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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의 매력
왜 표지가 있어야 할까? 상호 교감과 공동 작업 발가벗은 책 획일성과 무질서 내 표지들 살아 있는 표지, 죽은 표지, 완벽한 표지 후기 옮긴이의 말 책이 입은 옷들 |
Jhumpa Lah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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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때 나는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나의 다른 부분이 옷을 입고 세상에 소개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내 말에 덧입혀지는 것, 내 책의 표지는 내 선택이 아니다.
--- p.19 책이 완성되고 세상에 입장하려 하는 순간에서야 표지가 나온다. 표지는 책이 탄생했음을 내 창조 과정이 끝났음을 표시한다. 내 손에서 독립해 자신의 생명을 갖게 됐다는 사실을 책에 쾅쾅 도장 찍는다. 작업이 마감됐음을 알려준다. 출판사에 표지는 책이 도착했음을 의미하지만 내겐 이별을 의미한다. --- p.23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 p.25 아무튼 표지는 작가와 이미지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강요한다. 강요된 관계이기 때문에 극도의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난 당장 멀어지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표지는 내 말을 만지고 내 말에 옷을 입힌다. --- p.26 작가로서 나는 이 ‘시각적 메아리’를 찾지만 자주 실패한다. 표지가 내 책의 의미와 정신을 반영해주길 나도 바란다. 날 잘 알고 내 모든 작품을 깊이 이해하며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한 번만이라도 표지를 그려주면 기쁘겠다. --- p.38 독자와 책의 관계는 이제 책 주변에서 움직이는 열두명 남짓 사람들의 매개를 통해 훨씬 더 많이 형성된다. 작가인 나와 텍스트,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 보조해주는 자료가 없는 외로운 책 말이다.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가능케 하는 미스터리. 내 생각에 발가벗은 책도 스스로 설 힘이 있다. --- p.48~49 나는 웅장한 이탈리아 건물 안에 자리한 로마의 한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쓴다. 이탈리아 도서관인데도 미국 책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이곳을 안 것이 마치 운명의 신호인 듯하다. 이곳에서 영어권 작가인 내가 이탈리아어로 첫 책을 쓰길 꿈꿨고 결국 써냈다. 이 안에서 나는 과거에 둘러싸여 있다. 아버지의 오랜 사서 생활, 어려서부터 드나들던 도서관, 미국에서 내가 사랑했고 다녔던 모든 도서관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탈리아어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바로 이곳에서 나는 길을 바꾸어 글을 썼다. --- p.59 평생 나는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둘 다 내게 강요된 정체성이다. 이 갈등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작가로서 나는 늘 같은 올가미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출판사는 내 이름과 사진을 보고는 인도를 연상시키는 틀에 박힌 것들 즉 코끼리, 이국적인 꽃, 헤나로 문신한 손, 종교적 혹은 정신적 상징인 갠지스 강 등이 담긴 표지를 이내 보내온다. 내 이야기의 대부분이 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그래서 갠지스 강과는 큰 거리가 있다는 데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 p.65 완벽한 표지는 뭘까?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대부분은 우리의 옷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 p.79 나는 어딘가에 속하고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한편으로 어딘가에 속하는 걸 거부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정체성이 날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이 두 길, 이 두 충동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 p.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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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과정이 꿈이라면 표지는 꿈에서 깨는 것
작가와 책, 그들을 둘러싼 프로세스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 줌파 라히리에게 옷은 늘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 평범한 미국 소녀의 옷을 입길 원했던 작가는 인도 전통 의상을 강요하는 엄마와 갈등을 겪으며 입는 옷이 언어나 음식처럼 우리의 정체성, 문화, 소속을 표현해준다는 걸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인도에서도 입고 있던 옷 때문에 이방인으로 인식됐던 두려움이 남아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적당한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고,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게 간단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에서는 옷이 하나의 메타포로 자주 사용된다. 그건 남들이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본질 자체를 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피부색, 외모, 입고 있는 옷이 아닌 그녀가 자신의 존재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 봐주기를 원한다. 그런 바람은 작품에도 투영된다. 그녀의 말에 덧입혀지는 옷, 즉 책 표지가 아닌 그 안의 내용을 독자들이 봐주기를 바란다. 표지는 단순히 책이 입는 첫 번째 옷일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시각적 해석 혹은 출판사의 견해와 갈망이 담긴 홍보용 해석이며, 작가와 독자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면서 작가의 말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과 표지 사이에 늘 차이, 불균형이 있음을 느낀다.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25쪽에서 줌파 라히리는 물론 표지의 역할과 필요성을 인정한다. 