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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님들을 찾아서
마지막 괴각승, 혜수 스님 지리산으로 돌아간 원봉 스님 반야봉 아래 신비한 비구니, 연화 스님 숲을 지키는 나무들, 현담·법연 스님 겨울 산을 헤매다 간 설도인, 혜명 스님 고고한 사슴의 자태, 돈수 스님 재가의 운수객 안 처사 타고난 성품의 천진각, 초원 스님 희양산의 산주인, 법연 스님 타고난 손 재주 꾼, 야성 스님 늘 푸른 잣나무, 동선 스님 Ⅰ/Ⅱ 고독한 노송老松 정영 스님 동안童顔의 수행자 도현 스님 좌탈입망한 명문 스님 Ⅰ/Ⅱ 자다 보아도 스님인 사람, 학성 스님 강하지만 부드러운 지선 스님 Ⅰ/Ⅱ 도인이 되고 싶었던 할 스님 바람을 타는 기린, 명진 스님 외곬의 수행자, 원진 스님 녹차를 미치도록 좋아한 선견 스님 넓고 깊은 바다의 마음, 종림 스님 먹지 않고 사는 청허 스님 버스비를 깍던 ㅇ정 스님 눈이 맑았던 준연 스님 끝내 못 전해준 양산의 주인공, 무량심 보살 수행자의 상을 일깨워 주신 청담 큰스님 장군 죽비 호령하시던 성철 큰스님 천진도인 우화 노스님 다시 누더기를 그리워하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구도자의 길 다시 내가 돌아가야 할 곳 내가 불교 운동에 발 딛게 된 동기 10. 27 법난의 충격 대승 승가회와의 만남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효림 스님-종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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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라고 한다. 동안거 중 납월팔일臘月八日, 음력 12월 8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침을 이루신 날 성도절 용맹정진은 어느 선원에서나 연례행사다. 해인사 선원에서도 납월 용맹정진을 하게 되었다. 이 때는 전 산중의 대중이 희망자에 한해서 참여할 수 있는데 강원의 학인도 자원하면 그 용맹정진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학인으로 혜수 스님도 자원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선원에서 혜수 스님은 안 된다고 입방을 거절했다. 선원에서 그렇게 결정이 나면 그것이 바로 법이기 때문에 참여를 거절당해도 항변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납월 초하루 용맹정진이 시작되는 그 시간부터 혜수 스님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납월 초하룻날 새벽에 입제를 해서 팔일날 새벽에 회향을 하는데 혜수 스님이 계속 보이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용맹정진 일주일이 지나갔다. 용맹정진은 특별한 행사이기 때문에 조사전 스님들과 퇴설당 스님들이 선열당으로 모여서 공부를 한다. 이날 납월 팔일날 용맹정진을 무사히 잘 회향하고 조사전 스님들이 조사전으로 돌아오니 방안에서 구린내가 진동을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리 저리 찾다가 탁자 밑을 열어보니 그 속에 혜수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결가부좌한 채로 말이다. 따라서 똥오줌도 앉은 채로 본 것이다. 그러니 방안에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그 때 다리가 앉은 채로 굳어져 병원에 가서 물리 치료를 받고서야 펼 수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괴각승, 혜수 스님 중에서」 주봉인 반야봉에서 상봉인 천왕봉까지의 종주거리가 백 리라고 한다. 단일 산으로서 반도 땅 이남에서는 제일 큰 산이다. 이 산 속에는 내가 알기로도 수많은 수행자가 살고 있다. 그 많은 수행자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별별 사람들 때문에 지리산은 더욱 신비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 신비로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연화 스님이다. 그는 지리산 반야봉 밑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반야봉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스스로 어디에 산다고 말한 일도 없고 또 그가 살고 있는 곳을 본 사람도 없다. 더욱 신비로운 것은 그가 여자의 몸이며 그것도 젊은 여인이고 얼굴이 화사한 미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출가한 사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옷은 남이 입다가 버린 작업복에다가 머리는 삼단같이 길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면서 그가 산길을, 바람을 가르면서 걸어가면,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 가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빠른 걸음이다. 이 쪽 능선에 서 있던 사람이 잠시 후면 저 쪽 능선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반야봉 아래 신비한 비구니, 연화 스님 중에서」 1980년대 초였던가? 그는 여전히 지리산 골짜기에서 예의 그 천막 토굴을 지어 놓고 살고 있었다. 때는 여름이라 장마가 계속되어 토굴 안은 온통 누기가 차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있었다. 마침내 성냥까지 습기를 먹어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 산은 온통 안개로 차있고 개울물은 불어나서 굉음을 내면서 흘렀다. 명문은 꼼짝없이 그 비 내리는 산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밥을 해먹을 수 없어서 생쌀을 씹다가 그것도 나중에는 곰팡이가 나서 굶었다고 했다. 방안이 습기로 축축해져서 잠을 잘 수 없게 되자 아예 잠도 자지 않았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 흘러갔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고도 개울을 건널 수가 없어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때 그는 이제 빗속에서 명문의 인생이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공포가 엄습해 오더니 나중에는 그것도 이내 잊어버리게 되더라고 했다. 그리고 밤낮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죽더라도 생사를 결판내는 공부나 하자.?하는 마음으로 좌복에 앉아 그야 말로 용맹정진을 했다고 한다. 방안은 비좁고 문 밖엔 비가 내리니 다리를 펴고 운동을 할 수도 없어 줄기차게 앉아만 있었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보낸 것이다. ---「좌탈입망한 명문 스님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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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스승을 찾아서
고승들은 선 수행을 어떻게 하는가? 혹은 누가 고승이고 누가 땡중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를 꿰뚫어 읽을 수 있는 선지식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스스로 선 수행의 만행으로 고산명찰 뿐만 아니라 누추한 암자에까지 찾아다니면서 오늘날의 불교계의 참 스승을 찾으려고 했던 효림 스님이 땡중에서부터 대사에 이르기까지 만난 참된 선지식에 대한 일화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민중의 사표가 되고 수행자들의 푯대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선각자로서, 혹은 은둔자로서 큰 족적을 남기신 선승들의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괴각승 혜수, 신비한 비구니 연화 스님, 단식의 청허 스님, 죽비소리의 성철 스님, 외곬의 원진 스님 등 높은 스님들께서 우리 시대의 비밀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진단하며, 삶의 깊이를 은유하고 있는지를 발견한다.
만행을 통해서 참된 스승을 찾는 일은 시대의 한 중간을 가르려는 뚝심과 진리를 향한 무욕의 용맹정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 그 중심을 철장 하나에 의지해서 당당히 걸어가신 효림 스님의 큰 마음이 아니고서는 이 분들의 비밀스런 진리를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비밀을 수를 놓듯 하고 있는 책이 곧 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