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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처연한 스무 살의 기록
2. 신학생 윤치호의 우울증 3. 성악설, 모이면 쪼개지는 4. 친일파가 되고 싶지 않았던 친일파, 혹은 용일파의 고백 작가 후기 |
趙星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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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
어둡고 미묘한 시대의 숨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경계인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윤치호의 외로운 고백 오늘의작가상,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역사소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좌옹(佐翁)이라고 불렀다. 왼쪽 좌(左) 옆에 사람 인(人)을 붙이면 도울 좌가 된다. 오른쪽 우(右) 옆에 사람 인을 붙여도 도울 우(佑)가 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사람다운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좌파냐 우파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냐 하는 것이 사실은 문제가 된다. 그는 과연 좌옹, 즉 도움을 주는 늙은이였는가.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 스스로는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되려고 한 것만은 틀림없다.”―본문에서 친일파에 대한 평가가 논란을 빚고 있는 이 시기에, 윤치호가 남긴 일기를 정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간 한 인간의 내면을 추적한 작품. 식민지기 한국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권태억(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우리는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와 애국가 작사자인 윤치호 두 사람 모두 친일파로 규정된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친일파가 가사를 짓고 친일파가 곡을 붙인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국민이다. 무언가 이상하고 참담하지 않은가. 여기에 문학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있지 않겠는가. 문학의 임무는 누가 친일파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친일파로 지목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생각과 고민, 소망과 좌절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 후기」에서 오늘의작가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신작 역사소설 종교적 관념 세계와 사회 역사적인 문제의식을 다양한 작품으로 그려낸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의 신작 역사소설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친일파가 되고 싶지 않았던 ‘친일파’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문제적 인물 윤치호의 내면과 삶을 주제로 삼는다. 한국 최초의 동경유학생, 한국 최초의 영어통역관, 독립협회 설립, 만민공동회 주관, 105인 사건 지휘, 그리고 친일파로 변절. 개화파의 선두에서 독립운동을 지휘했던 민족주의자이자 한국 근대사 최초의 ‘코스모폴리탄’ 윤치호. ‘도움을 주는 노인’이라는 뜻인 ‘좌옹(佐翁)’을 호로 삼을 만큼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힘쓰던 그가 왜, 어떻게 친일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 작품은, 1883년부터 1943년에 이르는 60년간 대부분 영어로 기록된 ‘윤치호의 일기’를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근대사와 지식인의 내면을 해부하고 있다. 어둡고 미묘한 시대의 숨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경계인, 좌옹 윤치호의 고백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1부와 2부는 이미 공개된 ‘윤치호의 일기’처럼 서술자 윤치호의 1인칭 시점으로, 스무 살에 겪은 갑신정변의 생생한 순간부터 미국 유학 시절의 끝 무렵까지 전개된다. 3부와 4부는 3인칭 시점으로 변환되어, 귀국해 본격적인 독립, 개화운동에서 친일로 이어지는 윤치호의 행적과 복잡한 내면을 3?1운동 시기까지 다루고 있다. 하나의 일기문학으로서도 손색없는 윤치호의 일기에는 특히 국제 관계와 힘, 민족주의와 실용주의 노선이 점차 신념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러한 계기가 된 청년기와, 그 신념이 나름의 소신 있는 독립운동과 사회 활동으로 실천되는 시기 등으로 나누어 구성된 소설이다. 교육자이자 정치가, 종교가, 개혁 운동가, 독립운동가였던 좌옹 윤치호(1864~1945)는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사 등 다방면에서 계몽 강연 활동을 주도하다가, 경술국치 이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뒤 친일파로 변절해 귀족원 의원 등 각종 친일 어용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YMCA, 연희전문학교, 기독교재단, 조선체육회, 흥업구락부 등의 기관에서 기독교 교육 운동과 근대화 운동을 이어 나갔다. 어릴 적부터 개화사상에 눈뜨기 시작, 1881년 17세 때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 한국 최초의 동경 유학생 일원이 되어 일본어와 영어를 습득한 뒤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유길준 등 개화파 인사와 친분을 맺고, 1883년 한미수호조약 체결 당시에는 초대 주한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신학문과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이며 다가오는 근대의 물결에 열정과 재능을 바쳤다. 