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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umpa Lah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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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이름으로 살았던 인생이야기
도서3팀 전지연(penpen97@yes24.com)
2010.06.09.
이름은 영어에서도 고유명사로 분류된다.
한 사물을 다른 것과 구분짓는 명칭으로, 남들이 나를 구분해서 지칭할 때 이름을 부른다. 내 경우는 특히 '지연' 이라는 이름이 유행인 시절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한 반에 같은 이름의 친구들이 꼭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내 이름이 특별하다거나, 꼭 나와 맞는다는 등의 각별한 인식을 하지 않았던 듯 하다. 지금은 모 유명연예인의 이름과 비슷하여,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악수를 청하듯 의례 주고받는 농담처럼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 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연예인의 이미지와 비슷하지도 않지만 (물론 외모도 많이 다르다!), 이름이 그 사람의 첫인상이나 편견을 갖게 만들 수도 있기에 꽤 신경쓰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처럼 흔한 이름이 아닌, 너무나도 특별한 이름 덕에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고골리가 그러하다. 주인공인 고골리는 미국국적의 인도인으로, 이런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고골리 강굴리) 사연이 있다. 인도의 경우, 친척의 연장자가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께서 손자의 이름을 직접 적어 보낸 편지가 머나먼 미국땅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게 문제였다. 20대에 인도에서 기차사고를 당하여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던 고골리의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고골리의 문학책과 손전등으로 사고현장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고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 땅에서 아내와 함께 이민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고골리' 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생사를 넘나들었던 고국에서의 아픈 추억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골리’를 그는 첫 아이인 아들의 이름으로 짓고, 심지어 아들의 생일 선물로 고골리 전집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들인 '고골리'는 이러한 아버지의 사연도 모른 채, 정작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어진 이 특별한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행사처럼 치뤘던 고향인 벵골에서의 휴가와 미국에서도 정기적으로 갖는 동족들의 모임이 그에게는 힘들었다.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인도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어찌보면 평범한 미국시민으로서의 삶을 위해 '닉킬' 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회사에 취직하고, 뉴욕 맨하튼의 상류계급의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꿈꾸는 삶을 추구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자신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인도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 이민1세대와 2세대의 가치관의 차이가 이 소설에서는 '고골리'와 '닉킬' 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말해주는 것은 주인공이 그토록 집착했던 이름 뿐만이 아니다. 내가 걸친 옷의 브랜드가 그렇고, 작품 속의 뉴욕 맨하탄의 메디슨 거리가 그렇고,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이 나를 대표하고, 삶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아버지께 선물받았던 고골리 단편 모음집을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 단편모음집을 선물하면서, 고골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언젠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 속에서 나왔다' 라고 했다." 고골리의 '외투'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고, 맨하탄의 고급 상점이기도 하며, 그의 고향인 벵골이기도 하다. 정작 외투를 벗었을 때는, 무엇으로 나를,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문화적 충돌로 겪는 이민2세들의 정체성 찾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줌파 라히리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자분자분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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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버지의 기차 사고였다. 이 사건은 처음엔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나중에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였고, 세상 저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은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담긴 편지가 캘커타와 케임브리지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고였다. 이로 인해 얼떨결에 고골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수년 동안 고골리라는 한 인간의 윤곽을 형성함과 동시에 괴롭혀왔었다. 그는 이런 임의성을, 이런 빗나감을 바로잡으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을 완벽하게 새로 창조하는 일은, 그 엉뚱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 p.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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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는 커튼이 열려 있어서 미국 여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이 중에서 누군가 출산 경험이 있을 테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본 미국인들은 공공연한 애정 표현과 미니스커트와 비키니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케임브리지 커먼에서 뒤엉켜 누워있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거대한 드럼통 같은 팽팽한 배 위에 손가락을 펼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기의 손과 발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기가 뱃속에서 노는 것도 이젠 뜸해졌다. 가끔씩 버둥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최근 며칠 동안은 손으로 치거나 발길질을 하지도, 갈비뼈를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금 이 병원에 있는 유일한 인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아기가 살짝 몸을 뒤트는 것이 느껴졌고, 그 바람에 엄격히 말해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시마는 자신의 아기가 사람들이 앓거나 죽으러 오는 장소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영 이상했다. 바랜 흰색 타일이 깔린 바닥이나 천장, 침대 위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하얀 침대보, 어디를 둘러보아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인도에서는 아기를 낳을 때 남편과 시집, 그리고 집안일을 떠나 부모님이 계신 친정집으로 간다고. 그러니까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아기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 pp 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