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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바보 예찬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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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다 르네상스의 위대한 학자 에라스무스가 다시 살아난다면, 2010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할까? 풍자문학의 결정체 『우신예찬』의 틀을 빌린 저자의 재기 발랄한 입담,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통해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좀 황당한 책이지만 저자가 김영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출판사에는 항상 출판을 원하는 원고가 가득하다. 모든 원고는 한 저자의 생각과 주장이 오롯이 살아 있는 옥고지만, 편집자는 책을 내야 하는 당위와 가치와 신념 나아가 대중적 보편성 등의 기준을 적용하여 원고를 고르게 된다. 이때 가장 곤란한 원고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원고로, 편집자로 하여금 검증의 난관에 부딪치게 하는 원고이다. 『헤이, 바보 예찬』도 자칫 그렇게 보이는 책이다. 한 개인의 돌출적 발언과 개똥철학의 소신으로 점철되어 학문적 저변이나 보편적 시각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철학자가 쓴 철학서도 아닌 것이 뭔가 심오해 보이고, 느슨하고 엉성한 얼개지만 당기는 글맛이 있다. 이런 경우 출판사는 참 난감하다. 하지만 저자가 김영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서 있지만, ‘사계절출판사’를 창립하여 굴지의 출판사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를 비롯하여 인문 어린이 분야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원고 감식력을 자랑하던 뛰어난 편집자이며, 『티벳에서 온 편지』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등의 저작을 통해 중앙아시아학을 본격적으로 우리 인문학의 중심에 올린 사람이다. 그가 몇 년에 걸쳐 쓴 글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꼼꼼한 사유에 편집자적 재능까지 겸비한 그가, 누구보다 글과 출판을 잘 아는 그가, 대중의 취미 판단의 틀을 몇 단계 뛰어넘는 인식의 지평과 실천적 의지를 설파하여 대중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 500년 전 에라스무스에 기대고 있다. 그렇지만 신부와 지식인 교회와 종교의 풍자를 넘어, 21세기 자본주의와 물질문명 시대의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올해는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탄생 500주년이다. 1511년 발표되어 금서와 베스트셀러를 오간 이 책은 풍자문학의 성서로 대접 받는다. 책은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대 같은 부류의 바보와 똑똑한 체하는 지식인이나 현자 부류의 바보가 있다고 말하면서 똑똑한 체하는 부류의 바보들을 풍자한다. 시인·법학자·신학자·군주·교황·추기경·신부 등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모두 그 대상이다. 모리아[痴愚女神]가 이 세상이 얼마나 치우(痴愚)로 물들어 있는가를 낱낱이 들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체재로 쓰인 책은, 철학자 ·신학자들의 쓸데없는 논쟁,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위선, 칼과 불을 가지고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흘리게 하는 고위 성직자들, 즉 지식과 지식인들의 교묘한 위선이 바로 모리아의 승리라고 쓰여 있다.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것이 그리스인들의 지혜에 대비하면 바로 치우를 의미한다는 바울로의 말을 인용한다. 지식은 무엇을 하는가? 목구멍에 풀칠하고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경쟁에서 앞서가고 물건 잘 고르고 잘 사용하고 자식교육에 도움 주고, 그러고 나면 달리 뭐 있나요? 집단적으로 생태 파괴하고 대량 살육하고 억누르고 굴종하고 빼앗고 빼앗기고 교육비 때문에 등골 빠지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지식을 숭상합니다.(20쪽) 저자 후기에도 밝혔듯이 『헤이, 바보 예찬』 역시 철저하게 에라스무스의 견해와 서술 체재를 따르고 있지만 에라스무스가 그 대상을 교회와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반면, 김영종은 사회제도, 특히 자본주의와 21세기 물질문명 아래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운 인간들의 삶의 조건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이는 저자의 오랫동안의 민주화 운동 경력이나 철거민들과 동거하며 찍어낸 사진집 『난곡이야기』 등의 작업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는 16세기에 인류 최대의 과제는 ‘부패한 교회’였지만, 21세기 우리가 처한 현실은 끝도 없이 치닫는 욕망의 자본주의와 현기증 나게 빠른 물질문명의 진화에서 인간이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어리석음을 통해 구하려는 진정한 현명함은 무엇인가? “내 몸 안의 바보를 해방하라!” 책의 미덕은 이런 상황을 진단하고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는 혹은 적응하려는 온갖 노력들이 결국 현자인 척하는 어리석음에 현혹되고 속은 것이라 하며, 그들의 지식과 이념 등을 거부하고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건강한 바보’를 해방시켜 참된 인간의 삶을 구현하라 말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덕목을 예시하는데, ‘경솔’(결혼의 불편함, 아이 낳는 위험과 고통 등에서 경솔하지 않으면?)을 통해 시선이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망각(경솔함 때문에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았던 여자가 또 아이를 낳는)을 통해 집착하지 않는 삶, ‘쾌락’(사람은 덜 똑똑할수록 행복한 법이다)을 통해 맑아지는 정신의 세계를, 낙심한 이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첨(칭찬)과 분노를 통해 진정한 용기를, 정욕을 사랑함으로써 이성에 대항하라 한다. 나아가 어린이처럼 숙면과 게으름을 자연 그대로 즐기고, 미래의 희망 따위에 속지 말라 한다. 이는 인생의 미래가 없다면 그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우리 삶을 유보당하고 저당 잡힌 빚쟁이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성의 속임수와 착각에서 깨어나 우리 몸의 주인인 자유인으로서의 바보, 계산과 계획과 이성에서 해방된 진정한 바보, 이 사회와 세계에서 억압하거나 억압당하지 않는 참된 바보를 우리 몸에서 발견하라는 일갈이다. 바보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 짧지만 꽉 차고 도타운 별난 이야기 바보를 내세워 현자 노릇 하려는 현자우신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바보가 상품가치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 내 이름을 들먹이며 “바보가 되라” 가르칩니다. 마치 노자나 장자나 된 듯이 말예요.(26쪽) 현자들이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은 누군가가 물질의 풍요를 독식하려고 도와주는 거야.(29쪽)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바보 상업주의를 경계한다. 이는 책의 뼈대를 형성하는 현자우신의 비판과 일관된 것이며, 동시에 믿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현대인들에게 감각적 현혹을 던지는 바보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 즉 그 바보도 치열한 의식과 잘 짜인 구조로 변별되며 형상화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의 ‘가장 큰 난점은 이성의 언어로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저자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이성 자체를 거부하는 거대한 사상을 이성의 언어로 구현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책은 생각보다 잘 짜이고 정치해 보인다. 그 이유는 거친 입말과 판소리체 사설과 랩이 끼어들지만 신화학·종교학·사회학·정치학 등의 깊은 사상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아울러 ‘헤이, 바보 예찬’이 큰 그림이라면 그 주석에 해당하는 ‘김영종의 잡설’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를 시작한다니, 책과 김영종의 생각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는 이제부터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