서두를 과감히 생략하고 윤치호가 스무 살 때 겪는 갑신정변의 급박한 상황을 전개하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독자에게 시대와 개인, 개화와 수구가 충돌했던 구한말의 현장 느낌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상당 부분, 윤치호가 직접 써 내려간 구체적인 영문 일기를 토대로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하늘을 아는가?”/ 시마무라가 짧게 대답했다. / “요로시.”/ 나도 어느 정도 일본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요로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차릴 수 없었다. ‘요로시아’라 하면 유럽과 러시아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 김옥균이 갑자기 하늘을 아느냐고 물은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선문답 같은 것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표정이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무슨 암호를 확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와락 들었다. 기어이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가. / 맞은편에 있던 김홍집과 뮐렌도르프, 담갱요, 민영익 들도 김옥균과 시마무라의 수작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였다. 일본을 등에 업고 있는 개화파와 청국을 등에 업고 있는 소위 사대당의 기싸움이 우정국 연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p.12) 갑신정변에 대한 비관, 혈기왕성한 스무 살 청년으로서 주색에 빠지고 다양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또 반성하는 소회, 조선이라는 작은 땅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을 거쳐 세계적인 흐름 속에 조선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근대화를 위해 일본을 ‘이용’하자는 ‘용일’의 차원에서 결국 친일에 이르는 과정까지, 모두가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변모해 가는 지식인의 고백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또 편견 없이 마주하기란, 역사소설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진기한 문학적 경험일 것이다. 사람들이 웅숭거리며 주고받는 말들이 총탄이 되고 포탄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어쩌다가 개화파가 이리도 일을 서두르고 만 것일까. 푸트가 그토록 신중을 기하고 때를 잘 기다리라고 충고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음모가 탄로 날 기미가 보이니까 살 궁리를 찾기 위해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갑자기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pp.34~35) 단 한 번 칼을 어떻게 내리치느냐에 따라 역사와 시대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는 법이었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칼로 찌를 때 개화파가 민영익을 내리친 것처럼 어설피 했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이었다. (p.18) 나는 그동안 강 씨를 외면하고 욕정이 동하는 대로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온 셈이다. 지지난달과 지난달에 일주일가량은 격일로, 그 후 닷새가량은 매일 아침마다 여자의 몸을 탐하였다. 그렇게 무리하게 색을 쓰다 보니 내가 보아도 나의 형용이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두 눈은 화기가 올라 실핏줄이 터진 듯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이러다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와 얼마 동안 특별한 여자가 아니면 색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p.19) “밑에서부터 착실하게 혁신해 나가야지 궁궐을 총칼로 차지하고 정강 몇 개를 발표한다고 해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이게 바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지. 이상만 높고 기본은 갖추어지지 않았단 말이지.”/ 부친의 말에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김옥균 등과 어울려 이런 혁신안들에 대해 얼마나 자주 술기운을 빌려가며 호언장담해 왔던가. 그들의 조급한 거사에 나도 한몫 거들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다. / 아무튼 김옥균 일파가 개혁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들이 발표한 혁신 정책은 어떤 모양으로든 조선 역사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긴 했다.