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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김태희 (taengee@yes24.com)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과연 얼마 만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가족, 이 단어만큼이나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가 또 있을까? 그만큼 복잡미묘한 감정과 의미를 담고 있는 게 바로 '가족'이다. 때로는 미워 죽겠고, 때로는 눈물 나게 고마운 우리 가족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 출간됐다. 『가족입니까』는 핸드폰 광고로 인해 엮인 4명의 인물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4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4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인물을 통해 지금 우리의 가족,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예린'이는 엄마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연예인의 길을 가고 있는 십대 소녀이다. 왜 연기를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달려오다 '가족'을 주제로 한 최신 핸드폰 광고의 '딸' 배역을 맡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안지나 팀장'. 광고 기획사의 팀장으로 이번 핸드폰 광고를 맡고 엉겁결에 자신이 직접 '엄마' 역할을 하게 된다. 결혼도 안 한 30대 후반의 싱글녀가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안지나 팀장'의 말썽꾸러기 조카 '재형'이 등장한다. 핸드폰 때문에 엄마와 싸우고 집을 나와 이모집에 머물다 새 핸드폰을 얻겠다는 속셈으로 광고 속 '아들'을 맡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바로 '아빠'. 잘 안 팔리는 책의 출판사 사장인 '박동화 선생님'이 우연치 않게 외도의 길을 걸어 광고를 찍는다. 집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자 아빠일 뿐이다. 이렇게 임시 '가족'이 된 네 사람이 핸드폰 광고를 통해 새로운 길에 접어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핸드폰 광고의 에피소드는 밤 새 트럭 운전을 하느라 잠 못 자는 아빠에게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는 딸, 귀가가 늦은 딸에게 어떤 문자를 보낼까 고민하는 엄마, 공부에 지친 동생에게 익살스런 동영상을 보내주는 누나와 같이 핸드폰을 통한 가족간의 소통을 담고 있다. 하지만 네 명의 주인공 중 어느 누구도 가족들과 이런 대화를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인물들이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가족이 사실은 이렇지 않을까 싶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족. 학교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엄마, 아빠, 누나, 동생은 요즘 무슨 일이 있는 지도 모르고 지낸다. 그리고 나 또한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숨기는 게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소설 속 갈등은 핸드폰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친구와 전화하느라 아빠 얘기는 뒷전이고, 게임 다운받은 핸드폰 비용 때문에 엄마랑 다투고, 엄마가 걸어온 전화는 바쁘다는 핑계로 받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어트리는 것 또한 '핸드폰'이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짧은 문자 메시지 몇 줄 안에 담아본다. 긴 말 대신 한 글자의 대답일 때도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 바로 '지금'이어야 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야기가 다소 인위적일 수도 있지만 가족의 대화 그리고 핸드폰을 통해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는 바로 우리의 가족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실타래 같이 서로 얽혀서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남이면 이해하고 넘어갈 일도 가족이면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남이면 무시하고 넘어갈 일도 가족이라 상처를 남기게 된다. 가족이라는 것도 낡은 집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어서 편하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 닳아서 자꾸 탈이 나고 손을 보아야 하는 집 같은 존재들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자꾸 고치고 돌보면서 내내 더 살아가야 하겠지. - 『가족입니까』<아르고스의 외출> 중 『가족입니까』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현실은 달라진 게 없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겠지만 아주 조금은 가족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핸드폰의 기능이 늘어남에 따라 대화의 통로도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반해 가족들 사이에 하루 한 마디도 나누기 어려운 요즘. '예린', '안지나 팀장', '재형', '박동화 선생님' 네 사람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가족, 그리고 그 구성원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이야기가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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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아이들, 그 백 번째 책 『가족입니까』
