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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냄새, 혹은 시선
2.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3. 타피오카 소녀 4. 처음 본 내 모습 5.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르지 않아 6. 유나의 집 7. 강을 따라서 8. 훔치고 싶은 빛깔 9.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 뜻대로 되지 않는 일 11. 산을 오르다 12. 내 애인의 약혼녀 13. 아쿠아마린 14. 가질 수 없다면 15. 카오스의 나날 16. 외면, 혹은 도피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18. 시간의 걸음걸이 19. 예상 밖의 일들 20. 그리고 바다를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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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주 동안 우리는 어둠에 취해 있었다. 그동안 저마다 끌어안고 살아온 어둠이 상대의 어둠을 알아보고 본능적으로 이끌려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어둠은 한편으론 빛을 원한다. 스스로는 결코 빛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둠 속에서 그가 쓸쓸하게 다가왔다. 내 곁에 누울 때 느껴지는 체온마저도 쓸쓸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뜨겁게 서로에게 다가갔다. 서로의 몸을 빈틈없이 밀착하면서 서로의 체취를 함께 호흡하는 동안 우리는 완전히 서로에게 속해 있었다. 푸른빛의 절정을 향해 솟아오를 때 그는 완벽하게 나의 소유였다. ---p.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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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의 좁은 침대는 그대로 천국이었고 또한 그대로 지옥이었다. 산타나는 저녁 식사도 마다하고 내 시선까지도 외면한 채 나를 침대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욕망은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았다. 그 욕망은 서로에게 전염되고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우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맹목적인 몰두와 광포한 집착의 절정으로…….
---p. 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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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이 손이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이것만은 제발 환각이 아니기를……. 나는 힘주어 그 손을 마주 잡는다. 이제는 더 이상 예상 밖의 일들에 시달리지 않기를…….
내 간절한 바람에 답하듯 어디선가 희미하게 아쿠아마린의 음률이 들려온다. 나는 다시 한 번 힘주어 손을 잡는다. 그는 지금 틀림없이 내 곁에 있다. 그는 분명 나와 함께 있다. 안도감 속에 나는 비로소 눈을 감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푸른빛이 눈앞에 가득 들어찬다. 깊게, 투명하게, 아주 오래오래. ---p.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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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면 부서지지만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유리바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남자를 보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체취에 이끌린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특별한 동기도 없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과 집착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약혼녀가 있는 남자라는 사실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열악한 상황이 더욱 남자에게 몰두하게 만든다.
이러한 내용은 일반 독자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그래서 보편적인 상상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영영 안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김으로써 생애 전체가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애 전체를 흔들어놓는 지점에 '유리바다'가 있다. 다가가면 부서지지만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바다. 이건 애간장을 녹이는 사랑일 수도 있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되었든 우리는 누구나 '유리바다' 하나씩은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갖고 있지만 잊고 지냈던, 우리 삶의 '유리바다'를 뜨겁게 만나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