(p.37)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민감한 시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 〈애국가〉의 작사자인 민족주의자이면서도 국제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실용을 중시했던, 깨어 있는 근대인이자 세계인이었던 윤치호가 용일(用日), 또는 친일의 길을 택했던 까닭으로는, 저자가 작가 후기에서 밝혔듯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는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는 시대의 분위기 또한 크게 좌우했다. ‘조선민족에게는 자립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차라리 일본에게 최대한 배우고 그들을 이용하자 했던, 민족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도움을 주려 했던 ‘좌옹(佐翁)’ 윤치호의 선택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역사가 한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과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지, 새로운 세계에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평생 동안 봉사하고 헌신했던 기독교를 종교로 선택한 이유도, 기독교가 당시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세계적인, ‘도움이 되는’ 종교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조정은 돼지 꼬리 같은 청나라만 의지하고 있고, 중신들은 자기 이익만을 챙기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외면하고 있고, 외교정책은 꽉 막힌 뮐렌도르프가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말일세.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물에는 근원이 있는 법이네. 지금 뿌리가 썩고 근원이 말랐으니 어찌 가지나 잎이 번성하기를 바라며 강물이 흘러넘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말일세.”(p.74)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좌옹(佐翁)쳀라고 불렀다. 왼쪽 좌(左) 옆에 사람 인(人)을 붙이면 도울 좌가 된다. 오른쪽 우(右) 옆에 사람 인을 붙여도 도울 우(佑)가 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사람다운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좌파냐 우파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냐 하는 것이 사실은 문제가 된다. / 그는 과연 좌옹, 즉 도움을 주는 늙은이였는가.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 스스로는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되려고 한 것만은 틀림없다.(p.131)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얗건, 노랗건, 빨갛건’ 한결같이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인간에 대해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고 기대가 별로 없었던 만큼 실망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일본인, 조선인, 독립운동가, 민족지도자, 친일관료, 강대국, 약소국 모두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 그런 의미에서 그는 회색인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신념이 있었으므로 경계인이라고 해야 더욱 정확할 것이었다.(p.133) 좌옹은 잠자리에 누워 조선인들을 네 부류로 나누어보았다. / 첫째는, 미래는 생각지 않고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사랑방에 앉아 담뱃대나 빨고 있는 노학자들과 옛 관료층들이었다. 둘째는, 오로지 자기 탐욕만을 만족시키기에 급급한 무지몽매한 무리들이었다. 셋째는, 각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파멸로 이끌고 갈 신사상이라는 등불에 매료된 날파리들 같은 학생계층이었다. 넷째는, 조선 독립에 대해 합리적이고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다지 호응받지 못할 사상을 지니고, 주도적으로 나설 만한 용기나 정력이 결여된 무기력한 지식인 계층이었다. / 좌옹은 자신이 넷째 계층에 속해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날 일기장 말미에 마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외친 것처럼, ‘누가 날 이 답답한 수렁에서 건져내랴?’ 하고 처절한 탄식을 토해 내었다.(p.137) 이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구한말 격변기와 일제시대의 사건들을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확인하며 다양한 인간군상과 시대의 요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윤치호는 고종과 명성왕후,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외국인 선교사와 외교관, 그리고 홍난파, 신승희, 이광수, 최남선 등을 직접 겪고 함께했다. 윤치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일면과 내면을 생생한 일화와 묘사를 통해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일 년 전 5월 푸트가 주한 미국공사 신임장을 받을 때 나는 홍룡포에 익선관을 쓴 주상을 처음으로 배알했다. 용모가 출중하고 근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 하지만 이제 자주 대하다 보니 첫인상과는 달리 유약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곤전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여 민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초에는 청국영사 진수당이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다’라는 문구가 쓰인 깃발을 남대문에 걸어놓고 시위를 했는데도 엄히 다스리지 못했다. 또한 뮐렌도르프의 말이라면 반대 의사가 있어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주상의 유약함이 국력의 초라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겨져 마음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p.17)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저녁에 박영효는 걸어가고 나는 말을 타고 갔는데, 박영효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내가 탄 말의 뒷발에 채어 나가떨어졌다. 그는 타박상을 크게 입고 몹시 아파했다. 