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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소뜸
역사 너머의 기억들
오영숙
앨피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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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A 영화비평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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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서문_상흔의 지도를 펼치다

1장-임권택의 영화 여정과 〈길소뜸〉
〈길소뜸〉이 놓인 자리
‘나’를 말할 수 없던 시간들: 1950-70년대
1980년대: 나를 응시하기 시작하다

2장-국가 서사의 공백과 남겨진 고통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영화적 재매개
국가 주도의 감정정치
감동의 스펙터클과 현실의 잔여

3장-상실의 기표로서의 고향
그 이름, ‘길소뜸’
첫사랑: 순수와 낙원
상실의 정념과 죄책감

4장-장소들: “지겨워서요, 이놈의 땅이”
황해도 연백군의 해안 마을
엇갈림과 단절의 무대, 춘천
재생과 유동의 장, 속초
망각 위의 번영, 부산
기억의 전시장, 서울

5장-기억의 정동지리
갯벌, 흔적과 망각의 자리
흐름과 경계의 장소, 수변
산, 고립과 생존의 공간

6장-겹쳐진 시간
두 개의 전쟁: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국가의 성장, 개인의 빈곤
1980년대의 전쟁 서사

7장-몸에 새긴 기억
배우의 얼굴과 ‘메타‐기억’
몸, 기억의 아카이브
상흔의 또 다른 얼굴, 결핍

에필로그


참고문헌
크레디트

저자 소개 1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영화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는 힘이라는 인식 아래, 스크린 안에 새겨진 시대의 내면을 읽어 내는 글을 써 왔다.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 《1950년대 한국영화와 문화담론》, 《카메라가 만든 전쟁, 편집된 냉전》(공동편저)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슬라보예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와 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의 내레이션》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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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6쪽 | 230g | 135*200*10mm
ISBN13
9791192647821

책 속으로

〈길소뜸〉은 임권택의 대표작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짐없이 언급되지만, 그 위상은 여전히 질문의 형태로 남아 있다. 전쟁 영화로 분류하기에는 사건의 비중이 크지 않고, 가족멜로드라마라 부르기엔 감정이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으며, 분단영화라는 범주로 묶기에도 분단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기존의 장르 구분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애매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p.15

그 전환의 중심에 놓인 것이 한국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지형 변화였다. 광주항쟁이 폭력을 현재의 문제로 소환했다면, 그 충격은 더 오래된 폭력의 기원으로 시선을 되돌리게 했다. 전쟁은 과거사로 정리되거나 봉합될 수 없는 ‘상처’로 재인식되었고, ‘무엇이 일어났는가’에서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지속 되는가’로 질문이 확장되었다.
---p.28

〈길소뜸〉의 서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드는 구성 방식이다.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방송 영상/음성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극적 서사와 긴밀히 엮이며 독특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구성은 방송 속 사연들이 극 중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구체적인 정보로 작용하게 하며, 인물들이 미처 발화하지 못한 내면의 공백을 보완함으로써 서사의 밀도를 한층 높이는 장치가 된다.
---p.42

사랑을 나눈 뒤 두 사람이 벗은 몸으로 나란히 먼 곳을 응시하는 순간은, 인간이 세계와 처음 대면하던 때의 어떤 시원적(始原的) 평온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낙원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듯한 이러한 장면 연출은, 곧 들이닥칠 전쟁의 폭력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하기 위한 미학적 장치가 된다.
---p.56

〈길소뜸〉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이 서사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직접적인 전장 재현 없이도, 짧고 응축된 대사를 통해 두 전쟁을 하나의 폭력적 연쇄로 읽어 낼 계기가 마련된다. 그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인물은 아들 석철이다. 그가 베트남전을 언급하는 것은 단 한 차례이지만, 그의 대사는 두 전쟁을 동일한 폭력의 구조로 인식하게 만든다.
---p.98

이렇듯 복잡한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 김지미의 연기다. 그녀의 연기는 과잉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시선의 떨림, 침묵의 호흡, 억눌린 몸짓으로 이루어진 절제된 신체 언어에 기반한다. 그 절제 속에서 트라우마가 남긴 내면의 균열과 절제된 회한이 드러나고, 화영은 비정한 인물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의 무게를 짊어진 고독한 인간으로 재정의된다. 김지미의 연기가 화영에게 그러한 깊이를 부여할 때, 모성은 본능의 영역을 넘어 시대의 상처를 통과한 한 개인의 실존적 결단으로 확장된다.
---p.119

〈길소뜸〉은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가 개인의 신체에 어떻게 각인되고, 그 흔적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되는가에 천착하는 영화이다. 화면 속 배우들의 상흔은 관객이 전쟁을 피부로 실감하게 하는 통로이자, 망각의 틈 속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의 물질적 증거로 기능한다. 상처 난 몸은 단순한 피해의 표지를 넘어,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하나의 기록장치가 된다.
---p.125

출판사 리뷰

‘이산가족 찾기’가 소환한 세대의 기억

영화의 제목인 ‘길소뜸’은 주인공들이 자란 고향 마을의 이름이다. 실제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지 친근한 이 지명은 주인공 화영(김지미)과 동진(신성일)에게 고향의 흔적을 불러내는 언어적 장소이자 귀향할 수 없는 공간을 상기시킨다. 〈길소뜸〉은 영화가 곧 기억의 장소임을 강렬하게 증언한다. 억눌린 과거가 현재와 부딪히며 파편적인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개인의 삶과 집단의 역사가 한 서사 안에 교직된다. 전쟁과 분단이 한국 사회에 남긴 집단적 상처가 어떻게 기억으로 치환되어 지금의 삶 속에 자리하는지, 영화는 그 내밀한 과정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특히 당시 이산가족 찾기라는 국가적 이벤트가 만들어 낸 감상적인 서사에 맞서, 국가가 봉합하려던 비극의 실체를 개인의 서늘한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이 기록 방식은 〈길소뜸〉이 제작된 198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과 맞닿아 있다. 이 시기는 고속 성장의 그늘 아래에서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네이션의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이다. 특히 광주의 비극은 역사를 ‘지배의 기록’이 아닌 ‘저항의 서사’로 재편하려는 실천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길소뜸〉에서 전쟁은 지나간 과거로 박제되지 않고, 현재를 규정하는 실존적 조건으로 자리한다. 성장기에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겪어 내야 했던 세대의 기억이 이산가족이라는 국가적 서사를 통과하며 현재로 소환된다. 그렇기에 〈길소뜸〉은 전쟁 이후의 삶을 살아온 ‘자기 세대’의 감각, 즉 임권택이 정면으로 마주한 ‘자신의 시간’을 담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독보성은 형식적 성취를 넘어, 한 감독이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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