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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프롤로그 1부 사이버 신인류는 누구인가 1. 사이버 신인류의 등장 : 웬디는 문제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 디지털로 숨쉬는 신인류 새로운 방법으로 배운다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2. 사이버 세상에서의 생활 : 웬디, 피터팬을 만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을 때 다시 카오스 사이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이버 놀이터로 몰려드는 아이들 이미지로 말하기 재미있는 인생, 내가 만드는 삶 당신은 아바타가 있나요? 아이템으로 부자되기 진짜 돈으로 사는 아이템 내가 만드는 세상 3. 사이버 세상의 오타쿠 : 피터팬의 정체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 모험이 위험으로 느껴지는 이유 "어른들은 몰라요" vs "아이들이 무서워요" 사이버 피터팬을 이해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의 개척자, 오타쿠는 누구인가 '에반게리온'에 나타난 오타쿠의 심리 세계 폐인의 학습 방법 사회를 지키는 괴짜들 두려움을 버려라 2부 그들의 생활 방식 4. 사이버 신인류의 심리적 특성 : 네버랜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새로운 '나'를 만드는 변신의 심리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한다 멋진 자기 모습을 과시한다 거울 속의 자아가 실체가 된다 정해진 길은 없다 사이버 공간은 내 방이다 놀기 위해 산다 단편적인 이미지로 의사소통한다 사이버 신인류의 복합 정체성 사이버 공간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다 5. 온라인 게임 : 네버랜드에서 하는 놀이 게임의 천국 온라인 게임으로 숨쉬는 사람들 어른들, 사이버 세상을 현실로 착각하다 기성세대의 세계관 인터넷에서 마음껏 놀아라 미신 1 - 게임은 아이들을 중독되게 만든다 미신 2 - 게임은 아이들의 폭력성향을 높인다 미신 3 - 게임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 6. 사이버 신인류, 대중문화의 주역이 되다 : 이야기를 만드는 네버랜드 아이들 이야기 만들기의 심리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감동 수용에서 창조로 사이버 세상의 통일 그들의 닫힌 마음 - 이중성 3부 사이버를 넘어 다시 현실로 7. 사이버 세계의 중독과 익명성 문제 : 웬디, 네버랜드에 중독되다 하나의 섬을 몰려드는 항해자들 중독 행동을 유발하라 하면 할수록 더 하게 되는 이유 중독인가, 몰입인가 어른들을 화나게 하는 또 다른 바보상자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익명성일까 사이버 정체성 새로운 공간, 새로운 규범 8. 사이버 공동체 : 네버랜드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새로운 인간관계 사이버 공관에서 친구 사귀기 사이버 공동체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나 가상적인 동질성 사이버 만남이 현실로 사이버 또래집단 머드 게임, 채팅 사이버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는 신인류 9.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줄타기 : 웬디, 현실로 돌아오다 가상 세계 인정하기 현실과 환상 넘나들기 사이버 공간에 대한 오해와 이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게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온라인 게임에서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이유 대안으로서의 사이버 공간 에필로그 참고문헌 |
黃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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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인터넷 세상을 만나 폐인이 되다>
그러고 보면 폐인이나 햏자 등을 포함하는 사이버 신인류란, 인터넷의 등장으로 새롭게 출현한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주위에 있었던 소수집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현실 세계에서 눈총만 받던 괴짜들에게 새로운 행동의 자유를 주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보여 줄 수 있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나무 위에서 처음 땅으로 내려와 힘들게 두 발을 내딛은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했던 어느 괴짜였을 것이다. 이런 괴짜로 인해 인류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 수 있었듯이,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인터넷이 만든 사이버 세상을 통해 자신을 더 크게 만드는 괴짜들이 벌이는 새로운 문명의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책은 디지털 문화에 기반을 두면서 사이버 공간을 자신의 삶의 안식처로 만들기 시작한 사이버 신인류들이 누구이며 이들이 기성세대와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정 세대가 경험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과 이것을 경험하는 여러 세대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사이버 신인류로 등장한 사람들의 정체성과 이들의 행동 코드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것이다. 또한 사이버 공간을 자신이 삶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활용하는 사이버 신인류의 모습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변화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세대 변화는 이제 이 사회의 성격도 바꾸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급속한 확산은 변화의 와중에서 청소년과 괴짜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 있게 했다. 이들이 새로운 주류 집단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틀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괴짜들을 그리 환영하고 있지 않다. <오해를 넘어 예측으로> 현재 사이버 신인류가 경험하는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민은 모두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성 세대의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만 보더라도 ‘게임은 아이들을 중독되게 만든다’, ‘게임은 아이들의 폭력성향을 높인다’, ‘게임은 아이를 바보로 만든다’고 걱정을 하면서 금지하고 검열할 방법만 찾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근본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보는 사고의 틀에서 아이템 거래가 무엇이고 게임 내의 아이템과 관련한 사기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으며, PK(Player Killing: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행위)가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 책은 위에서 제시한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오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성 세대는 이들을 막연한 우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상당한 이질감과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인터넷과 이들의 힘을 과도하게 맹신하게 된 것은 우상화의 예이고,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고 검열하겠다는 것은 사이버 문화에 대한 무지와 이질감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회의 새로운 중심이 되기 시작하는 그들이 누구이며 이들의 행동과 사고 특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주류 집단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한다면, 또 이들이 보일 다양한 소비 행위나 심리적 욕구 충족 과정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국 사회가 겪어 가야 하는 변화의 주요 코드가 무엇인지, 미래의 적응 방식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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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인터넷 중독인가?
