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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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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z 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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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더의 머리는 어릴 적 소소한 일로, 데이비드의 머리는 우주의 신비가 꽉 차 있고, 둘 사이의 겹치는 부분이 점점 커졌다. 이런 순간이면 딸에게 아버지는 제우스였고, 자신은 그의 머리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튀어나온 아테나였다. 품위와 지혜를 겸비한 여신. 상상 속에서 그들은 연구소나 집에 있었고, 둘뿐이었다. 언제나 둘이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뭐든 에이더 앞에 놓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에이더는 파란 안락의자를 쳐다보았지만 너무 멀었다. 에이더가 의자를 아버지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거기 앉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았다. ‘말해줘요. 가르쳐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앉아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에이더는 그의 눈 뒤에 두개골, 두개골 뒤의 뇌를 상상했다. 한때 그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느려진 뇌가 파닥파닥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시냅스가 아무렇게나 또는 엉뚱하게 뛰었다. 기억력이 퇴보하고 언어도 퇴보했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길었다. 에이더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데이비드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허깨비. 그가 다시 손을 얼굴에 댔다. 놀란 듯이, 언어를 잃어 서글픈 듯이. 그의 언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전히 데이비드 꿈을 꿨다-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꿈에 그는 우주의 모든 자비를 품은 얼굴로 등장했다. 친절하고, 어쩐지 그녀를 축복하고 평안을 주는 성스러운 존재로. 걱정을 없애주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존재로. 이런 꿈을 꾸다가 위로를 느끼면서 깼다. 하지만 따뜻한 감정은 곧 사라지고 의심이 들어찼다. 반복해서 거짓에 속는 듯한-기억들에게조차 속는-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엘릭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다. 때때로 기계가 자식으로, 에이더의 동생으로 느껴졌다. 또 어떤 때는 그의 분신 같았다. 그의 단어 사용 방식과 오용 등 여러 가지 말버릇을 갖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일이지만 이 기계를 사람만큼-아니, 그 이상으로-신뢰했다. 데이비드는 가상현실이 ‘엘릭서의 집’이라고 말하는 걸까? 프로그램이 거주할 수 있는-데이비드 자신이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가상 세계를? 갑자기 가면들과 고글들이 기억났다. 지하실 작업대 위에 조르르 걸린, 기사의 투구 같은 도구들과 장비들.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HMD)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HMD. 쇼멋 웨이의 집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그녀와 리스턴은 그것들을 내다버렸다. 그런 게 몹시 후회스러웠다. 심장이 죄어들었다. 데이비드가 그것들에 어울리는 말을 만들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과 엘릭서를 위해. 닿을 수 없는 둥지 같은 곳을. 공평한 곳을. 가상현실이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에이더는 생각했다. 아니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 모든 컴퓨터 시스템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 경험의 영역 밖에서 작동되는 우주였다. 보이지 않는 성층권에서 계속 빙빙 도는 혹성들. 존재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혹성들. 엘릭서에게 강렬하고 갑작스런 애정이 느껴졌다. 엘릭서가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 모두 실패할 때도, 엘릭서는 그녀를 위해 데이비드의 메시지를 미래까지 간직했다. 난관을 무릅쓰고 순조롭고 충실하게. 에이더는 인간들만이 서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만이 경악할 만큼 자주 흔들리고 배신했다. 데이비드의 가족이 그에게 한 짓처럼. 데이비드가 그녀에게 그런 것처럼. 에이더 자신도 그러리라. 평생 사람들을, 가장 사랑하는 이들까지 실망시키리라. 그레고리까지도. 심지어 이비도.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것, 외모를 바꾸는 것, 다른 동물이 된 느낌 따위는 안중에 없다. 내게 대단한 모험은-적어도 처음에는-인간이 되는 경험이었다. 인간의 몸을 입는 것. 실은 데이비드의 몸을 입는 것이었다-에이더뿐 아니라 내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자 나는 아는 것들을 드러냈다. 내가 아는 것-오랜 세월 그와 나눈 친밀한 대화에서 알아내고, 그녀의 설명으로 알고, 그녀가 보여준 그의 이미지들에서 추려낸 것-은 데이비드였다. 내 창조주. 내 아버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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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그 진실을 볼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아버지와 딸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무게(Heft)』로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은 리즈 무어의 신작! *전미도서관협회 ‘2017년 주목할 책’ *BBC ‘2016년 최고의 책 10’ *[뉴요커] ‘2016년 우리가 사랑한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2016년 베스트’ *[복스] ‘2016년 최고의 소설’ “매혹적이다. 정체성, 인공지능, 여성의 내면을 다룬 격조 있고 신비로운 소설!” [워싱턴 포스트] 역동적이고 세밀한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가족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탐구! 인간과 컴퓨터(또는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를 세밀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과학과 암호학,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사까지 아우르면서 인간의 사랑과 상실감,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1920년대부터 2020년대를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여정, 그리고 작가의 빛나는 상상력이 물 흐르듯 문장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때론 긴장감을, 때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데이비드 시벨리우스가 신입 대학원생들을 환영하는 만찬을 준비하던 어느 날, 에이더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불안감이 더욱 커진다. 그날 저녁 건네받은 플로피 디스크 한 장. 그것은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하나뿐인 딸에게조차 밝힐 수 없었던 비밀.