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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서는 한 사내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 옆집에서는 오디오를 틀고 있다. 건너편 집에서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위층에서는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웃고 있다. 마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강 위에 떠 있는 배에서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딸이 통곡하고 있다. 인류의 슬픔과 기쁨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내게는 단지 그들이 법석을 떨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 pp 5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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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자 이욱연 교수가 20여년 동안 루쉰을 읽어오면서 메모해두었던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감명 깊었던 구절과 명구들을 모은 <희망은 길이다>는 루쉰의 산문과 사상의 요체를 모아 놓은 것이다. 추상적 이론이나 사상을 담은 다른 책들과 달리, 루쉰 스스로가 극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겪는 중국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하여야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사고한 뒤 나온 글들이다.
루쉰이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으면 존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라는 그의 소신은 목각판화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문맹자가 많은 근대 중국에서 국민을 교화하고 계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루쉰에게 판화는 하나의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대중과 만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번 책을 통한 한국의 대중적인 판화가 이철수와의 만남은 가히 '한줄의 글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촌철살인의 힘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힘 있게 다가설 것이다. 서문 말미에 판화가 이철수가 "루쉰의 글처럼 군더더기 없이 진실과 직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새로운 시도로 엮어낸 <희망은 길이다>는 진실과 맞선 날카로운 직관의 정수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루쉰의 글과 이철수의 판화가 어우러져 서로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갈리면서 나오는 두 사람의 현실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육체적 질병보다 정신적 병으로 죽어가는 중국의 시대상황을 안타까워했던 사상가 루쉰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절망에 저항하면서 희망을 찾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청년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어른들에게는 삶에 대한 통찰을 주고,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지혜로움을 주고, 지식인들에게는 겸허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