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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고대 그리스 약사_ 고대 그리스의 궤적 테세우스_ 신화와 역사 사이 리쿠르고스_ 스파르타의 입법자 헤시오도스_ 서양 최초의 '정의'의 제창자 솔론_ 채무를 말소한 현자 페이시스트라토스_ 정치개혁보다 문화를 장려한 선동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_ 베일 속에 가려진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_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페리클레스_ 민주정치의 완성인가, 독재의 가면인가 이소크라테스_ 아테네의 실천적 지식인 데모스테네스_ 수사의 전설 알렉산드로스_ 헬레니즘 문명의 창시자 갈레노스_ 고대의학의 완성자 제2부 로마 공화정 약사_ 로마 공화정기 지중해 세계를 풍미한 인물들 로물루스_ 로마 최초의 CEO 한니발 바르카_ 로마가 만든 신화, 카르타고의 명장 노 카토_ 국가를 위해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했던 정치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_ 로마를 구한 비운의 영웅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_ 로마 평민의 참대변인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_ 로마 혁명이 시작되다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투스_ '형만한 아우 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_ 영원한 군인, 로마의 1인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_ 공화국보다 권력을 더 사랑한 공화주의자 카틸리나_ 콘술 자리를 노린 음모인가, 인민의 대변자인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_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대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_ 떠오르는 태양, 지는 태양 카이사르_ 왕이 되고자 열망하다가 죽어서 신이 되다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_ 최초로 곡물 무상배급한 귀족 출신 호민관 안토니우스_ 권력도 사랑도 잃은 로마인 제3부 로마 제정 약사_ 팍스 로마나의 인간과 역사 아우구스투스_ 로마 제국의 일인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이야기 네로_ 절대권력을 꿈끈 예술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_ 로마 최초의 기사 신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_ 쓰러져가는 로마 제국의 구원자 콘스탄티누스_ 서구 세계를 기독교 문화로 개종시키다 율리아누스_ 최후의 이교 황제 오도아케르_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중세의 시작? 헤로데 대왕_ 심장은 이두메인, 정신은 로마인 퀸틸리아누스_ 고전수사학의 완성자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_ 고대 건축의 금자탑을 쌓은 건축의 아버지 호라티우스_ 사비눔에서의 우정과 행복 성 아우구스티누스_ 하나님의 진리를 향한 열정 용어해설 필자 소개 |
許勝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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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연구성과를 반영, 균형잡힌 서양 고대인물사를 전개시킨 국내 필진의 첫 결과물
한국 서양사학계에서 ‘고대사’ 연구분야는 지금껏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로 근, 현대사 분야(자본주의 문제와 연관하여)와 중세사 분야(프랑스 아날학파의 영향)의 집중적인 조명에 비한다면, 서양고대사 분야의 연구는 학계는 물론 일반독자들에게도 친숙하지 않은 분야였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서양고대사학계가 쌓은 연구성과를 고대 인물 39명 ― 고대 그리스 12명, 로마 공화정 15명, 로마 제정 12명 ― 을 선별하여 각 전공자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인물’을 통해 서양고대사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쓴 것이다. 특히 서양사의 첫 시기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를 집중조명함으로써, 어떻게 서양의 역사가 구축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사료(史料)의 빈곤으로 인해 서양고대사가 ‘인물’ 위주로 소개되고 있음을 저자들은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인물’ 위주의 설명 전개가 역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인류역사가 경험한 대부분의 정치체제 ― 민주정, 공화정, 군주정 등 ― 가 이미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에 구현되었던 점을 보면, 서양 고대사 인식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역사, 어떻게 시작되었을까(고대 그리스 ― 서양 역사의 시원) 흔히 고대 그리스하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떠오른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150여 개의 국가가 혼재했었다. 다만 그 두 국가에 해당하는 문헌사료들만이 존재하여 그동안 우리에게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만이 고대 그리스 세계의 전부인 양 이해되어 왔다. 첫 인물로 소개되고 있는 테세우스는 신화와 역사 사이의 관계를 밝혀주는 인물로 최근에는 역사적 유물의 발견을 통해 점차 ‘역사적 인물’로 인정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학계는 논란중에 있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세계의 신화와 정신세계를 보여준 대표적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헤시오도스는 ‘신화’를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신화의 체계화는 곧 사회의 계서제를 반영한 것으로, 남성 우위의 사회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사회의 세계관이나 질서의식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 가운데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아테네와는 다른 독특한 체제를 형성시킨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바로 스파르타식 체제를 만든 인물이 바로 리쿠르고스이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스파르타식 ‘교육’이 아니라 다만 아고게(agoge), 즉 훈련이라고만 했다. 이 훈련은 다른 생활방식과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전사단의 유지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아주 이른 나이인 7세부터 청장년기에 해당하는 30세까지 이루어졌다. 스파르타에 리쿠르고스가 있었다면 아테네에는 솔론이 있었다. 