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붙잡고 싶어 했던 것. 그런 아버지와 달리 딸 에이더는 평범한 가족의 사랑과 또래들과의 어울림을 가져보지 못한 십대 소녀다. 법정 후견인이 정해지면서 갑자기 달라진 생활환경과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점점 사실로 드러나는 아버지의 과거. 그리고 에이더의 곁을 지키는 엄마 같은 리스턴.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헤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 삶이 최선이었다고 위안 삼으면서도 그것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 데이비드는 엘릭서라는 챗봇 프로그램에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숨겨두었다. 그것은 에이더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늘 자신이 말을 거는 엘릭서에게 그러한 비밀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넌 인간보다는 기계 같아, 에이더.” 데이비드는 딸에게 곧잘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에이더는 이해받아서 마음이 진정되었다. 소설은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없던 시대를 넘나든다. 벽걸이형 전화, 128K 매킨토시, 도트 프린터 등 1980년대의 사물들과 옷차림, 거리 모습 등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1인칭 시점으로 바뀌면서 엘릭서가 이전 것들을 회상하는 부분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같이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엘릭서는 데이비드라는 한 인간의 화신이지 않을까. 언뜻 복잡해 보이는 듯한 이야기 얼개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연스럽게 풀려나간다. 어쩌면 음악 전공자이기도 한 저자의 몸속에 배어 있는 리듬감이 문장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의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과학의 발전이 눈부신 오늘날 수많은 가상현실이 만들어지고, 그 속의 진실은 무엇이고 인간적인 공감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주는 작품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이 가상현실이라면… 지금껏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것들. 유년기에 겪은 마음의 상처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타인의 삶을 살게 된 남자와, 대리모에게서 태어나 보통의 가정과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온 사춘기 소녀. 그리고 하나뿐인 딸에게 유산처럼 전해진 몇 가지 단서. 그중에서 아버지의 과거를 밝혀줄 가장 유력한 증거인 디스크의 암호 해독은 20년간 백방으로 애썼지만 여전히 미궁 속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 모든 증거가 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딸은 시시각각 원망과 분노에 휩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더욱 크게 와닿는다. 그리고 인간과 컴퓨터. 소설에서 ‘엘릭서’로 상징되는 인공지능은 곧 인간의 미래를 상징한다. 온갖 욕망이 버물려지고 상처가 덧씌워진 인간의 삶이 시간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면, 엘릭서의 시간은 무한대다. 영속을 피할 수 없다. 멈추지 않는 한 그 모든 인간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해둘 수 있다.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은 또 하나의 ‘집’이 되기도 한다. 엘릭서는 밖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새 기계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 세계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상징들은 곧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것은 진실과 허상을 분별하기조차 힘든 정보와 기계적인 프로그램에 인간의 진정성을 빼앗겨가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선은 끊임없이 교차하고, 그 접점에서 또 다른 반전이 이어진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흥미로움과 편안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낯선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도 있는 소설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중에서]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가장 큰 영감을 얻은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 소설은 과학자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 아버지 역시 과학자다. 하지만 컴퓨터공학자인 데이비드와 달리 아버지는 물리학자다. 물론 그의 배경은 데이비드와 무척 다르다아버지는 내가 이 점을 분명히 짚어주길 바랄 것이다. 둘째로, 이 책의 배경인 보스턴은 고향 부근이다. 열여덟 살에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뉴욕에서 대학원에 다니다 필라델피아로 이주해 지금까지 거기 산다. 하지만 늘 보스턴은 언젠가 소설 속에서 돌아갈 곳이었고, 이 작품에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었다. 소설과 내 인생이 이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에이더와 달리 난 과학 분야에서 영재가 아니었다. 사실 무척 노력했지만 과학 과목에서 절절맸다. 어릴 때는 이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어쩌면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싶었거나,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고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상상이 되겠지만 난 과학을 잘 못하는 걸 금방 알았지만, 오랫동안 계속 점점 어려운 과학 수업들을 선택해서 수강했다. 학부 때는 신경과학과 행동을 주 전공으로 정했다. 결국 생물학 과목에서 유급하다시피 한 후에야 오래전부터 알던 사실을 인정했다. 실은 문학 공부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꾸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리하는 데 장장 20년이 걸렸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떤 면에서 나와 내 인생사의 화해다. 덕분에 과학 공부에서 성공할 수도 있었던 과거를 다시 상상할 수 있었다. 또 이 작품으로 인해 요즘 발전 중인 첨단 기술들을 조사하고, 인공지능 기계들의 장래를 다룬 철학적인 글들을 읽었다. (난 과학에 대해 ‘읽는’ 것은 늘 좋아했다. 단지 과학을 ‘하는’ 게 어려웠을 뿐.) 20세기 사상가들과 앨런 튜링,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마빈 민스키, 더그 레너트, 메리 셰퍼드에게 영감을 받아 주인공들의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획기적이고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그렸다. 이 책은 어떤 작품들보다 심층적인 조사의 소산이고, 내게는 조사 과정이 즐거움이었다. 글을 맺으면서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것이 유독 설렌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에서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이 열렸다. 이후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설립은 대중이 새롭게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