- 그들은 정말 과거에 없던 새로운 인간 유형인가? - 실명제로 인터넷 세상을 청소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옳은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 사이에서 기획되었다. <사이버 신인류, 그들의 정체> 폐인, 햏자,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프로슈머, 블로그 족…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붙인 ‘사이버 신인류’는 디지털 매체와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기술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익숙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이들의 사고와 행동이 기성 세대(기존 세대)와 구분되는 새로운 행동의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며, 이 집단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속한 세대 전환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 사회의 새로운 정체성은 현실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뚜렷하게 표현되고 있기에, 사이버 공간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이제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신인류의 시조(始祖), 오타쿠> 일본에서 오타쿠를 부각시켰던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오타쿠의 특성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에반게리온>은 전형적인 고대 로봇 만화였던 <마징가 제트>의 요소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내용과 구조를 조금씩 비튼 것이다. 두 만화를 비교해보면, 새로운 문화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마징가제트>와 <에반게리온>에는 모두 로봇이 나온다. 모두 아버지가 만들고 아들이 움직인다. <마징가제트>의 주인공 쇠돌이는 아버지가 만든 로봇을 조정하면서 지구를 위협하는 적을 무찌른다.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신지도 아버지가 만든 로봇 ‘에반게리온’을 조정하여 적 ‘사도’를 무찌른다. 두 만화 모두 주인공만이 로봇을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주인공에게 닥친 위기는 곧 전 세계의 위기가 된다. 오타쿠가 만든 만화영화에는 이들이 그토록 몰두했던, 원래의 만화에서 찾을 수 없는 ‘자기표현’이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 이것이 바로 <마징가제트>와 <에반게리온>의 차이점이다. 마징가의 경우,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로봇을 아무런 두려움이나 불안감 없이 받아들인다. 거대 로봇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그런데 <에반게리온>의 신지는 로봇을 조정하고 적을 물리치는 일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진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자신의 역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것은 적을 표현하는 데에서도 대비적으로 나타난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적의 정체는 물론 지구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우리 편’의 정체도 불분명하다. 모두 어떤 위원회에 의한 음모처럼 비추어진다. 주인공 스스로도 왜 싸우는지 납득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에반게리온>의 이야기의 절반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지 주인공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내용이 차지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출격’이라는 임무가 부여될 때 주인공은 이 사실에 놀라고 거부한다. 주인공은 “너를 위한 로봇을 만들었으니 타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갈등한다. 그리고 ‘왜’ 자신이 해야 하는지 아버지에게 되묻는다. “절 보고 이걸 타고 괴물하고 싸우라고요? 왜 저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거에요? 아빠는 저한테 관심도 없었잖아요. 싫어요. 저는 못 해요.” 적이 쳐들어오고, 빨리 에바를 조정해야 하는데 주인공은 고민하고 갈등만 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신지는 남들이 원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한다. 적을 무찔러야 하는 이유를 찾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계속 남아 있기에 스스로 주저하게 된다. 이는 남들이 부여한 자신의 모습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산업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사회적인 것이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면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 역할에 관계없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정의하고 보여주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이란 없고, 내가 알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는 경우 상당한 혼란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사회가 제공해 주는 틀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인간상이나 삶의 패러다임은 바로 이런 속성을 띠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