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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속 침묵 속으로 한적한 곳에 살면서 설악에 눈이 내리고 여광주(麗光酒) 나를 그리워하는 까닭에 소월 시를 차운하다 시월 너의 마음도 강물이 흐른다 갈대 낙화처럼 꽃샘추위 봄비가 오면 2부 무명(無明) 도피자 숲 속에서 열두 발 상모 가객(歌客) 사잇길 외롭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배신 1998년도의 영음(詠吟) 소주잔을 비운다 사막에서 네 이름같이 고운 달빛이 3부 길을 가며 바위도 흔들린다 늦가을 항해(航海) 내 시의 자화상 금시조(金翅鳥) 송년(送年) 까닭없이 표적 투우(鬪牛) 저 산같이 되려면 피 씻김 4부 뱀 똥개 저항 나무 어느 게이의 고백 어느 택시 기사 더 깊이 뿌리내리고 살 일이다 삼신할미 군인들은 모른다 티베트 박물관에서 천산(天山) 어느 혁명가의 묘비명 해설│이경철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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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빛깔과 향기, 우주적 파문
해설을 쓴 이경철 문학평론가가 말했듯, 이번 시집의 주요한 시적 정서는 ‘그리움’이다. 승려로서, 인간으로서의 ‘번뇌’, 세속과 불가의 접경에서 오는 ‘번뇌’를 열두 발 상모 자락 풀리듯(「열두 발 상모」) 사무친 ‘그리움’으로 풀어내는 가없는 지경의 시심(詩心)이 눈부시다. 두 번째 시집의 해설을 썼던 공광규 시인이 임효림의 시를 두고 “사회정치적 변혁의 상상력을 항상 시에 발휘”한 면이 컸다고 하였듯 효림의 전작에서 두드러졌던 시세계는 잘못된 권력을 표적으로 삼은 역심, 저항의 정서였다. 아무 생채기도 안 내고/꽃밭의 꽃들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같이/향기만 안고 가자//무엇보다 우리는 시인이므로/이 사람 저 사람의 날카로운 말과 말의 사이/그 미묘한 사잇길로/아무 상처도 입지 말고 지나가자 (「사잇길」 부분) 어느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사잇길’, 너와 나, 이것과 저것의 틈새, “날카로운 말과 말의 사이”로 가자는 ‘순리’ 지향의 시적 정서가 향하는 곳은 ‘그리움’이다. 표제를 따온 시 「꽃샘추위」에서는 질투와 사랑을, 추위와 따뜻함을 한통속으로 놓아 피아의 경계를 허물더니 “삶이 허무하고/존재의 부피가 먼지알 같을지라도/내가 항해를 멈추지 않는 한/우주는 내 안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항해」)에서 보이듯 우주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대승적 그리움, ‘나’라는 하찮은 존재, 허무한 삶을 구원하는 큰 그리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높기는 그중에 푸른 하늘이 가장 높은데/그대의 노랫소리 가운데서도/높고 고운 소리는 하늘까지 가닿고//깊기는 그중에 사람 뱃속이 가장 깊은데/그대의 노랫소리 가운데서도/깊고 간절한 소리는 창자까지 울리고//이승에서 저승으로 오고 가면서/슬픈 이를 더욱 슬프게/그리움이 사무쳐 더욱 그립게/그대의 노랫소리 두루 울려라 (「가객(歌客」 전문)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장 깊은 곳까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삼세삼계 두루 울리는 시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이 향기로운 시집이다. 해설 중에서 햇볕에 그을린 저 바윗돌도 껍질을 벗기면 순결한 속살이 있다 그 속살에는 천둥소리도 들린다 천둥소리에는 도랑물도 흐른다 ---「속」전문 언제인가 감동은 너무 커 먹먹한데 도저히 말로썬 표현할 수 없는 시를 만났을 때 불현듯‘시시주선(詩時酒禪)’이란 말이 찾아들었다. 네 글자 한 자 한 자가 똑같이 묘오한 깊이를 지닌 동족(同族)으로 시집 원고를 다 읽고 권두에 오른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선과 시, 역설(逆說과 연기(緣起)의 시법(詩法)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말로써 드러낼 수 없는 묘오한 선(禪)적 지경과 그것을 기어코 언어로 표현해내야만 하는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