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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진리의 상아탑에서 1980년대 대학교의 기록 1984. 4. 24. 서울대 /1985. 4. 15. 고려대 앞 /1985. 5. 18. 고려대 정문 1986. 4. 29. 성균관대 /1986. 5. 31. 이화여대 /1986. 5. 30. 감신대 1986. 10. 31. 건국대 /1987. 2. 6. 서울대 /1987. 5. 28. 서울대 1987. 6. 7. 고려대 정문 /1987.6.17. 연세대 정문 /1987. 7. 7. 연세대 1988. 2. 26. 서울대 /1988. 6. 9. 연세대 /1988. 11. 3. 서강대 앞 1988. 11. 3. 연세대 앞 /1989. 4. 30. 연세대 정문 /1989. 6. 10. 서강대 앞 사진과 나: 서울의 봄 2부 그 날, 그 거리 거리 시위에 대한 기록 1986.3.25. 창신동 전태일 기념관 /1986.4.11. 법원 /1984.5.18. 이문동 1986.4.18. 미아리 /1986.5.15. 안암동 /1986.5.18. 명동성당 1987.2.7. 명동성당 /1987.6.15. 명동성당 /1987.6.18. 명동성당 / 1987.6.20. 조계사 앞 /1987.6.27. 부산 /1987.5.18. 광주 원각사 1987.6.10. 미도파 앞 /1987.6.10. 시경 앞 /1987.6.10. 신세계 앞 1987.6.10. 서울역 /1987.6.10. 한국은행 앞 /1987.6.26. 부산 문현동 로터리 1987.6.29. 부산 /1987.7.7. 세브란스 병원 앞 /1987.7.9. 서울시청 앞, 이한열 장례식 1988.5.19. 명동성당 /1988.5.19. 광화문 /1988.5.30. 서울역 앞 1988.11.5 대학로 사진과 나: 현장 그리고 동료 3부 시대의 얼굴 1980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의 기록 1985.9.25. 법원 /1986.4.23. 성균관대 /1987.1.20. 서울대 1987.1.26. 서울대 /1987.6.10. 백병원 /1987.7.9. 서울대 1988.4.9. 명지빌딩 /1988.5.22. 서울 아카데미 하우스 /1988.10.30. 건국대 1988.11.2. 연세대 /1988.11.27. 설악산 백담사 /1989.6.10. 연세대 사진과 나: 내 기록의 시작 4부 진실을 알리다 현장 그리고 사진기자들에 대한 기록 1980.5.18. 광주 금남로 /1986.4.30. 중앙대 후문 /1986.5.20. 서울대 학생회관 1986.10.31. 건국대 /1987.6.9. 연세대 정문 /1987.6.10. 신세계 앞 1987.6. 한국은행 앞 /1989.4.30. 연세대 /1989.5. 연세대 정문 1988.6.10. 연세대 앞 /1988.11.3. 연세대 앞 /1991.5.18. 연세대 정문 사진과 나: 거리의 자유 5부 잊지 못할 순간 잊지 못할 사건, 잊지 못할 사진 1961.5.18. 시청 앞 /1968.1.21. 서울 홍제동 파출소 /1970.3.18. 서울 한강로 3가변 1970.5.10. 청평호 /1971.12.25. 서울 대연각 호텔 /1972.12.2. 시민회관 1974.8.15. 국립극장 815 기념식장 /1977.11.11. 이리역 부근 1979.11.7. 궁정동 만찬장 현장 /1979.12.15. 서울 육군본부 /1981.5.14. 경남 경산 1983.10.9.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1985.9.21. 서울 워커힐 호텔 1988.10.17. 서울 연희동 /1990.12.28. 대청호반 /1991.6.3. 한국외국어대학 1993.5.7. 용인 자연농원 /1993.7.26. 전라남도 해남군 /1994.10.24. 충주호 에필로그 |
고명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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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들은 종군기자 수당을 받으며 취재를 할 정도였다. 땅에는 불타고 있는 경찰 장비들과 날카로운 돌멩이들이, 하늘에는 매캐한 최루탄 연기와 날아다니는 화염병들이 있었다. 허공에는 “독재타도”와 “양키 고 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구호를 외치면서도 시위대들은 외신기자들에 대해선 호의적이었다. 국내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외신이 그나마 국내의 시위가 보도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위가 있을 때마다 수십 명의 외신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주로 AP, 로이터, AFP 등 전 세계에 사진과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 기자들이었고, 일본의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미국의 뉴욕타임즈 등 각국의 주요 신문사와 언론사 기자들도 한국을 찾아왔다. 그들은 1980년 우리나라의 ‘현장’을 전쟁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우리의 ‘현장’은, 극렬한 전쟁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취재를 오는 기자들에게는 종군 수당이 나왔다고 한다. 