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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시절
옮긴이의 말 파트릭 모디아노 연보 |
Patrick Mod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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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인생은 그렇게, 서른다섯 살이 되면 새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일까? (…) 그녀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외려 마침내 안정권에 이르고, 페달보트는 지금 그녀 앞에 펼쳐져 있는 것과 같은 호수 위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미끄러져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란다. 그들은 떠나갈 것이다. (13쪽)
그리고 그들의 꿈은 너무나도 거세고, 음악을 통해 삶에 대한 저 따분한 예측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너무나도 난폭한 것이어서, 귀청을 찢을 듯한 기타 소리와 쉬어빠진 그 목소리들이 벨륀에게는 종종 사람 살려 하고 내지르는 구조의 외침으로 들리곤 했다. (35쪽) 이리하여 그의 부모의 삶을 떠받치는 중력중심과도 같았던 두 장소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고통으로 그는 땅바닥에 못박히는 기분이었다. 건물 벽면들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위로 천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고 그 끝없는 붕괴가 일으키는 구름 같은 먼지로 그는 숨이 막혔다. (88~89쪽) 그녀 자신도 그토록 대담한 스스로의 태도에 놀랐다. 그러나 갑자기 더이상 그 어떤 사람도 무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소심함이라든가 거리낌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다 녹아 없어져버려서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25쪽) 램프의 불빛이 오딜과 루이를 강하게 비추고 있었고 두 사람은 소파에 매우 가깝게 붙어앉아 있었다. 하워드와 액스터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나비 수집가가 천 위에 핀으로 고정시켜놓은 두 마리의 나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190쪽)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하고 루이가 말했다. 조금 전부터 그 방에서 그는 옛날 학교에 다닐 때, 그리고 군대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예속과 질식의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잇따라 지나가고, 내가 도대체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언제나 무엇에 사로잡힌 수인이 되어 살 것만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200쪽) 그 무엇이, 훗날 그게 다름아닌 자신의 청춘 시절이 아닌가 자문하게 될 그 무엇이, 그때까지 그를 짓누르고 있던 그 무엇이, 마치 어떤 바윗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굴러떨어지다가 마침내 한 다발의 물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지듯이, 그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244쪽)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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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파트릭 모디아노가 투명한 우수의 문체로 그려낸 청춘 시절의 이야기
『청춘 시절』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일곱번째 소설로 그에게 공쿠르상을 안겨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후 발표한 첫 작품이다. 1968년 『에투알 광장』으로 등단한 이래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공쿠르상,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문학상을 휩쓸며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총 스물여덟 권의 소설을 발표한 모디아노는 모방할 수 없는 분위기와 투명한 우수의 문체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그의 문학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이 적절히 요약한 ‘기억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청춘 시절』은 1인칭 서술이 대부분인 그의 작품들에서 보기 드문 3인칭 소설이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견고한 구조를 갖춘 역작이다. 액자형식으로 된 도입부의 안정된 현재는 이 소설의 핵심인 지나간 청춘 시절을 메우는 틀과 같아서 과거를 어둠 속에 떠 있는 꿈처럼 아름답고도 덧없는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든다. 모디아노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문체는 이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너져버린 과거를 등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미래로 뛰어들어야 하는 청춘들의 불안은 그의 문체 속에서 밝게 빛난다. 충격적일 수도 있는 사건이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심한 언어로 서술되는 까닭에 독자는 뜻밖의 ‘오싹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한 프랑스 독자가 이 소설을 두고 “가끔 오싹하게 만드는 리듬의 느린 왈츠”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청춘 시절』은 1983년 모셰 미즈라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1985년 페터 한트케가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페터 한트케는 이 작업에 대해 훗날 “나로서는 프랑스에 감사할 일이다”라고 소회를 밝혀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서른다섯에 돌아보는 스무 살 시절 그 아름답고 덧없는 시간 두 아이의 부모인 루이와 오딜은 동갑내기 부부로 프랑스 산골 마을에 산다.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오딜의 서른다섯번째 생일을 축하하지만 십오 년 전 이들의 인생은 무척 달랐다. 그때 루이는 막 제대해 앞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범법자 세계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 직전이었고, 오딜은 다락방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중 한 레코드 회사 직원의 눈에 띄어 앨범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그 직원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그렇게 가족도 없이 청춘과 함께 난파당한 루이와 오딜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수상쩍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며 도시를 배회한다. 핀으로 고정시켜 놓은 두 마리 나비처럼 아름답지만 현실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이들은 마지막 임무를 남겨두고 중대한 결심을 하는데… 모디아노의 ‘청춘 시절’은 “행복하고 단정하고 자신만만한”, “공기만 먹어도 사는” 때가 아니다. 가족이나 직업 같은 표점이 없는 루이와 오딜에게 청춘 시절이란 “하찮은 일이나 하게 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먹고살 수밖에” 없는, “만사가 희미한 윤곽뿐인” 시기이며 “좋지 못한 짓”을 하기에도, “좋은 짓”을 하기에도 너무 젊은 시절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엔가 좀 든든한 것에 매달리고 싶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물어볼 상대도, 용기도 없다. 오직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자신들뿐. 그 시절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특히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특히 그 시절에는. 내게는 그 어떤 닻도 없었다. 가족도 직업도. _파트릭 모디아노(1981년 『플레이보이』 인터뷰 중)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들처럼 『청춘 시절』 역시 자전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주인공 루이는 파트릭 모디아노 자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소설 속 루이의 현재 나이는 모디아노가 작품을 집필할 당시 나이인 서른다섯 살이다. 소설 속에서 7월 말로 밝힌 루이의 생일은 모디아노가 태어난 7월 말을, 밤무대 댄서였다는 루이의 어머니는 배우였던 모디아노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수상쩍은 세계에서 루이를 비서처럼 부리는 브자르디는 불확실한 신분 상태로 각종 사업으로 분주했던 모디아노의 아버지가 투영된 모습이다. 아버지의 흔적을 그러모으는 루이의 행동 또한 모디아노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소설 속 영국 체류 이야기도 모디아노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