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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진리와 믿음에 대하여
진리의 세 가지 길 / 진리의 두 날개 / 철학, 깊을수록 공허한 / 앎과 사랑의 경계 신앙의 맹목을 경계하며 / 신앙은 신앙을 의심한다 / 서로를 통하여 자신을 보다 2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의미에 대하여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 구원의 자격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행동을 말하다 / 우리는 어디서 났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것도 아닌 삶은 없다 / 사용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 깨끗한 그릇이 되는 일 들어가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문 / 목사는 어떤 존재인가 / 합당한 자질을 갖추려면 목사라는 이름이 무겁게 느껴질 때 /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노력 없는 기도, 기도 없는 노력 / 글 짓는 그리스도인 / L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 돈에 대한 두가지 시선 / 그리스도인의 경제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 영광스러운 성공을 위하여 / 삶의 충만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4부. 세상에 대하여 정치의 정도를 기독교 정신에서 찾다 / 전통과 계승의 혁신 / 구약의 완성 기독교는 모순의 종교다 / 교리의 본질과 기능 / 기독교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신앙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공적이다 /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최고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 왜 저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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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이 그대로인 까닭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인데 내가 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해결의 주체도 자신이다. 철학의 혁신은 객체에서 주체로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주에서 인간을 탐구 주제로 삼은 소크라테스, 객체에서 주체로 인식을 전환한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대상에서 언어로 지평을 확장한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등은 사회 개혁과 교회 갱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곧 개혁의 방향은 ‘밖’이 아니라 ‘안’이라고 말이다. 변화의 주체는 ‘너’가 아니라 ‘나’이고, ‘세상’이 아니라 ‘교회’다. 이것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너무 깊이 연루되어 살아가는 것을 염려한다. 세상과 별다르지 않은 삶의 방식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니 참으로 비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에서 ‘죄 많은 교회로 충분한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빛도 여전히 우리에게서 시작한다. --- 「우리는 어디서 났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에서 사실 많은 사람이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막연해할 때가 참으로 많다. 그런데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글로 구체화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의 제자는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이며 예수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열두 제자와 초대교회 사람들이 예수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남겼기에 오늘날 우리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예수와의 만남을 글로 기록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삶,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 「글 짓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부자로 사는 것은 스스로 죄책감을 가질 일도, 남들에게 비난을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성서의 일관된 가르침은 ‘부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묻기 이전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묻고 또 물어야 하겠다. 부자이든 빈자이든 나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 「삶의 충만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