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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감각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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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Part1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
양화대교 건너기 | 카페 사용설명법 | 웨딩 콜라주 | 묘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 | 낯선 교회, 익숙한 사찰 | 강남역 4번 출구 앞 편의점에서 두 번째 골목 | 간판, 안내판, 플래카드로 뒤덮인 나라 | 짓고 또 짓고 | 한 이방인의 관악산 등반기 | 색깔의 정치학 | 쓰레기를 읽으면 인간이 보인다 | 상상의 미술관 | 비어 있는 공간, 광장

Part2 도시라는 공동체
기찻길 옆 근대 도시 | 꽃,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 | 시장은 감정의 교환소 | 미드나잇 인 디즈니랜드 | 랜드마크는 도시를 상징할까? | 연결하는 다리, 분리하는 다리 | 도심 속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두 시선 | 대형 병원 시대, 동네 병원의 역할 | 은밀하게 위대하게: 방석집과 피트니스 클럽 | 밥상이 당신을 보살피는 풍경 | 모두에게 평등한 모래사장

저자 소개 3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이미지 문화연구자. 영화·영상이론과 동시대 미학이론을 연구하고, 비평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지은 책으로 『유럽 영화 운동』 『알렉산드르 소쿠로프』(공저) 『하룬 파로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풍경의 감각』(공저) 『파도와 차고 세일』(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어둠에서 벗어나기』 『색채 속을 걷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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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베제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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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erry Bezecourt

1972년 프랑스 서남부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부모님이 컬러 TV를 구입했다. 엔지니어 학교에서 통계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왔고, 1996년 파리 소재의 민간 기업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첫 월급을 받았다. 직장 생활 중 통신 강의로 법률을 공부했다. 현재는 프랑스 상원의회에서 입법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2010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2014~2015년 한국 체류 중에는 광화문에서 북한산 정상까지 가로지르며 탐색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류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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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롤랑바르트의 후기 저작 연구로 2012년 M2 학위를 받기까지, 프랑스 구조주의 및 후기구조주의에 몰두했다. 2011~2015년 파리 몽마르트의 그림 갤러리에서 일하며, 그림을 매개로 전 세계인들과 소통했다. 2016년 남편과 함께 우핑woofing을 시작하여 영국 남부 지방 10여 개 농장을 돌며, 영속농업permaculture 이론과 실무를 배우고 심층생태학을 접했다. 철학, 미술, 종교, 심리, 교육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번역 작업을 하고 있고, 타자, 몸, 기후, 생태 관련 주제에 관심이 높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롤랑바르트의 후기 저작 연구로 2012년 M2 학위를 받기까지, 프랑스 구조주의 및 후기구조주의에 몰두했다. 2011~2015년 파리 몽마르트의 그림 갤러리에서 일하며, 그림을 매개로 전 세계인들과 소통했다. 2016년 남편과 함께 우핑woofing을 시작하여 영국 남부 지방 10여 개 농장을 돌며, 영속농업permaculture 이론과 실무를 배우고 심층생태학을 접했다. 철학, 미술, 종교, 심리, 교육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번역 작업을 하고 있고, 타자, 몸, 기후, 생태 관련 주제에 관심이 높다. 옮긴 책으로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2016), 『풍경의 감각』(2017),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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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8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540g | 152*210*20mm
ISBN13
9788959894789

책 속으로

한국 교회들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개신교 신자들에게 속한 공간이다. 그 규율들이 모호해서 교회에 들어가도 되는지, 방문이 신자들에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닌지 여부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특히 접근이 쉽지 않다. 가톨릭교회인 명동성당만이 유일하게 행인이 읽을 수 있는 정보 표지판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유사 고딕 양식의 이 건축물은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내부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었다. 일반 교회들은 십자가, 종,
예수를 재현하는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 기독교를 환기시키고는 있으나, 그러잖아도 다양한 양식과 기능이 혼재하는 도시에 신비스런 기호를 하나 더 추가하는 낯선 사물들이었다.
--- p. 70

일련번호는 차이를 두지 않는 논리적 체계 속에 모든 건물을 포괄하는 통일성을 마련한다. 이와 달리 건물의 이름은 건물과 건물이 구별되게 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광고 효과를 위해 아파트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 가깝다. 이 이름을 단 아파트를 소유한 이들은 이 이름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며 이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아파트 이름은 아파트가 브랜드에 속하는 상품이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공자는 이름을 바르게 함으로써 일이 성사되게 한다고 하였는데, “아파트 이름 바꾸면 가격 오르려나”라는 기사를 읽어보건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현실을 바꾸려면, 즉 아파트 가격을 올리려면 이름을 고치라는 것으로 공자의 말을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 p.84

