 있다. 허욱이 지연의 이름을 부르자 벤치가 있는 자리 돌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대답한다. “왜 거기 있어?” “추워서.” 지연이 여전히 허욱의 외투를 껴안은 것처럼 움켜쥐고 안고 있다. “왜 오바를 입고 있지 않았어?” “어떻게 입고 있을 수가 있어.” “늦어서 미안해.” “구했어?” “응.” “지금부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배가 고파요.” --- p.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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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의 모험, 텍스트만으로도 놀라운
저자는 이만희 감독의 1968년작 [휴일]을 보고 나서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환대를 담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라고 표현한다. 종종 어떤 영화는 과분한 찬사와 영광을 누리지만 또 다른 어떤 영화는 마땅한 명성과 지위를 얻는 데 너무 오래 지체된다. 이만희의 작품 목록에도 없고, 백결 시나리오작가의 목록에도 없고, 이석기 촬영감독 목록에도 없고, 신성일 배우조차 여러 자리에서 〈만추〉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영화. 이 영화에 대해 왜 모두가 그 긴 세월 침묵을 지킨 것일까? “단지 세간의 평가에 저항한다거나 아니면 미처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알고 있다고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반대로 〈휴일〉을 정전의 자리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영화라는 담론, 그 담론이 작동하는 방식, 그 안에서 미처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그 무언가의 활동, 제발 단지 개념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떤 힘을 발굴하고 그것이 또 다른 영화에 재분배되었을지도 모르는 관계의 지도를 그려 나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영화 한 편을 추가하는 대신 새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끌어낸 영역에 모험적으로 들어서서 미처 가 보지 못했다고 여겼던 거기에 이미 도착했던 방법을 정식화해 보자는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그 일부를 건드리고 여기서 찾아냈다면 아마도 다음 작업을 공유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심한 목표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