그 모든 것이 만취한 가운데 말을 잘못 몬 내 탓인 것 같아 심히 괴롭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김옥균은 대장부가 그런 일로 자책하느냐면서 껄껄 웃기만 했다. (p.46) 250원이나 되는 유학비를 지원해 주었는데도 다시 요구한 250원을 더 보내주지 않았다고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온 홍영후(홍난파)를 가리켜, 좌옹은 ‘조선 청년들의 수준과, 은혜에 보답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녀석’이라고 평가하였다. (pp.173~174)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을 되짚고 환기하는 문학의 특권과 의무 자신이 선 자리에서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는 어쩌면 진정한 중도파이자 경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제 시대를 살아갔던 대다수 민중은 어쩌면 그 회색 경계 지대에 서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단순한 이분법으로, 흑백논리로 분류되는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조금 더 시선을 확장하자고 권한다. 우리는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와 애국가 작사자인 윤치호 두 사람 모두 친일파로 규정된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친일파가 가사를 짓고 친일파가 곡을 붙인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국민이다. 뭔가 이상하고 참담하지 않은가. 여기에 문학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있지 않겠는가. / 문학의 임무는 누가 친일파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친일파로 지목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생각과 고민, 소망과 좌절 들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p.257, 「작가 후기」에서) 일제 치하 민족 진영과 친일 진영 양쪽 모두에서 영입하려 애썼던 유능하고 부유한 인사 윤치호는 파렴치한 친일 행각을 벌이는 인물들을 일기 속에서 줄곧 경멸하며, 이상재 등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을 때 거액의 보석금을 대신 지불하고 홍난파 등에게 수업 자금을 대기도 한다. 서북 출신인 안창호가 기호파를 차별한다는 소문에 분개했고, 당파와 출신, 종교와 계급을 넘어 민족과 실용을 최우선으로 여겼다는 점에서라도 윤치호는 친일의 치명적인 낙인에서 한 번 더 고려되어야 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안창호가 일본인들은 몇 년 동안의 적이지만 기호인들은 5백 년 동안의 적이므로 오래된 적부터 박멸하고 나서 최근의 적을 무찔러야 한다는 말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창호가 그런 말을 했을 리 만무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안창호가 했든지 다른 누구가 했든지 그런 말은 아예 입밖에도 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몸짓이었다.(p.159) ‘비판적 아시아학’계 대표 인물인 시카고 대학교수 브루스 커밍스는 ‘능력 있는 조선인이 식민지 체제 아래서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일본 제국주의를 거부하고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것, 저항하다가 감옥에 가거나 죽는 것, 협력하는 것’, 이 세 가지 방도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윤치호는 광복을 맞고 두 달 뒤,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편지를 보내어‘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딸들을 공장에 보내야만 했는데, 무슨 수로 군국주의자들의 명령과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군가가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pp.131~132)라고 썼다. 한 인물과 그에 얽힌 시대는 서로 조응하고 변화하며 또 진보한다. 유럽에서도 나치 협력자 청산 과정에서 엇비슷한 진통을 겪었다. 그들을 철저히 숙청하자고 주창했던 알베르 카뮈는 후에, ‘정의’라는 모토 아래 인간을 징벌하고 파괴하는 과정에 염증을 느끼고 이러한 그의 신념은 사형 반대론으로 이어진다. 시몬 베유 또한 당대의 복잡한 상황을 오늘날에 재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서 이러한 미묘하고 복합적인 가치의 중점에 선 이가 바로 윤치호이다. 다층적인 그의 성장 배경 및 내면, 고민과 선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인문서나 학술서보다도 문학, 즉 소설은 그 내면과 당대 상황 속을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다. 그것은 문학의 특권인 동시에, 생생히 보이되 함부로 판단 내리지 말아야 할 문학의 의무이기도 하다. 시대와 현실에서 외면되어 온 문제를 들추어 해부해 온 작가 조성기는 5년 만인 이번 신작 소설을 친일파를 두둔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 60여 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친일’, 혹은 ‘친일 척결’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꾸짖고 낙인찍고 척결하기 전, 학술적이고 기록적인 측면에서든, 인간적이고 역사적 측면에서든 먼저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좌옹은 신승희의 자결이 남의 일 같게 여겨지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신승희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조선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버림받아 어디 오갈 데 없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어 컴컴한 골방에서 밧줄을 목에 맬지도 몰랐다. (p.2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