2003년 첫발을 내디딘 출판사 ‘바람의아이들’이 7년 만에 백 번째 책을 출간한다. 일러스트 없이 고학년 동화를 펴내고, 문학성 높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2004)를 출간해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등 지난 7년 동안 바람의아이들이 우리나라 아동문학 출판계에 몰고 온 새 바람은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인 작가 발굴이다. 특히 저학년, 고학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바람단편집’은 적극적으로 신인들의 작품을 실어 여러 작가들의 등단 무대가 되기도 했다. 『가족입니까』는 바람의아이들이 펴내는 백 번째 책이자 여섯 번째 바람단편집이기도 하다. 바람의아이들에서 첫 책을 냈거나 신인 시절을 함께 한 작가 네 사람(김해원, 김혜연, 임어진, 임태희)이 공동 작업으로 완성한 『가족입니까』는 ‘가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한편, 문학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작업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족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담고 있다.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가족에 대해 대답한다는 것은 어려운 수학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도 까다로운 일이다. 어쨌거나 방정식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답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으므로.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둥지인 가족이 누군가에게는 올가미나 족쇄, 심지어는 조폭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니 가족에 대한 정의만큼 보편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또 있을까? 모든 사람은 자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 다른 이의 가족이나 불특정한 가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족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 이유는 가장 유력한 정답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보기 위해서다. 더욱이 이제 막 가족이라는 울타리 근처 안과 밖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가족을 묻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다. 『가족입니까』는 네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쓴 작품집이지만, 이 주인공들은 서로 만나고 교류한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가족을 콘셉트로 한 핸드폰 광고의 모델들이라는 것. 광고 속에서 각각 엄마, 아빠, 아들, 딸을 연기하는 이들에게는 각자의 가족이 있고 각자의 문제가 있고 각자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자신의 꿈인지 엄마의 꿈인지 모를 연예인이 되기 위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예린이,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엄마와 자꾸만 어긋나는 재형이, 잘 나가는 독신여성으로 홀어머니와의 관계가 여의치 않은 안지나 팀장, 언제나 퇴근했을 때면 아내와 딸이 집에 있어주길 바라는 박동화 아저씨. 가족의 형태도 다르고 가족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다르지만 이들은 핸드폰 광고를 찍으며 새삼스럽게 묻게 된다. 가족이 뭐지? 가족에게 나는 뭐지? 가족에 관한 네 편의 이야기, 가족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건 말썽만 안 피면 충분할 텐데 그걸 못해서 불화를 일으키건 십대 아이들에게 가족은 다소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예린이는 과욕에 불타는 엄마만큼이나 고분고분 희생을 감내하는 아빠와 남동생이 부담스럽고, 재형이 역시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하고 사소한 오해 끝에 가출 아닌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예린이가 홀로 의상 가방을 챙겨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재형이가 혼자 사는 생활을 꿈꾸며 이모네 집에서 살게 됐을 때, 아이들은 좀 더 거리를 두고 가족을 살피기 시작한다. 가족은 공기나 물처럼 결핍의 순간에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는 이 아이들이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면 결코 볼 수 없었던 큰 그림을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핸드폰 광고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가짜 가족 또한 묘한 생기를 가져온 듯.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39살 독신여성 안지나 팀장이나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박동화 아저씨에게도 서로를 챙겨주는 광고 속 가족은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광고를 찍는 동안 가족은 폭력이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안지나 팀장도, 아내와 딸을 집에 딸린 부속물처럼 여기던 박동화 아저씨도, 자신을 돌아보고 차츰 잘못을 깨닫게 된다. 진짜를 이기는 가짜의 힘이랄까? 하지만 가족에 관한 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이들 아마추어 모델들이 광고를 찍다 울컥하는 것처럼 모범답안 같은 가족을 볼 때라도 우리가 떠올리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의 가족이니까. 『가족입니까』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핸드폰 광고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귅 한 편의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만큼 자연스럽게 서로를 넘나든다. 그런데 네 명의 작가가 쓴 작품들이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을까? 동일한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각기 다른 사건들을 다룬 옴니버스 작품들은 많지만, 이렇게 여러 작가가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각각의 작품 뒤에는 ‘작가의 말’이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이 공동 작업을 하느라 작가들이 거쳐 온 고난의 행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통 작가의 말처럼 어떻게 읽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보다는 작업 과정을 들려주고 있어 작가 노트를 훔쳐보는 것 같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