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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일러두기 약어표 제1장 중세에서의 성인과 성유골 1. 상징으로서의 성유골 2. 성인전과 역사 사이 3. 중세 중기에서의 성인숭배의 발전 제2장 카롤루스 왕조 시대의 성유골 숭배 1. 9세기까지의 성유골 숭배 2. 성유골의 성격 3. 카롤루스 왕조 개혁과 성유골 숭배 제3장 성유골 전문 도굴꾼들 1. 이탈리아에서의 성유골 거래 2. 잉글랜드의 성유골 입수 시도 3. 관련 당사자들의 태도 제4장 수도원의 성유골 도둑질 1. 수도원끼리의 경쟁 2. 교회 건축비 조달 수단 3. 지방의 경쟁적 전통 4. 종교적 감정의 발전 5. 세속권력의 잠식에 대한 대응 6. 지역별 특징 제5장 도시의 성유골 도둑질 1. 베네치아의 성 마가 유골 도둑질 2. 바리의 성 니콜라우스 유골 도둑질 3. 파비아의 성 아피아누스 유골 도둑질 제6장 성유골 도둑질의 정당화 1. 성유골 도둑질의 합법성 2. 성유골 도둑질의 합리화 3. 성유골 도둑질에 대한 문학 전통의 형성 4. 성유골에 대한 인식: 살아 있는 성인 5. 거룩한 역사와 지역사회의 자부심 에필로그 부록 1 : 유골 이전기 해제 부록 2 : 유골 도둑질 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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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의 유골을 훔쳐 가져온다? 중세에 오랜 전통을 지닌 '거룩한 도둑질'(futra sacra)은 성인의 유골을 손에 넣기 위해 중세 수도사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교회를 약탈하며 도굴꾼들은 로마의 카타콤을 뒤지기까지 했던 역사적 사실이었다. 탐나는 성유골을 손에 넣게 된 종교단체와 지역사회는 유골 도둑질을 범죄로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룩한 행위로 간주하며 환대를 했는데, 사실 지금 시각에서 보자면 언뜻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이렇듯 낯설고 색다른 성유골 도둑질을 해명하기 위해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된 사회문화적 맥락을 자세히 고찰한 다음, 기독교 신도들이 성유골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러한 도둑질을 정당화했는지 역사인류학의 견지에서 치밀하게 분석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중세 카롤루스 왕조 시기 번성했던 성유골 도둑질의 실체 중세에서 성유골 숭배는 순교자 숭배에서 비롯되었다. 순교자 숭배는 고대의 영웅숭배에서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렇지만 순교자 숭배는 영원히 죽은 자에 대한 숭경 형태에 머물러 있던 영웅숭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순교자의 시신은 영웅의 시신과는 달리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고, 초기 기독교 신도들은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교자들은 최후의 날에 본래의 육체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기독교 신도들은 성인의 시신을 가까이하면 복을 받을 수 있으며, 성인의 무덤 곁에 매장된 사람은 최후의 날에 성인과 함께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다. 4세기부터 시작된 성인 유골 숭배는 10세기 말에 이르러 일상생활에 완전 통합되었다. 저자는 중세(대략 5~15세기)에서 성유골 숭배가 가장 핵심적이고도 광범위한 역할을 한 '중세 중기'(9~11세기)를 연구 시기로 잡고 있다. 특히 9세기 카롤루스 왕조의 교회 개혁은 성유골 숭배를 한층 강화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제단에 성유골을 안치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하고, 성유골에 서약하는 관습을 공식적으로 장려했으며, 성인 묘역에 대한 순례를 권장했다. 그리하여 카롤루스 왕조 성직자들은 프랑크 교회를 현양ㆍ보호하기 위해 알프스 이북에 로마의 성유골 공급을 늘리고 에스파냐에서까지 성유골을 들여왔다. 한편으로 9세기 후반부터 서유럽 각지의 종교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성유골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는데 그것은 바로 방대한 제국을 형성했던 카롤루스 왕조가 붕괴하면서 현세에서 중앙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불안한 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교기관과 지역사회는 초자연적인 힘에 보호를 의탁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성인의 유골이 기적을 일으켜 주민과 지역의 물리적 안녕을 보장해주고 인근 권력의 잠식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순례자들을 끌어들여 재정적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결국 수요가 있으면 공급하려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성유골 전문 도굴꾼과 장사꾼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로마와 에스파냐, 심지어 근동과 북아프리카에서까지 한밤중 교회에 몰래 들어가 성인의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훔쳐왔다. 왜 그들은 성인의 유골을 훔쳤고 그것은 어떤 근거로 정당화되었는가 그렇다면 이런 도둑질 행위를 어떻게 변호하고 정당화했을까? 카롤루스 왕조는 주교나 제후 또는 지방 공의회가 허가 없는 성유골 이전을 금지하고 성유골 거래를 규제했다. 따라서 훔친 성유골을 입수한 종교기관이나 지역사회는 그것이 불법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역설적인 것은 구입하거나 증여받은 유골보다 훔친 유골을 더 높이 쳤다는 점이다. 도둑질 그 자체는 구입이나 증여보다 유골이 그만큼 더 탐나고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증거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유골 도둑질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인 본인이 자신의 유골 이전(移轉)을 허락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성인이 도둑에게 환영(幻影) 속에 나타나 자신의 유골을 이전해달라며 무덤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반대롤 성인의 뜻을 거슬러 도둑질할 경우에는 기적을 일으켜 도둑질을 가로막고 도둑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골의 안전을 고려한 경우다. 이교도의 수중에서 약탈당하거나 비바람에 노출되어 유골 관리가 부실할 경우에 유골 이전은 정당화되었다. 셋째, 유골을 이전해오는 지역사회의 안녕과 다수의 구원을 위한 경우다. 넷째, 도둑 개인의 영적ㆍ도덕적 상태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행위라도 선한 사람이 하면 선하고 악한 사람이 하면 악하다. 요약하면 성유골 장본인의 의지와 상태, 이전 목적지의 안녕, 이전 수행자의 도덕적 상태 등이 정당화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교부시대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둑질' 전통을 내세워 유골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방법이었다. 탐나는 성유골을 입수한 종교단체와 지역사회가 성유골 도둑질을 범죄시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한 행위로 간주한 중세의 이런 이야기는 필경 괴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중세에 정말 벌어졌던 역사적 일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성(聖)과 속(俗)의 실질적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서양 중세의 속살인지도 모른다. 기독교적 삶이 모습이 정신세계 속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거룩한 도둑질'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책은 단순히 성유골 도둑 이야기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중세 민중기독교적 심성(心性)의 낯선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밝혀주고 있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