아랍이나 이라크 같은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 취재를 가는 기자들이 그러하듯이 통역지원, 차량지원, 정보수집비, 그리고 봉급의 배에 달하는 위험수당을 받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과 우리는, 현장에서 친구가 되었다. 같이 최루탄 먼지를 털어내며 소공동 뒷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김치를 집어먹으며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는 총칼에 의해 지배되어선 안 된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사진기자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고 시대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눈물겹게 기뻤다. 물론, 이런 내 마음과 달리 몸은 항상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머리 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화염병에 헬멧을 쓰고, 눈과 코를 괴롭히는 최루탄 연기에 방독면을 착용하고, 시위하는 모습을 한 눈에 보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그 위로 올라갔다. 필름을 넣는 조끼, 여러 대의 카메라도 필수였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는 시절이니 무조건 필름은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하며, 언제 어떤 구도로 누구에게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종류가 다른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 역시 챙기고 다녀야 했다. 어딜 가든 목숨처럼 챙겨야 했던, 당시 사진기자들의 필수품이다. ---pp.193~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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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뜨거움을 사진으로 다시 읽는다!
1987년 5월 26일 부산 문현동 로타리에서 ‘6.26 평화대행진’이 저지되자, 한 시민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경찰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 장면은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 고명진의 카메라에 담겼다. 고명진 기자가‘아! 나의 조국’이라 이름 붙인 사진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6개월이 지나서야 신문에 실릴 수 있었으며, 1999년 AP통신사의 ‘금세기 100대 사진’으로로 선정되었다. 1999년 AP통신사의 ‘금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된 ‘아! 나의 조국’ 등 ‘6월 항쟁’을 중심으로 당시 대학가와 거리의 풍경, 시대의 얼굴들, 잊지 못할 사건과 사고를 생생히 담은 보도사진 94점을 에세이와 함께 실었다. 75년부터 사진기자로 현장을 지켜 온 저자는 대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민주화의 열망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6월 항쟁’의 기억을 전하며, 위험하고 치열한 보도현장에 선 사진기자들의 애환도 들려준다. 1부 ‘진리의 상아탑에서’는 최루가루가 하늘을 덮고, 화염병이 하늘을 날던 1980년대 대학가 풍경을 생생한 사진과 간결한 문장으로 소개한다. 시위하는 학생에게도 진압경찰에게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던 사진기자의 애환도 사이사이에 읽힌다. 2부 ‘그날, 그 거리’에서는 대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민주화의 열망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시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6월 항쟁’의 기억을 전한다. 3부 ‘시대의 얼굴’에서는 19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학생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다 제지당하는 모습, 박종철 군 추모식에서 그 어머니가 오열하는 모습, 여소야대 정국 후 밀담을 나누는 3김의 모습 등 80년대를 상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 ‘진실을 알리다’와 5부 ‘잊지 못할 사건, 잊지 못할 사진’에서는 저자 외에도 동료 사진기자들의 사진과 흥미로운 촬영후일담을 소개한다. 4부에서는 5.18광주에서 시작해 위험하고 치열한 보도현장에 선 기자들의 애환을, 5부에서는 3공화국 최대 스캔들로 불리는 정인숙 사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유행시킨 지강헌 사건 등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