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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서문 - 머리를 위한 변명 프롤로그 ─ 멜로와 일기, 이명세와 사소함의 시대 멜로의 시대와 이명세 일기체와 사적 영화 1장─이명세는 무성영화를 꿈꾸는가 종이로 된 스크린 종이 이후 모든 것은 매개다 역설의 스타일리스트 대사의 슬랩스틱 말 못하는 사람들 액션과 사랑 기계화된 배우 표현의 리얼리즘 2장─〈첫사랑〉은 SF를 꿈꾸는가 세트의 시대 왜 1970년대인가 70퍼센트의 세트 시대에서 시간으로: 시간을 위한 기법들 시선의 주인이 된다는 것 문밖에서 투명인간 골목길 천사의 시선 3장─ 머리의 사랑 이발소 숏컷을 한 배우 머리카락 팔아요 잘린 사진 흥행에 실패한 감독의 자리 부감 숏 머릿속이 이상해 꿈과 깨어나기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에필로그 주 참고문헌 크레디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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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이명세의 마지막 ‘종이 영화’다.〈첫사랑〉의 흥행 실패가 남긴 뼈아픈 결과는, 그가 종이와 결별하고 컴퓨터 모니터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다.〈첫사랑〉의 다음 작품인 〈남자는 괴로워〉의 배경은 동시대의 광고 회사다. 안 과장(안성기)이 소속된 팀의 사무실은 각자의 테이블마다 컴퓨터가 놓인 전형적인 사무 공간이다. 당시 이명세의 영화를 따라온 관객이라면 어리둥절할 만큼 낯선 현대적인 공간은 이제는 종이를 버리고 컴퓨터로 옮겨 가겠다는 이명세의 선언과도 같았다.
--- p.26 이명세가 꾸준히 사랑을 주제로 삼아 왔음에도 그의 영화가 ‘멜로영화’의 맥락에서 의미화된 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멜로영화의 의미는 다소 협소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멜로영화에는 기본적으로 슬픔의 파토스가 깔려 있어야 하고, 캐릭터도 전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을 가볍게 묘사하는 경우는 로맨틱코미디를 포함한 코미디 장르로 분류된다. 이명세는 주제로서 사랑을 다루되, 할 수 있는 한 가볍게 그린다 --- p.38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70년대는 유신정권 시기였기에 비판이 더욱 거셌다. 김종원은 “1970년대 유신 말기의 정치적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탈색된 시대적 상태 속에서 스토리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이 작품의 외모는 이 감독이 갖고 있는 센티멘탈리즘의 필연적인 결과이자 한계”라고 말하며, 정치적 맥락이 제거된 이유를 감상주의에서 찾았다. 정성일 역시 비판적인 견지에 있지만, 영화의 감상주의에 관한 시선은 김종원과 달랐다. --- p.54 ‘온몸이 눈인 천사’가 카메라를 가리킨다면, 이는 영신이 곧 카메라라는 말도 된다. 고정숏으로 골목길의 사계절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천사의 시선이자, 영신의 시선이다. 영신이 그 장면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영신이 우리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함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안과 바깥을 넘나들며 말을 걸어오던 영신은 이제 관객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것을 바라본다. --- p.92 부감 숏은 영신의 집을 보여 주는 장면에서 주로 쓰인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놓은 국경일에 자전거 탄 우편배달부가 속달 등기를 전해 줄 때나, 영신이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마당 장독대에서 고추장을 덜어 가는 장면이 부감으로 찍힌다. 특히 고추장을 더는 장면에서 지붕에서부터 시작해, 마당 일부와 대문 바깥의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도 이명세의 디테일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 p.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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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도착한 ‘시네 다이어리’
우리나라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박한’ 영화는 1990년대를 빛낸 ‘저주받은 걸작’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쳐 2024년 블루레이로도 출시되었다. 그러나 개봉 당시 평가는 가차 없었다. “양식주의와 빛바랜 회고 취향이 어떻게 어긋나 버렸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영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는 초기 연출작부터 때론 부정적인 뉘앙스로 따라다녔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기법, 말풍선, 정교한 세트 활용 등 〈첫사랑〉의 인공적이고 동화적인 영화 분위기는 당시 대세였던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첫사랑〉을 만들 당시 이명세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다고 하니 그 뜻을 이룬 셈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명세 감독 고유의 미학적 스타일이 완성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다큐멘터리를 작동시키는 멜로영화 저자에 따르면,〈첫사랑〉은 영화 관람의 장소가 분화되고, 관객의 집중력과 싸워야 하는 산만한 영화 관람의 시대에 그보다 앞서 관객의 몰입에 관해 질문한 영화다. 그리고 몰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그 산발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 그리고 그 시도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존재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고 저자는 평한다. “〈첫사랑〉을 경험하는 일은 엇갈린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다. 영화가 도착했을 당시 관객인 나는 없었고, 지금의 나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영화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다큐멘터리영화처럼 삶에 맞닿은, 영화 바깥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작동시키는 영화. 그래서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드는 만큼이나 부당하게 외면당하고 있을지 모를 오늘날의 영화를 향해 조바심을 내도록 만드는 영화. 그렇게 이명세가 던진 ‘사소함’이란 화두는 3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기어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고, 저자는 그 ‘사소함’에 깃든 우주를 읽어내는 대신 사소한 대로 내버려두는 가운데 길을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