책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구분하기 위해, 진열대에서 독자의 이목을 끌어 구매에 이르게 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하지만 마치 옷이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우리의 뭔가를 나타내주듯, 표지를 입자마자 책은 새로운 개성을 얻고 읽혀지기 전에 벌써 뭔가를 표현한다. 그녀는 이 점을 걱정한다. 표지가 작가의 말을 다른 언어로 해석하는 일종의 번역이라면, 번역인 표지가 내용에 충실해야 하는데 내용을 압도할 수도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표지가 안에 있는 것을 감추는 가면이 될 수도, 독자를 유혹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책이 말하는 것과 표지가 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으므로 진실과 거짓 사이의 대립을 일으키기도 한다. 줌파 라히리는 표지가 자신의 책의 정신을 반영해주길 바라기에 작가와 표지 디자이너 사이의 상호 교감과 공동 작업을 원한다. 예컨대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친언니 버네사 벨의 공동 작업을 꿈꾼다.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라고 일컬어진 이 작업들은 줌파 라히리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또한 줌파 리히리는 표지가 없는 ‘발가벗은 책’을 그리워한다. 도서관 사서의 딸이었던 그녀는 어린 시절 도서관의 무수히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 표지를 떼어 하드커버로 묶은 책들은 그 무엇도 먼저 드러내지 않아서 내용을 알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발가벗은 책들에서 작가들은 그들 말로만 자신을 드러냈고, 그래서 자유로운 독서를 가능케 했다. 독자와 책의 관계는 이제 책 주변에서 움직이는 열두 명 남짓 사람들의 매개를 통해 훨씬 더 많이 형성된다. 작가인 나와 텍스트,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 보조해주는 자료가 없는 외로운 책 말이다.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가능케 하는 미스터리. 내 생각에 발가벗은 책도 스스로 설 힘이 있다. -48~49쪽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평생 갈등을 겪어왔고, 이 갈등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늘 같은 고민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한다. 출판사는 작가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인도를 연상시키는 틀에 박힌 것들을 표지로 구상했다. 이런 잘못된 표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느낀 불안을 자극했다. 나는 누구일까? 난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옷을 입고 있고,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읽힐까? 작가는 그 질문을 피하기 위해,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녀의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각 나라의 정체성, 집단 취향이 반영돼 같은 책이 여러 표지를 입고 나온다. 세계 여러 나라 백여 권의 다른 표지를 경험한 그녀, 이른바 서로 다른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줌파 라히리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려 애썼지만 영원히 두 충동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며 오히려 이 혼란스러운 정체성이 그녀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말한다. 작가가 뭔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달라지려 노력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그 노력 안에서 보호받음을 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사려 깊은 줌파 라히리 식 산문적 풍경 책이 입는 다양한 옷들을 통해 보는 재미를 더하다 이 책은 줌파 라히리의 놀라운 직관력을 다시금 보여준다. 어릴 적 입고 있던 옷으로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경험이 자신의 일부인 책에 투영되어 표지를 책이 입은 옷, 하나의 강요된 정체성으로 파악했다는 흥미로운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출판사와 독자들에게 책을 만들 때의 자세와 책을 구매할 때의 자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출판사는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관심을 끌 만한 수많은 정보를 표지에 넣고 때로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을 싣기도 한다. 독자들 역시 작가의 명성과 수상 경력, 매력적인 표지와 문구에 이끌려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표지에 이끌려 책을 선택했다가 실망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선입견 없이 작가의 말을 봐달라고 부탁한다. 작가와 텍스트, 내용과 표지, 예술과 상업성 등의 관계를 진진하게 이야기한 이 산문집은 기존 줌파 라히리의 열혈 독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신선한 책이 될 것이다. 책에 언급된 표지들은 말미에 부록으로 실었다. 어릴 적 작가로 하여금 표지만 보면 구매하게 이끌었던 리처드 베이커의 그림이 새겨진 포켓북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훌륭한 시각언어로 표현했던 친언니 버네사 벨의 표지, 아름다운 하나의 질서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출판사 전집의 표지들, 신뢰의 상징이 된 펭귄북스 포켓북, 낡은 책들을 그림으로써 책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미국인 화가 리처드 베이커의 책 그림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책 표지들 등 다채로운 사진 자료를 통해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더해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책 내용의 ‘시각적 해석이자 번역’인 책 표지가 아름답다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책에서 만나는 단어, 문장, 작가의 영혼이 아닐까. “독자가 내 책에서 만나는 첫 단어는 내가 쓴 말이고 싶다”는 줌파 라히리의 바람처럼.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무려 백여 개의 책 표지를 경험한 그녀. 책 표지에 대한 그녀의 독특하고도 고전적인 사색은 ‘얼굴’일 수도 ‘가면’일 수도 있는 표지를 넘기고, 그 너머의 영혼을 만나고 싶은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갈망할 때 그러하듯. -김숨 소설가의 추천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