솔론의 등장은 점차 다변화하고 있고,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던 그리스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솔론은 아테네 국가의 체제를 다지는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이는 각 신분에 맞는 권리와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도모한 점이다.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솔론의 개혁시기 귀족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잘 드러난다. 더불어 페리클레스 시대는 고대 민주정치가 꽃피고 고대 그리스 문화가 최고 정점에 오른 때였다. 리더쉽에 걸맞는 민주정을 실현하고 고전 그리스 비극의 3대 시인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크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바로 이 시기의 사람들이다. 파르테논 신전도 이 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찬란한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종말을 고하는 역사의 아이콘이다. 이제 민주정은 서양 역사에서 현대에 와서야 그 모습을 재별현시키는, 즉 잊혀진 정치체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고대 그리스 시대는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처럼 혼란기로 접어든다. 혼란기에 사상가가 많이 배출되듯 이 시기에 이소크라테스나 데모스테네스 등 쟁쟁한 인물들이 나와 위기에 빠진 그리스 사회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 사회의 대동단결과 아테네 사회의 빈부문제, 그리고 올바른 정체(政體)의 수립 문제였다. 현대 유럽의 전형을 만든 시대 ― 고대 로마 로마 시대는 위대한 정치가, 모략가들의 시기인 양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역사를 수놓았다. 고대 그리스를 물려받은 로마는 이제 광대한 영토, 즉 현재의 유럽체제와 같은 넓은 땅을 경략함으로써 서구사회의 토대를 만들어놓았다. 고대 로마 사회의 그틀을 만든 전설상의 인물 로물루스로부터 시작된 고대 로마는 사실상 다양한 정치체제의 실험장인 듯 각각의 인물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 각 방면에 걸쳐 당대의 문제를 개혁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대부분 귀족과 평민, 노예의 지위와 권리, 의무에 대한 문제였으며, 또한 영토확장을 통해 얻어진 물질적 풍요를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르는 합리적 정치체제의 구축을 통한 로마의 평화실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를 꼽히는 한니발 전쟁과 노 스키피오의 등장, 그리고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정치, 혼란기의 로마를 정비하고 대로마를 건설한 카이사르 등 로마 공화정기는 정말로 다양한 인물들이 수놓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화정 말기,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의 숨막히는 막후 정치력 행사는 익히 알려져있지만 그 정점에 다다른 역사상을 잘 보여준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가 됨으로써 로마 공화정은 그 막을 내리고 제정시기에 접어든다. 로마 역사에서 ‘제정’(帝政)의 등장은 기원전 2세기 말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 시작된 ‘로마 혁명’의 총결산으로 볼 수 있다. 즉 ‘로마 혁명’은 도시국가 로마의 정치체제인 공화정치가 지중해 제국으로 변모한 로마를 더 이상 경영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 로마의 평화)의 시기인 아우구스투스 집정기는 “벽돌의 로마를 대리석의 로마로 물려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그의 통치기간 내내 많은 공공건축물들이 들어섰고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트루비우스도 이 시기에 활동했다. 아울러 이 시대는 라틴 문학의 황금기이기도 했는데, 호라티우스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라틴 문학의 황금기를 장식한 문인 가운데 하나였다. 아우구스투스가 개혁정치가였다면 호라티우스는 미래를 노래한 시인으로 국가의 개혁은 다만 국가적 정의의 문제지만, 호라티우스가 보는 행복의 실체는 국가를 넘어선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투스 사후, 로마 제정 시대는 또다시 암흑기를 맞이한다. 칼리굴라로 불린 가이우스와 네로 등의 폭정이 이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서기 250년경에는 페스트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지중해 연안 전지역을 휩쓸었다. 특히 서기 234년부터 284년까지 약 50년 동안 무려 26명의 황제가 바뀌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 당시 황제들의 두상을 보면 예외없이 잔뜩 찡그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언제 누가 자신을 죽일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자연사한 황제가 한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로마 제국을 구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다시 천년을 살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이다. 그는 군인들에 의해 황제가 끊임없이 갈아치워지는 상태 속에서는 제국의 안정, 통치의 안정을 구할 수 없다고 인식한 후, 확고한 전제정의 수립을 통해 정치의 안정을 꾀했다. 아울러 방대한 영토를 사분체제, 즉 네 명의 통치자가 로마 제국을 나누어 다스리는 구도를 확립하여 효율성을 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이러한 노력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황제가 콘스탄티누스였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는 서구 세계를 기독교화시킨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서양 중세시대, 즉 기독교문명은 콘스탄티누스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콘스탄티누스 시기에 기독교 문화는 이후 중세시대의 모든 것을 담보하고 있었다. 한국 서양고대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교양입문서 이 책은 서양고대사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인물’을 중심에 놓고 서양고대사를 전개해내가고 있다. 다만 각 시대별 약사(略史)를 통해 전체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다음, 각 인물별로 서술해나가고 있다. 이 책을 엮은 허승일 명예교수(서울대ㆍ서양사)의 말처럼, 이것은 서양고대사의 최신 연구경향까지 종합하여 서양 고대의 인물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내서이다. 이전까지 알려져있던 신화적 존재들이 한결 역사 속 인물로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장점일 것이다. |