글에 담긴 힘, 목소리를 문자화해 고정시킨 그 강력함에 대한 믿음이 한국에는 분명 존재한다. 한국처럼 상시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나라에서, 전통적인 방식대로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 한 장이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2013년 12월 한 대학생이 손으로 써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기억할 것이다. 마치 대자보라는 형식이 문서와 서예에 대한 수백 년 전통의 권위를 항의의 행위에 부여한 것만 같았다. 이 항의는 이후 인터넷을 통해 맹렬히 번지며 릴레이 대자보 시위를 이끌어냈다. 이 대학생의 대자보 글이 단순히 페이스북에 올려졌던 글이었다면, 과연 동일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 p.96

이 노인도 역시 쓰레기를 처리한다. 그는 난지도와 같은 산을 만들지는 않지만, 자신의 손수레를 꽉 채우는 작은 더미를 쌓아올린다. 이런 활동은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직업적으로 시 당국이나 사기업에 고용된 사람만이 길가에 놓인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들이 전면 파업에 들어가는 순간 거리는 불쾌한 쓰레기 냄새로 진동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발전되어온 폐지 수거 활동이 외국인 관찰자에게는 상당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성별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동네 골목길에 웅크려 앉아 쓰레기를 분리하고 폐품을 모으는 장면을 목격할 때 말이다. 각자 수거를 담당하는 재활용 품목이 있는 것인지, 어떤 조직망으로 활동하는지, 저마다 할당된 구역이 있는지 혹은 급여는 얼마나 받는지 자문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파업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p.143

꽃으로 함께 추모하는 일은 담장 밖의 나쁜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이 아니라 내 옆에 나와 함께할 좋은 이웃과 나를 도울 친구, 내가 도울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고 서로 확인하는 일이다. 숨을 쉬고 있는 이 땅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다. 좁은 내 집 안에 숨기보다 내 집보다 더 크고 더 열려 있는 ‘이곳, 우리의 집’, 나와 내 이웃의 마을에 살겠다고 선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일수록 꽃은 유용하다. 꽃으로 ‘간단하게’ 이웃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자. 꽃이야말로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이다.
--- p. 204~206

그러나 오늘날 대형마트 ‘고객’과 노동자는 싸우지 않는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고객이 화가 나면 매장 매니저가 뛰어와 불만을 표하는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태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진상’ 고객이라면 매니저가 나타나지 않는 사이 계속 분풀이를 할 것이다. 대형매장의 소란을 우리는 갑의 횡포라 부른다. 반면 싸움 소리를 포함해서 시장의 소란스러움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상대방의 가격이나 선전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상인과 상인 사이의 싸움, 값을 치르는 손과 주인 사이에 시비가 이는 일은 시장에서는 일상적이다.
--- p. 214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은 에펠탑이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테지만 에펠탑이 프랑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프랑스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한국의 문화 관치官治만이 어떤 공동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을 고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건축물을 고르는 방식으로 ‘공식’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만 랜드마크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랜드마크를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랜드마크가 기꺼이 대표할 공동체의 내용을 고민하는 일이고, 공동체의 사연과 기억이 거주할 장소들의 풍경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일이다. 무엇도 나누지 못하는 사회를 대표하는 커다란 물건은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표식이 되기 쉽다.
--- p.246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를 바라보는 자들이란 늘 양쪽으로 나뉜다는 점을 간파했다. “누가 이것을 쌓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이것을 부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빅토르 위고는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 혁명군의 것이라 보았고, 이를 ‘격동의 즉흥연주’라 불렀다. 그는 1830년대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서로 너무나 다른 여러” 사람들, 그러나 “하나의 정치적 이상이나 사유를 지지하기 위해 뭉친 이들”이 길거리 보도블록뿐 아니라 건물에서 떼어낸 문짝, 철책, 차양, 창틀, 솥단지, 온갖 것으로 보도블록을 쌓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했다. 바리케이드는 저항하는 자들의 것이면서 반달리즘과 결부된 파괴의 기술이기도 했다.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저항했던 이들, 이름 없는 혁명군의 동요와 격렬함이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를 만들어낸 탓일까? 프랑스 사회는 반달리즘을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이제껏 스타디움, 공연장 등 흥분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일부의 반달리즘에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 끼여 집회의 목적과 상관없이 사방에 스프레이 낙서를 하고, 거리에 주차된 민간인 차량을 훼손하거나 상가의 유리창을 깨고 약탈을 하는 이들을 ‘브레이커’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시민, 미디어, 공권력은 일부 브레이커가 목소리를 높이는 전체 시위대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 p.266

