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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3부 옮긴이의 말 어둠의 기억들 |
Patrick Modiano
파트릭 모디아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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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수 없는 과거, 불안한 미래. 그리고 발밑에서 무너지는 불안한 바닥 같은 현실
현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가장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신원 미상 여자』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언제나 일인칭 남성 화자의 입장에서만 서술하던 그가 처음으로 여성 화자를 내세워 화제가 된 소설이다.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모디아노 특유의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과 적막한 슬픔이 느껴지는 몽롱한 문체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마침내 집요하게 추적하던 정체성의 문제마저 놓아버린 듯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에겐 이름도 성(姓)도 없다. 그는 더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聽者)일 뿐이다. 마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이름 모를 여인의 사연을 듣는 것처럼.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쓸쓸한 샹송의 가사를 되새기는 것처럼. 사춘기를 막 지나 소녀에서 여인이 되려는 여자들이 겪는 생의 편린들 흔적, 희미한 정체성, 구멍 뚫린 기억…… 『신원 미상 여자』에는 이름 없는 젊은 여자 세 명이 화자로 등장하면서 각자 그들의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첫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자는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파리 행 밤기차에 오른다. 파리에서 그녀는 실명을 알 수 없는 한 남자의 애인이 된다. 타인의 신분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해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끌려가 사라져버린다. 둘째 이야기 속의 여자는 안시라는 도시의 수녀원 소속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더이상 음울한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반대 방향의 버스에 올라탄다.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된 그녀는 자신이 돌보게 된 아이들의 아버지가 던진 함정에 빠져 예기치 못한 운명에 내던져진다. 셋째 이야기는 말 도살장이 있는 파리의 한 외곽지대에 잠시 머물게 된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새벽마다 들리는 말발굽 소리, 피 묻은 장화를 신고 근처 카페를 드나드는 도살꾼들…… 그녀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파리의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다 ‘자아의 부름’이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명상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파트릭 모디아노 최초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린 소설 모디아노가 『신원 미상 여자』에서 최초로 여성을 화자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성에 관한 중요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결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에마뉘엘 베를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 속의 ‘나’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관점을 취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는 그의 고백처럼 이 소설에서 그의 내레이션은, 마치 이 ‘신원 미상 여자’들에게 전이되기라도 한 듯,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함과 예민함으로 우리를 홀린다. 모디아노 특유의 절제된 어조, 투명한 어휘, 깊이 스며드는 여운이 ‘신원 미상 여자’들의 세계를 몽환적인 베일로 감싼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베일을 찢는 잔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체포, 살인, 도살… 꿈을 꾸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에겐 이 현실마저 과거일 뿐이며, 그것 역시 추억이라는 안개로 덮이고 만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도 ‘신원 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