출판사 리뷰

벽 너머 사람들의 육체에 스민 박자들
『풍경의 감각: 파리·서울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 앞에 거리를 두고 단지 제 기능에 충실한 채 우리와 무심하게 존재하고 있는 도시 ‘공간’”보다 “우리들의 눈과 발의 감각 속에서 계속 발견되고 재발견되는 장소들, 우리와 대화하는 ‘장소’들”에 주목한 책이다. 프랑스인 남편이 관찰한 서울의 낯선 모습이 Part1에, 한국인 아내가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사유한 파리와 서울의 형편이 Part2에 실려 있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그러한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데카르트의 후예 서울을 읽다, 파리 남자
‘파리 남자’가 서울을 읽어가는 방식은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독자에게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충격을 준다. 자이언티는 ‘양화대교’에서 택시운전사인 아버지의 삶을 담담한 창법으로 노래해 가슴 뭉클함을 안겨준 바 있다.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파리 남자의 양화대교 관찰기는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접근 불가능한 공간’으로 갈음된다. 택시를 세워도 누구 하나 손을 흔들지 않을, 그런 위험을 무릅쓸 승객이 없는 기사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기 때문. 그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속도를 가진 운전자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시야의 너머, 새의 시야로 풍경을 넉넉하게 바라본다. 그 사이 이 예리한 관찰자는 양화대교 너머 포은 정몽주의 동상을 바라보며 개성의 선죽교에서 생을 다한 그가 서울의 양화대교에 있음을 의아해한다.
서울과 파리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한국은 죽은 자에게 프랑스보다 10배나 넓은 면적을 할애한다. 경주의 왕릉은 두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의 묘지는 산 자들의 도시로 끼어들지만 한국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죽은 자의 공간을 둔다. 그래서 성묘가 끝난 후 한국은 모두에게 속한 공간인 산을 떠나 서울, 교통체증과 아파트 숲이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죽은 자들의 평화를 떠나 산 자들의 혼란스러운 동요 속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산에 대한 감상은 도무지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이성부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하여 세속의 세계에서 신의 왕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라고 했을 만큼 서울과 산은 가깝다. 산을 찾는 이들도 유독 많아서 동틀 무렵, 새벽 5시에 출발해도 인적이 드문 산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지만 파리에서 산을 보기 위해서는 6시간을 족히 달려가야 하니 등산이라는 말이 없을 정도다. 그들의 창공을 침범하는 것은 그저 높고 낮은 건물들과 우뚝 솟은 에펠탑뿐이다.
도로명주소 체계는 데카르트의 후예를 자처하는 ‘파리 남자’에게 합리적이어서 전적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제도다. 논리적 체계 속에서 일련번호에 따라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도로명주소 체계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는 나라, 선생님이나 형님처럼 사회적·가족 내 관계에 따라 호칭이 변화하는 나라, 즉 변화를 끝없이 갈망하는 나라에서 경직되고 중립적인 도로명주소 체계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될지 물음표를 다는 것이다.

손끝마다 꽃이 피어나기를, 서울 여자
‘서울 여자’의 Part2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공동체’다. 도시의 역사는 기실 인간 공동체의 역사와 다름없고, 도시의 메커니즘은 실상 인간 사회의 풍속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를 파리 테러가 있었던 2015년 11월의 파리로 이끈다.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꽃을 들고 와 헌화했다. 과연 총탄이 지나간 자리에 꽃을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꽃은 현실의 위협을 동화를 통해 회피하는 어리석은 자위의 수단일 뿐일까? 저자는, 꽃은 현실적인 보호의 방책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오히려 공포가 창궐하는 시대일수록 꽃은 유용하다고까지 말한다. 사람과 사람, 시선과 시선을 연결하고 나를 타인에게 개방토록 하는 마법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꽃은 공포의 전염을 막는 백신이 된다.
또한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설의 허상을 꼬집으며,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라고 자문한다. 유명세로 그 장소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저자의 전언대로 공동체의 삶과 그 기반, 장소의 기억을 무시한 채 지어올린 랜드마크는 오히려 그것이 세워진 곳을 가려버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센 강변에 들어선 무료 모래사장은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 있는 랜드마크로 볼 수 있을 성싶다. 2000년대 사회당 출신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재임 초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지앵을 위해 7~8월 바캉스 시기, 센 강변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바다 모래사장을 설치해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파리 플라주(Paris Plage, 파리 해변)’는 사회복지의 철학을 공공장소에 구현하기 위한 위정자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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